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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윤동 문화예술연구소「점·선·면」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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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9월 29월(수) 현재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는 전국 2,885명, 경북 88명, 구미 14명이다. 그리고 구미는 3단계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의 명칭은 ‘권역 유행/모임금지’이고, 모임은 5인 이상 사적 모임은 금지이며, 집회와 행사는 50인 이상 행사는 금지이다. 3그룹 시설에 해당하는 공연장은 동행자 외 좌석 한 칸 띄우기를, 정규공연시설에는 기본방역수칙을, 정규공연시설 외 공연은 6㎡당 1명으로 최대 2,000명 이내를 허용하고 운영시간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방역수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 국민이 코로나 19 시국에 고통 받고 있다.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우리 동네가 예술(인)에게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바라보면서 이해하려다가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나다가도 쓴 웃음을 짓다가 이내 우울해진다. 최근 필자가 기획하는 두 종류의 축제가 연기되었다. 두 종류라 함은 하나는 공연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외이기에 그렇게 나눠 봤다. 공연장은 공연장등록이 된 정규 공연시설이다. 그런데 연기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야외로 정규공연시설 외로 분류되는 곳이다. 하지만 공연이나 체험 행사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연기되었다. 하지만 공연장은 방역수칙조건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래도 연기되었다. 야외는 6㎡당 1명이 수용가능인원이니까 최대 2,000명이면 12,000㎡로 대략 사방 110m 안에서 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상당히 까다로운 운영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실력이 있으면.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가보다. 그래서 연기되었다. 아니 없어질 수도 있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있다. 즉 예술을 향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축제의 최종대상은 당연히 향유자인 관객이다. 3단계이고 확진자 수가 점차 늘고 있는 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다수의 관객이 모이는 축제를 한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짓으로 보일 수 있다. 더욱이 시민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시민들은 주말에 집에 안 계신다.) 이런 생각의 꼬리에 이해하려다가 문득, 코로나 19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나 전 부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어이가 없어진다.
축제에는 향유자인 관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자인 예술가가 그 시작점에 있다. 그들은 시대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세상과 만나는 존재다. 여러 통로 중 하나인 축제를 통해서도 예술가들은 관객을 만나 그들을 어루만져 준다. 코로나 19라는 상황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한다. 필자가 쓴 웃음을 짓는 것은 예술의 가치를 안다고 하면서도 축제를 행사성 사업으로만 보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축제를 준비하던 예술인들은 확진자 감소를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하염없이 집구석에 앉아 각종 연체 고지서를 바라보며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고 앉아 깊은 시름에 빠질 것이다. 결국 예술의 가치를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예술인에게 대하는 이러한 태도와 자세 때문에 이내 우울해진다.
“그 동안 우린 무엇을 대비했나?”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영상화가 대안인 양 예술인을 몰아갔던 그 광폭함을. 그러다 이제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영상화는 지향하라는 이 얄팍함을. 코로나 19가 지속되리라는 건 누구나 동의했던 사실이다. “예술인도 자신의 공연물인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소상공인이다”라고 하면 귀 기울이려나? 산업도시니까.
인문도시사업을 하는 도시라면 인문학적 사고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길 바란다.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도시라면 문화적 관점으로 예술인들을 바라보길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