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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학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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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주석에 “그가 떠나가고 나서, 백성들이 더욱 그를 사모하여 〈감당〉 시를 지어 ‘무성한 감당나무를 베지 말고 치지 말라. 소백께서 초막으로 삼으셨던 곳이다.’하였으니, 그 은택이 사람들에게 들어간 것이 깊음을 알 수 있다.”[及其去也 則民益思慕 作甘棠詩曰 蔽芾 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可見其澤之入人 深也]”라고 하였다.
누구나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선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없는 자리까지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였다니, 그를 존경한 백성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去(갈 거)는 土(大의 변형자)와 어떠한 입구의 모양을 본뜬 厶(凵의 변형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떠나가는 모양을 본떴다. ‘走(달릴 주)’, ‘赤(붉을 적)’ 등의 글자를 구성하고 있는 土자 역시 모두 大가 土로 변한 글자이다.
而(말 이을 이)는 사람 수염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지금은 주로 앞뒤 말을 잇는 접속사 역할을 하는데, 순접과 역접에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어 문장을 읽는 사람이 유념하여 확인하여야 한다. 需(구할 수)의 경우 아랫부분이 而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염의 모습을 본뜬 而와는 태생이 다르다. 비[雨, 비 우]를 갈구하며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오늘날 해서의 모양만으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益(더할 익)은 옆으로 누운 水(물 수)와 그릇의 모양을 본뜬 皿(그릇 명)이 합쳐진 글자이다. 그릇에 물을 더 붓다는 의미에서 ‘더하다’는 뜻이 결정되었다. 溢(넘칠 일)의 경우, 물[氵]을 자꾸 더하면[益] 그릇에서 넘친다. 그래서 평상의 바다보다 수위가 넘치는 것을 ‘해일(海溢)’이라고 한다.
詠(읊을 영)은 말[言, 말씀 언]을 길게[永, 길 영] 하여 ‘노래하다’, ‘읊다’는 의미를 가졌다. 노래는 일상의 언어와 달리 고저장단을 입혀 리듬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