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 경북 상주. 상주는 겨울철 대표 농특산물인 ‘상주 백다다기 오이’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겨울오이의 본고장’이다. 선명한 색감과 아삭한 식감, 깊은 풍미로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상주 오이는 ‘흑침 백다다기 오이’로 정평이 나 있다. 이 귀한 작물을 정성껏 키워내는 황광열 대표(53세)를 만나 상주 오이의 경쟁력과 농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황 대표가 농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14년 10월. 자동차 딜러로 활동했던 그는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의 부상으로 자동차 판매의 미래에 불안을 느꼈다. 전환점을 찾던 중 자동차 회사 연수에서 '10대 유망 직종 중 하나가 농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말리셨어요. 워낙 힘든 일이라는 걸 아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가격 변동이 적고, 상주 지역의 특산품인 오이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상주가 겨울오이 주산지라는 점, 그리고 30년 가까이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다는 안정성 때문에 ‘오이’로 품목을 결정했다.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비닐하우스(1,000평)를 임대하고 트랙터 등 장비 마련에 1억 4천만 원을 들여 농사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한 경기 침체에 이어 2015년 메르스 사태까지 겹쳐 첫 수확이 시작된 12월 말 오이 가격이 폭락하면서 2년간 사실상 ‘본전’만 간신히 건지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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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규모가 농사의 핵심
3년 차가 되자 조금씩 수확량이 늘고 기술이 쌓이면서 매출도 30% 가까이 증가했다. 그때부터 황 대표는 오이 농사에 자신감이 생겼고, 확신이 들었다. "오이농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모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후한 시설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더군요. 결국 대규모 하우스가 필요했고, 땅과 햇빛 조건이 좋은 현재의 농장을 찾아냈습니다.”
2021년, 계획했던 하우스 건립(1,850평)을 앞두고 자재값이 급등해 당초보다 6억 원이 더 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오이 농가들이 ‘샤인머스켓’ 등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기회로 삼았다. 무모한 듯한 투자였지만 결과는 대성공.
"2021년부터 오이 가격이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시작했죠. 2015년 100개 1박스에 2만3,000원이던 것이 2021년 18만에 달했어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오이 가격이 역대급 고점을 기록하며 부채를 갚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냈다. 올해 현재까지 연매출 4억 원, 순수익 3억 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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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흑침오이 '맛·저장력 최고'
상주에서 생산되는 흑침오이는 백다다기오이의 일종으로, 오돌토돌한 돌기에 검은색 점이 박힌 것이 특징. 10월에 모종하면 12월부터 수확하기 시작해 이듬해 7월까지 생산한다. 흑침오이는 단맛이 강하고 향이 진해 생식용으로 최적이다. 겉절이, 샐러드, 오이소박이, 오이지 등 다양한 용도에 적합하며 저장성도 뛰어나다. 특히 상주는 겨울오이의 원조 생산지로,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기후 덕분에 품질이 우수하다. 50년 축척된 선배 농가들의 노하우도 상주 오이의 경쟁력이다.
“상주 흑침오이는 상주에서만 제대로 납니다. 50년 전부터 전해진 노하우가 있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주 내에서도 흑침오이는 귀한 품종으로 꼽힌다. 황 대표는 상주시공동조합법인에 소속돼 있으며, 생산된 오이는 주로 서울 가락시장, 이마트, 롯데마트, 농협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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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과학이다” 차별화된 농법황 대표의 농장은 단순한 하우스가 아니다. 지하 150m 암반수로 물을 공급하고, 고온성 미생물을 활용해 병해충을 줄이고 화학비료 사용을 최소화한다. 이는 토양 환경 개선은 물론, 오이 맛 자체의 차별성을 만드는 중요한 비결이다.
“40도 이상의 고온에서 배양된 미생물은 인체에 이로우며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땅이 건강해지니까 화학비료 사용도 크게 줄일 수 있었고, 농약 사용도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덕분에 오이 맛이 완전히 달라졌죠."
황 대표는 기후변화로 인해 매년 농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쌀 가격이 폭등하듯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비슷한 상황이 올 겁니다.”
그는 노지 작물은 병해충과 기후 문제로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며 모든 농업은 결국 인간이 제어 가능한 ‘시설재배’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겨울오이처럼 난방,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크더라도 철저한 계획과 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후배 귀농인에게 경험없이 농사에 덤비는 건 무모한 일이라며 현장에서 배우고 철저히 준비한 뒤에 시작하길 당부했다. 오이는 특히 시설투자가 크기 때문에 실패하면 손실이 크다는 것. 따라서 준비없이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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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구조 바뀌어야 농가가 산다”
농사를 지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유통 구조였다. 황 대표는 농가가 제값을 받고, 소비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자경매, 온라인 직거래 등의 시스템이 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이 100원에 팔면 소비자는 200원에 사는 게 맞는데, 지금은 500원에 사죠. 중간 마진이 너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