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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훈/구미시 형곡동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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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들이 지식인들의 재떨이로 전락했다. 더 이상 소셜미디어들은 집단지성 미디어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를 포기한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소위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지식의 찌꺼기 중에서도 아주 편협하고 이상한 것들만 골라 이 재떨이에 담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편협하지 않은 지식은 어렵거나 느낌이 약하고, 이상하게 뒤틀지 않으면 자극적이지 않아 억지로 지식위 뒷면이나 궤변을 교묘하게 꿰맞춰 입담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유튜버들은 쉽고 달콤한 디테일을 좋아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핫-한 먹는 이야기를 들여다 보자.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소금은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이다’ vs ‘소금을 안 먹으면 신체가 마비되거나 죽을 수 있다’, ‘산양 우유는 좋은 음식이다’ vs ‘산양 우유는 나쁜 음식이다’ 등등. 한 콘텐츠가 버섯의 효능을 말하면 한 콘텐츠는 버섯에 포함된 작은 문제점을 본질보다 몇 배 키워 재를 뿌리는 격이다. 그들의 코어-타깃은 아주 분명하다. 기초지식이 없어 무장해제 된 시청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아야 살 수 있다.
그들은 악마로부터 수많은 디테일을 찾아내 예쁜 접시에 담아 우리에게 권한다. 그 디테일들은 진실과 전체, 그리고 균형감각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일종의 벽이다. 모든 전문적인 지식에는 아포리즘이 존재하며, 그것이야말로 악마적 요소가 스며들 수 있는 최고의 숙주이다. 그래서 찌꺼기와 재떨이라는 비유를 썼지만 오히려 많이 순화한 비유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유튜브에는 많은 지식이 있다’라고 반박하겠지만 ‘지식이 정말 그런 것이냐?’라고 되묻고 싶다.
근거가 전혀 없지 않은 이러한 정보들은 독자들을 위해 제공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거의 선동 수준이다. 때로는 특정 기업들의 이해관계, 때로는 전문가들의 말장난, 때로는 재미로 만들어지는 이 콘텐츠들의 공통된 목표는 구독자 수 늘리기다.
그 가운데 가장 나쁜 경우는 과학계나 특정 분야의 소수의견이나 위험한 가설을 소개하면서 전문가라는 이름을 얹어 혹세무민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지적 유희이거나 재미 삼아 건네는 사탕발림 아니겠는가. 더 나쁜 경우는 거기에다 교묘하게 정치적 이념을 타서 시청자들에게 먹여주는 것이다.
이 때에도 그들이 감안하지 않는 조건은 듣는 이들이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단지 그 정보 하나밖에 제대로 아는 게 없고 아무런 비판력이 없는 독자들이 마치 최고의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그 지식을 자랑하고 가치관의 근거로 삼는다. 마치 그것은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가 풀섶에 놀던 개구리 머리를 깨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폐해만 보자면 차라리 온라인 백과사전을 베낀 텍스트로 영상을 제작하는 게 낫다.
한마디로 소셜미디어로 인한 총체적인 정보 오염의 시대가 온 것이다. 뜨거운 정보들의 홍수가 여기서 일어난다. 간혹 그런 찌꺼기가 또 다른 찌꺼기들과 잡탕으로 만나 중화되거나 정화되는 경우는 있지만, 그조차도 의도치 않은 오염현상의 2차 작용에 불과하다. 지금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저 접속자 수를 늘려 콘텐츠 목적을 달성하는 것,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판적 댓글, 그들의 관심사에서 이 호불호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지식의 유희라는 담배를 피우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재떨이에 담긴 재를 흡입하고 있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유튜브를 봐야 하고, 그러므로 부지런히 책을 읽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소셜미디어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는 방법은 오로지 기초지식의 성(城)을 튼튼하게 쌓는 것밖에 없다. 만약 책을 아주 싫어하거나 도저히 그럴 시간이 없다면 관심 분야의 강연을 담은 영상이라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든 몇 개월 안에 우리 손에 든 소셜미디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생존할 수 없다. 그 감옥은 매우 은밀하고 달콤한 필살기로 무장한 철옹성이기 때문이다. /이동훈(구미시 형곡동)
※본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