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이일배의 살며 생각하며(25)]불의지병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5월 19일
↑↑ 이일배 수필가(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경북문화신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머리가 빙 돈다. 정신이 어지럽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방이 빙빙 돈다. 몸이 방 따라 마구 구른다.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다. 한참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어서려는데 몸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서가를 잡고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 벽을 짚으며 쓰러질 듯이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고 나와 물을 두어 잔 들이켰다. 맨손 체조했다. 정신이 약간 수습되는 듯했다. 세수하고 책상에 앉았다. 조금 진정되는 듯하여 잠시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늘 하는 대로 산책길을 나섰다. 두렁길 지나 마을공원에서 체조하고 강둑을 걸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걸음이 비틀거린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이대로 주저앉아 땅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튿날, 그 이튿날도 같은 증세가 반복되었다. 친구의 의사 자제에게 무슨 과에 해당하는 이상이냐 물었더니 이비인후과나 신경과에 해당하는 증세일 것 같다 했다. 달팽이관이나 뇌를 검사해봐야 할 것이라 했다. 병원 길을 나섰다.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 증상이 계속된다면 몸의 중심 잡기뿐만 아니라 언어가 끊기고 기억 활동이 마비되는 증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바엔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증명을 받아 놓긴 했지만, 대비할 일이 그뿐이랴.

다행히도 나에겐 걸려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를테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식솔이라든지, 갚아야 할 채무 같은 것도 없다. 아이들이야 저마다 살 도리를 지니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아내는 이미 먼 나라에 가 있으니 걸릴 게 없다. 내가 남겨놓은 책들이며 여러 가지 집물들이야 하늘로 날려 보내면 되지 않으랴.

걸리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달거리로 어김없이 만나 술잔에 정을 띄우던 친구들이며, 수필 공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더욱 걸린다. 수필이란 원래 자기 고백의 문학이 아니던가.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미움도, 자랑도 부끄럼도 그대로 털어놓으며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 늘그막 생애에 따뜻한 무늬를 새겨 주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구업口業, 신업身業이 삭고, 의업意業을 끝으로 조용히 피안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쓰러질지는 몰라도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은 안고 갈 것이다. 별 걸림이 없는 데다가 따뜻하게 안고 갈 것도 있으니 불안하고 두려울 건 없지만, 고통을 줄여 도피안 하고 싶을 뿐이다.

먼저 이비인후과로 갔다. 어지럼증 때문에 왔다고 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라 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일어난 증상이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십여 개 항목으로 물었다. 의사가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검사해 보자 한다.

앞이 캄캄한 두꺼운 안경을 씌우더니, 눈을 크게 뜨고 보이는 점을 따라 눈동자를 굴려 보라 한다. 안경을 씌운 채 누우라 하더니 목에 힘 빼라 하고 이리저리 돌렸다. 일어나 직선으로 걸어보라 했다. 잘 걷다가 돌아서는 순간 넘어질 듯 주춤했다.

검사 결과 이석증에 의한 어지럼증은 아닌 것 같고, 중추성 어지럼증이 의심된다 했다. 이석증보다 더 중증일 수 있고, 뇌졸중과 관련 있을 수 있다 했다. 신경과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뇌졸중으로 꼬박 한 해를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올 것이 오는가.

신경외과로 갔다. 소견서를 보여주니 MRI 촬영을 해보자 했다. 똑바로 누워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듯 눈 감고 있으니 연속적인 기계음과 점점이 끊어진 음이 반복적으로 고막을 때린다. 자기장으로 고주파를 발생시켜 그 반응을 통해 인체의 필요한 부분을 영상화시키는 장치라 했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로 오니 영상화된 뇌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던 의사가 별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오느냐 하니 일시적인 충격이 원인일 수 있다며, 뇌에 충격을 가하거나 머리 안마 같은 건 하지 말라 했다.

‘머리 안마~!’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일을 의사가 짚어낸다. 어이가 없다. 늙은 아비 건강을 위해 안마 의자를 마련해 준 아들을 기특히 여기며, 머리를 비롯한 전신 안마를 즐긴 것이 병통이 될 줄이야!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내 어리석은 소치다. 아들을 탓할 일은 더욱이 아니다.

자동차가 그렇듯이, 문명의 이기라는 게 사람을 편하고 편리하게 하면서도 폐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임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구나. 문명의 편의를 누리려 하기 전에 살펴 삼가기를 마다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분별없이 따르는 문명의 종이 될 것이 아니라 문명의 슬기로운 주인이 되어야 할 일이다.

병원을 나서는 걸음은 여전히 취한 듯 흔들거린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곧 회복되겠지만, 내 걷는 걸음이 다시 돌아본다. 이기의 유혹 앞에서 나를 먼저 돌아보는 슬기가 나에게 있는가, 내 삶의 주인이 된 걸음으로 나를 걷고 있는가, 이 불의지병不意之病으로 다시 돌아본다. 피안은 스스로 가꾸어가야 할 일 아닌가.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5월 19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인터뷰]“구미의 명품 멜론 디저트로 세계를 사로잡겠다”..
`제2의 애니콜 신화 쓴다` 구미시, 삼성투자 구체화에 `로봇 TF` 본격 가동`..
6억 들인 구미 다온숲 축제, 볼거리는 어디에?..
‘2026년 신활력 사업’ 액션그룹 7기 1단계 모집… 팀당 최대 4,800만 원 지원..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장 ˝시민에게 인정받는 `일 잘하는 강한 의회` 만들 것˝..
구미시, 삼성 19조 투자 발맞춰 AI 인재 1,000명 키운다..
구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첫 회의...2027년도 예산 편성..
구미대, ‘2026 전국 고교생 게임아트·웹툰 공모전’ 개최..
상주시, 민선9기 시정구호·5대 시정방침 발표..
김장호 구미시장, 민선 9기 경제·정주·공간혁신 본격 시동..
최신댓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구미에 이런 오랜 역사가 있었군요. 취재에 고생하셨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이 구미에서... 와우~. 관람료도 적당히 책정했군요. 정말 구미에서 만나기 쉽지 않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군요. 강추!!
구미는 별천지군요.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관련 기사인가? 하다가 보니... 구미시 의회로군요. 전국구에서 힘 못 쓰고 구미에서 '안방 여포' 하려는건지. 시의회가 어찌... 에휴.
오폐라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오페라의 전편이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입니다. 구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공연입니다. 강추!!
대통령과 악수하는데 이철우 도지사가 뒷짐지고 악수하데. 주려던 떡도 도로 거두겠다.
너거들이 무능한게 아니고?
국가산단 경쟁력 강화와 지역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KTX 구미역 정차? 나같으면 "구미 오시느라 오래걸려서 고생하셨을 겁니다. 기업의 직원과 협력사 직원들이 출장 다닐 때 이렇게 교통 시간이 많이 걸리니 불편할 뿐 아니라 산업경쟁럭도 악화됩니다. 해외법인이나 글로벌 파트너사에 시간을 다투는 출장가려고 인천공항에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랬을 것 같다. 말에는 초점이 있어야한다. 정주여건이야 그냥 시장이 알아서 하거나 경북지사와 얘기해도 될 일.
근대 그때 다부동 방어선 있고 가산 대구 방향은 국군, 유엔군 지역이고 구미 선산 왜관은 북한군 점령지이고 다부동 진출의 교두보인데 후방폭격은 당연함
일본어 이동네주위에4~5십년거주한시닌으로서금리단길은금오산가는도중길이어서상권형성에어려룸이많을것같네요
오피니언
과거 회색빛 쓰레기 매립장 ‘도심 속 정원’으..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한우충동(汗牛充棟)汗 : 땀 한, 牛 : 소.. 
매일 걷는 공원길,보도블록 구멍마다 삐죽삐죽 .. 
여론의 광장
방통대 중문과 한시 모임 ‘불역시호’, 구미서 여름 캠프 개최..  
LG두드림봉사단, 취약계층 1인 가구 위해 `보람찬 한 끼` 나눔..  
국립금오공대, 집단연구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선정..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