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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 활동가·구미시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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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모은 도라지, 모과, 블랙베리, 오가피 등이 잘 어울어져 익어가면 한데 걸러서 2차 숙성을 한다. 거를 때는 무척 진한 향이 코를 찌르는데, 시간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내음이 마당 가득 퍼진다. 아마 이런 향을 색으로 비유한다면 맑고 투명하면서도 비어있는 듯한, 그러면서 바다 위에 뜬 황혼이 함께 연상되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합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시간은 이렇듯 사물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 어른이 되고 나무도 어린 시절을 알 수 없게 만들며, 음식을 잘 발효시킨다. 이런 시간을 우리는 숫자로 나타내어 지나간 것을 기억하고 오지 않은 날들을 기다리며 현재를 붙잡으려 애쓴다.
우리 마을에서는 한 해의 살림을 책으로 만들어 냈다. 시간을 기록하면 모든 일을 순서대로 잘 기억할 수 있으므로 그때그때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모으기로 약속하고 함께 기록해 나갔다. 중요한 일 중 하나로 2019년에 있었던 대형축사 반대 활동이 있다. 마을길로 들어서면 너른 들이 펼쳐지고 들녘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을 한참 지나야 비로소 마을이 나온다. 이런 지형을 가진 마을의 전면에 대형축사가 몇 군데 들어선다고 하니 모든 마을 사람이 나서서 축사건축을 반대했다.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의 삶터에 여기저기 축사가 들어서는데도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이런 상황이 적법이라는 현행법이 문제였지만 주민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알고 서로가 얼마나 허탈해 하였던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일이다.
마을 환경을 지키려는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법이나 제도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주민들이 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하고 마을의 주인인 주민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 역할의 고됨과 행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생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래서 우리가 시작한 것은 마을 가꾸기였는데, 환경을 지키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보다 우회로를 선택한 셈이다. 억지로 옷을 벗기려 하는 바람보다 따스한 햇볕이 나그네로 하여금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하듯, 혐오시설에 대한 저항보다 마을을 함께 가꾸는 활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나가기로 했다.
인구의 고령화 문제 중 농촌의 현실이 심각하게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을만 해도 효율적으로 작물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다수의 노인들은 돌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덜컥 돌아가시거나 요양원으로 모셔졌다는 얘기는 한 달이 멀다 하고 들리는 일상적인 소식이 되어버렸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이러다 5년 후엔 어떻게 될까. 10년, 20년이 지나면 마을이 존속하기나 할까. 아무리 기대 수명이 올라간다지만 다가오는 우리의 삶은 과연 지금보다 나을까. 미래의 삶을 걱정하는 바탕에는 현재의 풍족한 소비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 걱정은 지금처럼 여유롭게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야겠다는 욕망에 닿아있는 것이지 결코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의 실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한 도시 재생사업이나 문화도시 건설을 보면서 농촌의 마을 모습을 그려 본다. 지금 우리는 ‘어쨌든 돈’을 추구하며, ‘너는 일하고 나는 즐기는’ 생각이 저변에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하나 떼어놓기 좋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력자나 방관자 모두가 희생자이기 쉽다. 지리멸렬 살아가다가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종내는 휑한 모습을 한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인기척조차 별로 없는 마을이 되어 버린다. 참 흔한 모습이 아닌가.
고향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우선 마을 가는 길이 보이고 고즈넉한 봄날의 진달래,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주는 정자나무, 누런 가을날의 들녘, 어미소와 송아지 그리고 개울과 뒷산이 스치듯 보인다. 살면서 니새끼 내새끼를 차별하지 않아 혼낼 때는 똑같이 나무랐고, 늦게까지 어울려 돌아다녀도 아무 탈 없었다. 연세높은 힘없는 노인장이 목소리라도 높이면 모두가 꽁무니를 슬금슬금 빼기도 했다. 어른의 큰소리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풍족하게 잘 먹지는 못해도 있으면 나눠 먹을 줄도 알았다. 그러던 사람들이 욕심과 자만심 때문에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다. 고결한 정신을 잃고도 바른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순수한 정서는 모두 버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감정이 앞서며, 손익 계산만 받아들일 뿐이다.
이제 마을에는 공동체성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도 무한히 주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고갈을 모르는 욕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욕망의 마차를 타고 우리는 어디에도 함께 갈 수 없다. 포근했던 옛날이 아니어도 좋다. 나눔과 협력만이 모두를 구해낼 수 있다.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따스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삶을 향한 시간은 오직 마을 사람들만이 선택할 수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