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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규동 문화해설사의 구미이야기(3)]금오산을 내려오며-채미정편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31일
↑↑ 여규동 구미시문화관광해설사
ⓒ 경북문화신문
중국의 산해경에는 곤륜산이 동으로 뻗어내려 백두산을 이루었다고 했다. 거대한 산맥중에 가장 큰 줄기가 태백을 이루어 다시 남으로 뻗어내려 금오산을 이루었으니, 때는 고려말 조선초라 걸출한 인물 야은(冶隱) 길재 선생이 계셨다. 금오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길 선생의 역사 문화 유산이 결합되어 일대가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충절의 상징이기도 한 곳이기에, 찾는 이들에게는 시대의 성쇠순고(盛衰, 융성과 쇠망을 떠나 純固 순수하고 견고하게)를 넘어 충(忠)으로 살다간 야은 길 선생의 높은 덕화(德化)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길재 선생이 계셨던 채미정 입구에 ‘회고가’(懷古歌) 시비가 세워져 있어 지나는 길손들이 읊조리게 함은 한 시대의 현자(賢者)를 위로함이리라!

금오산이 명승지로 이름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지주중류(砥柱中流) 백세청풍(百世淸風) 야은 길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채미정이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마비(下馬碑)에 예(禮)를 표하고 대혜(大慧)폭포를 떠난 물줄기가 계천을 만들어 휘감는 석교를 건너면 맹자가 평한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의 풍모를 일으키라는 흥기문(興起門)이 손님을 맞이한다. 흥기문은 百世之下聞者 莫不興起也(백대 후에도 듣는 이에게 감동을 일으키노라)'라고 한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이문(門)을 지나면 좌측에 조선후기 서예가 팔무당 윤동섬 선생이 예서체로 쓴 채미정(採薇亭)을 편액으로 하고 단청으로 치장한 정면3칸 측면3칸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꾸미고 사방 둘레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꾸민 정자를 만난다. 온돌방의 사면에는 각각 2분합 들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사면이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치석한 화강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영조 44년(1768년)의 일이다.

민백종 선산부사가 지역 유림을 규합하여 중건하였으며, 그 우측으로 구인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중앙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양측면은 2통칸 온돌방으로 꾸며 전퇴를 둔 초익공의 백골집(白骨家 : 칠을 안 하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이다. 화마를 겪어 소실되었으나 채미정으로 옮겨 붙지 않음이 기이하다하여 구인재를 다시 중창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사마천은 ‘백이 열전’에서 백이숙제의 이야기를 공자(孔子)의 말로부터 시작한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물었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옛날 현자(賢者)들이시다.” 어떤 현자일까? 어떤 생애를 살았기에 현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자공은 우리 생각처럼 묻는 대신 대뜸 돌직구를 던진다. “원망했습니까(怨乎)?”
질문을 보면 그 사람의 공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원망했느냐고 묻는 자공의 질문에는 그가 이미 백이숙제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으면서 스승의 생각이 어떠한지 듣고 싶었음이 담겨 있음을.
공자가 대답했다. “인(仁)을 추구하다 인을 얻었는데, 다시 무엇을 후회했겠느냐.” 사마천이 인용한 공자의 이야기는 ‘논어’의 ‘술이’ 편에 나온다. 구인이득 인우하원(求仁而得 仁又何怨)에서 구인제(求仁齊)라는 제호(齊號)를 따 왔다고 한다.

채미정 후견을 돌아 몇 계단의 석축을 올라서면 “고려문하주서야은길선생유허비”(高麗門下注書冶隱吉先生遺墟碑)가 홍살문의 보호아래 자리하고 있다. 또 한때 어모각(御慕閣)이라 불리운 경모각(敬慕閣)이 병립(竝立)하고 있으며, 조선 19대 숙종(肅宗)임금께서 야은 선생의 절의를 기리는 오언절구(五言絶句)에 영상(領相) 최석정(崔錫鼎)과 이조판서(吏曹判書) 조상우(趙相愚)가 숙종의 시운(詩韻)에 맞추어 시를 지어 “신규상절첩”(辰奎尙節帖)이라 제를 하여 보관 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야은 선생의 영정(影幀)도 봉안(奉安)하였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모각 석축을 개축하고 주목(朱木)을 기념식수 하셨었다.

한편 야은의 애제자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 선생의 기적비(記蹟碑)도 외롭게 야은 선생이 “술지”(述志)라는 칠언절구에서 “대나무숲 으로 상(床)을 옮겨 책을 보았다”는 그곳 대밭에서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사후에도 각별함은 그분들의 사도(師道)이리라! 금산에서 가져온 야은죽이 기적비를 감싸어 위로하는 듯 바람에 흔들린다.
율정은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농정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에 다녀온 후 수차(水車) 개발을 제안해, 조선의 농사 기술혁신에 기여했다. 또 화폐사용을 통한 시장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고, 교량건설을 통해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권장하는 등 실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율정의 선구자적인 발상은 그의 스승인 야은 길재의 영향이 크다.

채미정이 더욱 빛이 나려면 공자와 제자 간의 스토리가 회자되어지 듯 야은과 사제 간의 이야기도 스토리텔링이 되면 더욱 풍성한 화제가 되어, 채미정을 찾는 이들이 많아질 법도 한데, 아직은 여력이 없는 듯하다.
최근 의성군에서는 의성 비안박씨(比安 朴氏) 인물소개 사업에서 선생의 업적을 선양한다고 하니 그나마 구미의 홀대를 선생께서 백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 본다.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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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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