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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매니저·구미시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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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을 통해 이른바 구미학龜尾學을 정초하기 위한 학술 모임이 열렸다. 성리학 역사관 야은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전국에서 모인 역사 및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야은 길재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발제와 주제 발표가 있었고, 시민들은 이를 끝까지 경청하였다. 길재 선생의 충절이나 인생관, 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조명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자못 엄중하기에 시민들은 학자들의 발표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600여 년 전 여말선초의 인물을 우리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설정하여, 그의 절의와 인생관에서 중요한 삶의 지표를 찾아내고 주자학의 도통 속에서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은 구미학의 출발점으로서 마땅하다 하겠다. 또한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탐색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시도이다. 구미학을 이끌고 있는 목요철학원에서는 길재 외에도 지역 출신 역사적 인물들의 자취를 계속하여 조명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어 이 사업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바람직한 구미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관이 확립되어야 한다. 구미를 바르게 구획하고 무엇을 연구대상으로 하며 어떤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로컬의 독자성을 넘어 국가나 세계적인 교류가 가능한 보편성 확보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학문과 이론만으로는 객관적인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의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석의 틀도 요구된다 하겠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구미학을 위한 심포지엄. 길재에 대한 많은 연구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오늘날 구미인들을 위한 핵심가치는 어떤 것일까.
종합토론에서 연구자들은 핵심가치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옳지 않은 일에는 분명히 ‘노’라고 대답하는 태도를 가질 것, 그리고 우리가 무한히 누리고자 하는 돈과 자유에 대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염치없는 시민이 넘쳐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분수를 지키며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길재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툭하면 법을 들이대는 시류의 폭력성은 인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수기치인을 이상으로 삼은 길재의 삶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도록 조언한다.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드러내고 본받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접근방식이 문제이다. 지역 인물들의 빛나는 가치는 선인들의 족적을 탐구하면서 생각하고 토론하는 가운데서 찾아낼 수 있다. 그것도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어떤 계기를 통해 스스로 지역을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피상적인 몇 줄의 요약된 내용으로, 혹은 교과서식의 전달 방식으로는 지역을 제대로 알아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지역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검토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구미학을 추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구미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가 으뜸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일에는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구미학이란 애초 어불성설이어서 자칫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기 쉽다. 시민들의 삶과 생각이 담겨있지 않은 로컬문화는 당연히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모임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미학을 청소년이 디자인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 주자. 2040 세대가 허심탄회하게 구미학에 대해 얘기하도록 열어두자. 50세 이상의 시니어 캠프를 만들어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미학을 설계하도록 하자. 서점이나 도서관, 카페 등의 휴식공간은 물론 대학과 연계하여 구미의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하여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론이나 학술 분야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도출된 시민의 삶 이야기로부터 구미학은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모든 시민이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경험을 집약하고 미래를 발굴하며 자치능력을 발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미학의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미학은 구미시민만의 구미학이 아닌 한국을 위한 나아가 세계 시민들의 구미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