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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의 살며 생각하며(15)]이 상처를 어찌할까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19일
이일배 수필가(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이일배 수필가(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경북문화신문
살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사는 일이란 상처의 극복 과정이라 할까. 그 상처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삶이 어렵거나 심지어는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요즈음 나는, 남이 알면 비소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는 일로 칼끝이 찔러오는 듯한 아픔을 겪고 있다.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 이 마을에 발을 내리고 산 지도 어언 십수 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마을에서 아름답게 여기는 정경 중 하나가 마을 숲 가장자리 한 곳에 다소곳이 피고 있는 상사화 꽃밭이다. 누가 오래전 몇 포기 심은 것이 점점 벌어 칠팔 월 한여름쯤에는 화사한 홍자 빛 꽃밭을 이룬다.
 
상사화는 여러해살이 알뿌리 화초로 이른 봄에 움이 터 5, 6월까지 난초 같은 치렁한 잎을 돋우어내다가 점점 말라 든다. 7월 말경 잎이 다 말라 땅속으로 잦아들 무렵, 촉이 나면서 비늘줄기 꽃대가 솟고 그 끝에 홍자색 꽃 몇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난다. 잎은 꽃을 그리다가 말라가고, 꽃은 잎을 그리다가 시들어간대서 상사화라 했다던가.

그 꽃이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유월 들면서 숲에 풀이 무성해지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풀베기에 나서 숲을 말끔하게 만드는데, 그날 이장은 자기 과수원에서 쓰는 네발 예초기를 몰고 나와 숲의 풀들을 무차별로 밀어버렸다. 그 ‘무차별’ 속에 꽃을 그리며 말라가고 있던 상사화 잎들도 무참히 걸려들었다. 갈기갈기 짓이겨졌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누구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다. 상사화 잎이든 뭐든 숲을 말끔히 하기 위해 쳐내고 베어내어야 할 잡풀일 뿐이었다. 나는 그 참경을 목도하고 ‘박탈당한 그리움’이라 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상사화가 잎이 말라가는 것은 꽃을 향한 그리움의 간절한 몸짓이 아니던가. ……그리워할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움을 무참히 박탈당한 것이다.” 그 박탈이 곧 나의 박탈로 옮아 왔다.
 
상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둑길은 아침저녁 즐겨 거니는 나의 산책길이다. 그 강둑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나의 듬직한 의지처고, 아늑한 위안처다.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 온 마을을 꽃동네로 만들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정량한 그늘 길을 만들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봄 못지않은 꽃길이 되게 하고, 겨울에 눈 내리면 새하얀 꽃들을 피운다. 내가 이 마을 사랑하는 으뜸가는 까닭이라 해도 좋은 모습들이다.

어느 날, 강둑에 커다란 굴착기가 오르더니 그 나뭇가지를 마구 찍어댔다. 이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굴착기를 지휘하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너무 무성해 차 다니기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톱으로 곱게 못 다듬느냐 했더니, 그러면 일거리가 너무 많아진단다. 처참했다. 부러지고 꺾어지고 찢어지고 벗겨지고, 채 덜 부러진 가지는 꺾어진 채로 덜렁거리고…. 어쩌면 이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장이 면사무소에 건의하고, 면에서 장비를 내주어 그렇게 했을 터이다. 면 담당자에게 항의했다. 나무를 굴착기로 짓이기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 참상을 나와서 한번 보시라 했다. 이장에게는 ‘당신 과수원 과목도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호소하듯 물었다. 그래도 끓는 속을 가라앉히기 어려워 동네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그깟 나무 가지고 뭘 그러느냐!”라는 말밖에 들을 게 없을 것 같아 더욱 참담했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은 이장이 시원시원하게 일을 잘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니 몸이 그대로 내려앉는 것 같다. 나 혼자만 왜 이러는 걸까. 면에서도 이장도, 내 뜻과 마음을 조금은 살핀 것인지, 며칠 후 꺾이고 부러진 자리를 톱으로 다듬었다. 조금 나아 보이긴 했지만, 나무와 나에게 진 상처가 쉽사리 아물 수 있지는 않았다.
 
마을 숲에 갈 때마다 상사화 꽃자리를 살핀다. 잎은 무참히 짓이겨졌을지언정 꽃대는 솟아주지 않을까. 솟을 때가 되었는데, 때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픔이 다시 솟구친다. 이 아픔을 누구에게 말한들 한마음이 되어줄 사람도 없다. 물색 모르는 사람이라 할 일밖에 없을 터다.

빌면서 기다린 끝에 지나간 해들보다 두어 주일쯤 늦게 꽃대 몇 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반가움일지, 안타까움일지 다시 한번 마음이 아려왔다. 그 참혹한 상처 속에서, 잎 시절을 그리며 꽃대를 피워 내려 얼마나 안간힘 돋우었을까. 무지하고도 비정한 인간의 탓으로 얼마나 아린 시간을 치러내야 했을까. 이리 아픔을 이겨 내려 한 것이 고맙고도 대견스러울 뿐이다.

나는 어쩔까, 마음 깊이 새겨진 이 상처를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나. 다시 봄이 오기만 기다려야 할까. 저 처참히 찍히고 베어진 가지에서 새잎, 새 가지가 날 봄을, 저 무자비하게 짓이겨진 알뿌리가 다시 기력을 돋굴 봄날을-.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내 상처를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 다시 상처로 새겨져 온다. 이 물색없는 상처를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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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5억원. 가본 사람이 5만명이면 인당 1만원. 그 만큼의 가치를 주나요? 구미 연간 예산 2조원. 구미시민 40만명. 시민 1명당 5백만원. 난 왜 구미시의 공공서비스를 연간 10만원도 못받는 느낌이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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