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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 매니저ㆍ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ㆍ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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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무등리는 인문마을공동체임을 알리는 현판식을 가졌다. 그간 몇 가지 일을 해 오는 동안 인문마을공동체란 말이 생소한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더러 받았다. 마을에 왜 인문이 들어가느냐, 공동체는 또 무엇이며 말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길게 설명을 하기도 했다. 하긴 여간해서야 농촌지역에서는 인문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도 않거니와 공동체 역시 그리 쉽게 이해하고 쓰는 용어는 아니다. 마치 ‘민주’란 말을 편리한 대로 사용하듯 인문이나 공동체란 말도 적확하게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필요나 요구에 의해 쓰여지기에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때마침 마을 도서관을 만들고 마을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는 계획과 구미시의 구상이 맞닿아 무등리는 인문마을공동체로의 첫발을 딛게 된 것이다.
막스 베버가 지적한 근대 자본주의의 합리적 정신은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신처럼 숭배하는 한국사회의 모습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 노령화 인구의 급속한 증가, 기후위기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세계 1위, 최고로 높은 자살률, 부모를 방문하는 횟수가 부모 재산의 정도에 따라 가장 심한 편차를 보이는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세계 최고에 이르며, 부모에게 경제적 의존도가 가장 높으면서도 부모를 모시고 싶다는 청소년의 응답 비율이 영국이나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상황 등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경제성장에서 초래된 불평등의 완화 시도를 신에 대한 배반 행위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누구나 자본의 불평등을 말하면서도 돈만 있으면 되는 세상을 추구한다. 혹 그런 세상을 더럽게 여기고 싫어하면서도 추세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면서 따라간다. 그래서 노동의 보상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돈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돈 때문에 이웃과 단절이 되고 자식과 원수가 되어도, 도덕적인 결함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돈을 위해 일을 한다. 무슨 신파조 소설같지만 돈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은 모두 부차적으로 밀려난다. 돈으로 인해 인간성이 왜곡된다 한들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현실이 아닌가. 종교의 도덕적 덕목을 유사종교의 교리 정도로 치부하면서, 현인들의 삶의 경구를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자기만의 진리에 빠져 살아간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가운데 서 있다. 늘 고민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돈과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 외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돈과 돈으로 연결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무관심 혹은 무시 현상은 오늘날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어디에나 팽배해 있다. 이러한 무등리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문해 및 생애전기쓰기’와 공동 학습 활동이었다. 그 전부터 이어져 온 마을 가꾸기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던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이야기와 그림으로 불러내는 학습을 하면서부터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집갈 때, 아이를 키울 때, 모내기할 때 거기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었고, 그런 정겨운 이야기의 실타래는 끝없이 풀어져 나왔다. 지난 날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얼굴의 깊은 주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로지 웃음만 방 안에 가득했다. 물론 학습 도우미로 스스로 참여한 부녀회원들도 덩달아 즐거움을 누렸다.
인간관계의 돈독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지만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마을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따스했던 과거를 함께 더듬고, 공동으로 학습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다행히 무등리 어르신들은 쉬지 않고 학습을 계속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요구하신다. 이러한 인문학습의 접근은 주민의 요청에 부응하는 형식이 되어야지, 일방적인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주민들의 ‘구체적인’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는 쌍방향적인 방식으로 내용이 구성될 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주민들은 비로소 성장할 것이다. 마침 마을의 삶과 소통하는 인문학이 무등리에 찾아온 것이다. 이런 학습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는 마중물이 되어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해 주리라 믿는다.
우리는 여태까지 풍족한 삶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몸에 병은 더 많아지고 이웃은 갈수록 멀어지며 마을은 삭막해져 가기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욕심을 멈추지 않고 서로의 관계 맺기에는 여전히 소홀하다. 이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와 행동으로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서로 보듬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끌어 나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이것이 곧 구미시에서 주창하는 ‘인문도시 구미’를 실현하는 길이다. 자본과 소비에 찌든 현대인 그리고 지역사회에 오직 한줄기 구원의 빛이 있다면 진정한 인문정신을 내면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인문학’이란 결국 서로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보듬는 생활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