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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의 살며 생각하며(10)]어느 날 날씨를 보며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4월 01일
↑↑ 이일배 수필가(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경북문화신문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뜬금없이 철 아닌 눈이 내려 창밖의 산야를 하얗게 칠해 놓았다. 어느새 비가 뿌리면서 그 순백 세상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나게 한다. 검은 흙은 검은 흙이고, 마른 풀은 마른 풀이다.

그런가 싶더니 비는 문득 그치고 우중충한 하늘빛이 맑게 흐르는 물도 흐려 보이게 한다. 그것도 잠시다. 세상을 보고 싶어 몸살이라도 난 듯 구름 사이를 어렵게 비집고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다.

햇살이 힘겹게 뚫어놓은 구름의 문이 스르르 닫히면서 성근 눈발이 날린다. 눈발이 점차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아기 주먹만 한 크기로 내려앉는다. 한겨울에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눈 입자들이다.

언제 그런 눈이 내렸는가 싶다. 다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맑은 햇살이 산과 들을 어루만진다. 이제는 저 구름도 물러나 푸른 하늘빛을 드러낼까. 아니다. 또다시 회색빛으로 변한 하늘에서 가루눈을 뿌려 댄다.

그것도 잠시 눈은 빗방울이 되어 눈의 알갱이를 밀어내고 내려앉는다. 하늘의 먹구름이 무슨 힘에선가 조금씩 밀려나더니 햇빛 몇 줄기가 빗겨 내린다. 그렇게 눈과 비와 구름과 햇살이 얽히고설킨 날이 몇 번 되풀이되는 사이에 날이 저물어간다.

저 날의 변환들을 감당해 내느라 하늘인들 얼마나 숨 가빴을까. 하늘도 밤이 되면 좀 쉬고 싶을 것이다. 환히 개게 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날씨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내 살아온 걸음걸음이 돌아 보인다.

어느 날 무슨 필요에 따라 주민등록표 초본을 떼어 보게 되었디. 깜짝 놀랐다. 부모님 슬하로부터 분가하여 살게 된 이후로 주소지를 바꾼 횟수가 무려 스물한 번이나 되었다. 젊은 시절 식솔들을 끌고 이리저리 자주 옮겨 다닌 줄은 알았지만. 그토록 잦을 줄은 몰랐다.

대부분 발령지를 따라 봇짐을 싸 들고 옮겨 다닌 것이었지만, 옮기는 과정이며 살아가는 일들에서 희비며 고락이 교차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곤 했다. 수십 년 세월 뒤 끝에 선 지금은 젊어 한때 일로 가벼이 넘길 수도 있지만, 그때는 밤잠을 못 이루리만치 고뇌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기대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렵게 작으나마 내 집이라고 마련했을 때의 그 감동이야말로 내 생애에 몇 번 되지 않은 큰 보람으로 안겨 오기도 했다. 그나마도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더 너른 집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봇짐을 싸야 했다.

그렇게 마련한 집이었지만, 나는 정착할 수가 없었다. 인사이동을 따라 떠돌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객지를 헤매기도 했고, 아이들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난 후로는 멀쩡한 내 집은 비워둔 채 아내와 함께 다시 셋방을 전전하기도 해야 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한 집단에 대한 관리 책임을 맡는데 이르게 되어 주어지는 집에서 거처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타관을 유랑해야 하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절해고도의 섬 살이도 마다치 않고 몇 상자의 짐을 거센 파도를 넘고 넘어 날라 고단한 몸을 눕히기도 했다.

그런 곡절들 속에서 겪는 일들이 힘들기는 했지만, 마냥 고통으로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일들을 개척해 나간다는 도전 의지도 없지 않았고, 그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의 성취감으로 밤을 새워 가며 설레어 보기도 했다.

마치 궂고 개고. 맑고 흐리기를 거듭하는 오늘 날씨처럼 내 삶도 그렇게 변환이며 변전을 거듭해 왔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흐르고. 그 세월 속에 숱한 희로애락이 묻혀 가면서 그 흔적이 저 주민등록표에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는 이런저런 세월이 다 흘러가고, 주민등록표에 더 새겨질 흔적도 없게 되었다. 세상의 번다한 일들을 다 떨치고 퇴은 노옹이 되어 산야에 묻혀 산 지도 십수 년이 흘러갔다. 이 주민등록표 그대로 간직하다가 이 세상 영원히 떠났다는 딱 한 줄만 더 새기면 된다.

눈비가 섞바뀌던 날씨는 마치 어느 옛적 일이라도 되듯 하늘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 사이로 노을빛이 곱게 번져가고 있다. 회색빛 구름마저도 노을에 젖으며 연황빛으로 물들어간다. 이제 해도 쉴 자리로 가야겠다는 듯 산마루 뒤로 서서히 잠겨 가고 있다.

나도 이제 저 노을이고, 저 해다. 무엇을 더 바라랴. 저 빛깔 고운 노을이 되는 일 말고, 가벼이 쉴 자리를 찾아가는 저 해가 되는 일 말고, 무엇이 나에게 더 있어야 하랴. 내 삶을 파노라마로 펼쳐 주고는 갈 길도 일러주는 오늘 날씨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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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5억원. 가본 사람이 5만명이면 인당 1만원. 그 만큼의 가치를 주나요? 구미 연간 예산 2조원. 구미시민 40만명. 시민 1명당 5백만원. 난 왜 구미시의 공공서비스를 연간 10만원도 못받는 느낌이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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