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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원 마을활동가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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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똑똑하다.” 얼마 전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지구의 미래를 위해 한국인이 저출생으로 가는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출생률이 낮은 선진국들이 뒤늦게 출산율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한국만이 저출생을 유지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잘 적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현생 인류 역시 신이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 즉 자연선택에 의해 생성된 종에 불과하다. 그런 한국인이 자신의 환경에 기막힌 적응을 하느라 “새끼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끼를 낳는 동물은 절대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새끼를 낳지 않고 내 몸을 키운 뒤 상황이 좋아졌을 때 새끼를 낳는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이러한 해석을 전제로 놓고 본다면, 정부의 출생 장려 정책은 그야말로 헛발짓 투성이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투입된 ‘저출산 예산’은 332조나 되는데 그사이 출산율은 1.13명에서 0.78명으로 떨어졌으니, 과연 전문가 집단의 정책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장관과 국회의원이 수없이 교체되었다고는 하나 십수 년간 국가의 핵심정책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효과를 낸 것은 결국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의 인구가 넘쳐 모든 환경문제가 발생하기에 국민들은 스스로 출산을 억제해 왔는데, 정부는 그 역방향으로 돈을 뿌려왔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구미인들 어찌 예외일 수 있으랴. 구성원의 행복이 그 도시의 행복이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구미의 인구증가’를 원하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졸업을 해도 마땅히 할 일 없는 청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인지, 혹은 하루 종일 경로당을 지키는 노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과연 국가의 출산율을 걱정하는지도 말이다. 100만 특례도시 구미를 원할까.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교육시켜 서울로 다 보내고, 농촌의 아들딸들은 모두 대도시로 보내 마을이 적막강산으로 되어버린 지금 아직도 ‘큰도시 구미’가 우리 구미의 비전일 수 있는가. 우리 부모세대까지는 자식들이 큰 도시에서 ‘성장’하고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 치자. 고향에 있으면 패배 인간이란 인식이 워낙 강했으니까. 그래서 쓸만한 사람은 모두 구미에서 떠나게 했고, 농촌은 황폐화한 것 아닌가.
이제 우리는 이를 되돌아보고, 청소년들이 구미에서도 꿈을 꾸고 펼칠 수 있도록 인식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오직 세계화, 일류, 일확천금의 성공 스토리에서 비껴나야 한다. 인공지능사회에서 지식이나 돈벌이의 경쟁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술과 세상이 워낙 폭넓게 변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일자리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부터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하고, 로컬에서 필요한 수요를 발굴하고 그에 맞는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함으로써 스스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숙한 도시는 공동체와 이웃에 기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간다. 구미 시민들도 여태 성공적인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개인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웃과 구미라는 공동체적 삶을 돌아볼 시점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소비와 생산의 총량증가를 최고선으로 여기는 성장중심사회의 폐해를 몸소 겪고 있는 중이며, 공적 공간에서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다.
통계청에서 20년 뒤(2043년)에는 인구가 500만 명 이상 줄어든다는 자료를 낸 바 있다(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경우엔 50만 명 정도 감소 예측).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며 결국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과거 고도성장 산업화시대에 적합한 양적 성장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뜬구름 잡는 허상이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 인구감소 등은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보람을 실현시킬 수 있고 환경문제의 확산도 막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삶을 원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찾으려 노력하지 않고, 외부의존에 매달려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재적 역량은 키우지 않고 이웃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은 채 무엇이든 더 채우려고만 하는 태도는 모두를 절망의 늪으로 몰아갈 뿐이다. 새해에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기 때문이다. 낙관을 제거한 희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실체없는 낙관 속의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