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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 매니저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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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는 병적 현상이 넘쳐난다. 물론 병이라는 것은 여러 관점에 따라 폭넓게 해석이 되겠지만, ‘환자가 의사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태’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병이란 의사의 반응에 따라 삶과 죽음이 바뀔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민주사회는 시민과 시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로 이뤄져 있다. 듣기 싫더라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진다는 얘기다. 시민이 그들의 지배층을 바꾸는 주체이므로 의사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이 의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병적 현상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의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는 학습된 무기력에 기인한 듯하다. 부정적인 자극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그 자극에 순응하게 되어 개선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니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는 체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한때는 공정성에 환호하다가 혹시나로 바뀌었고, 지금은 역시나로 주저앉았다. 정의 역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발걸음까지 가벼워진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김이 다 빠져버렸다. 불평등의 구조가 바뀌어 온 나라에 축복이 곧 찾아올 것 같았는데, 그런 기대도 사라졌다. 대신 각자도생의 물결 속에서 불평등의 확대 재생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습을 하루하루 지켜보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능력있는 지배층의 현란한 권세 놀이에 공정성 시비를 할 겨를이 없다. 권력의 핵심부와 주변부를 나누어 일상화된 그들의 일탈을 설명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정의롭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러한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시민들은 아직은 가끔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로 냉소적이거나 그저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이 마침내 통과되었다. 물론 시행은 공포 후 1년 후부터이지만, 주민자치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졌다. 1988년 전부개정 이후 32년 만에 이루어진 가히 획기적인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민자치회 본격 실시를 위한 조항이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된 것은 아쉽다고 하겠다. 주민자치의 원리를 명시하고, 지방의 정책 결정 및 집행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권을 신설하였다. 주민조례 발안법을 별도로 제정하여 조례안의 제정, 개정, 폐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며, 주민조례발안ㆍ주민감사청구의 인구 요건을 완화하고, 참여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등 폭넓은 주민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또 지역 여건에 따라 주민투표로 단체장의 선임방법 등 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행전안전부 장관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획기적 자치분권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만큼,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한 지방의 창의적인 혁신을 통해 주민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바라던 법률안이 통과되었다고는 하나 주민자치의 기본이 되는 예산권이나 입법권 등은 빠져있어, 이의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장관의 말대로 주민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향상되기는 아직까지 기대난이다. 이러한 법적ㆍ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처럼 병적 현상이 나라를 뒤덮고 있을 때, 주민이 무시의 대상으로 취급받을 때 우리가 취하는 태도라 하겠다. 그저 냉소하고 자책할 일이 아니다. 국가나 지역의 주인으로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병적 현상과 무시에 맞서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스스로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용 ‘표’에 머물러선 안 되며, ‘인간’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국가의 미래를 사유화하기에 바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숫자’일 뿐,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선거철엔 강아지에게까지 애교를 떨던 사람들이 지금 하는 짓들을 보라. 거수기의 수효가 많으면 가지가지 횡포요, 적으면 만날 둘러대기 바쁘다. 굴욕적이고 수치스런 선거전을 끝낸 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신상의 풍요로움’이지 국가와 국민이 아닐진대, 이러고도 마냥 물러앉아만 있다면 몇 년마다 쓰이는 그 ‘표’임에 틀림없다. 행복과 존엄이 파괴되고 손상되어도 ‘표’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