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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배 수필가(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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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일상의 일인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담담하고 싶었다.
“……일단, 전신 골 스캔과 펫 시티를 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의사의 말에 방점은 ‘치료 방법’에 있는 것 같았다. 병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는 어투다. 알겠다 하고 진료실을 나와 절차에 따라 골 스캔을 하고 페트시티 예약 날짜를 받았다.
두어 달 전부터 오른쪽 가슴 한쪽이 가끔씩 뜨끔거렸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서 저절로 삭아질 때를 기다리며 지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니 무슨 장기나 몸 안 조직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두었다간 더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 처방을 받으러 병원에 가던 날, 의사에게 증상을 말했다. 폐나 간, 늑골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 했다. 찍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며 진통제나 먹어 보라 했다. 먹었다. 조금 덜해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약을 다 먹은 뒤에도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시 의사에게 말했더니, 흉부 시티를 찍어 보고 이상이 없으면, 복부 시티를 찍어 보자 했다. 흉부 시티에 이상이 없어 복부 시티를 찍었다. 화면을 이리저리 굴려 보더니 내가 통증을 느낀다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 이상이 조금 보인다며 전문의를 찾아가 확인받아 보라 했다. 내 통증과 관계가 있을 수 있느냐 하니 없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한 이상이었다. 병원에서 준 판독지를 들고 그 분야 전문 의원을 찾아갔다. 영상이 필요하다 하여 받아다 주었다. 초음파 검사며 혈액 검사를 해보자 했다. 모로 누워 있으니 몸 한 부위에 기계를 넣어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며칠 뒤에 오라 했다. 오라는 날에 갔다. 어떤 부분의 수치가 정상보다 좀 높게 나왔다 한다.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했다. 내 몸이 미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도회의 조금 큰 병원으로 갔다. 엠아르아이를 찍고, 다시 모로 누운 상태에서 무슨 기계 같은 걸 몸 안에 넣어 검사하는데, 약간의 살점을 뜯어내는 듯한 느낌이 몸을 따끔 놀라게 했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일주일 뒤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옆구리가 간혹 뜨끔거리는 것은 장기와는 관계없는 근육통이라며 통증이 느껴질 때 주물러주면 된다며 대수롭잖은 거라 했다.
일주일 뒤, 대수롭잖은 게 대수로운 것을 불러낸 것 같았다. 대처의 큰 병원으로 가 보라며 여러 가지 자료를 주었다. 별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오래 진행되었을 수 있다 했다. 기특한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증상이 없다가 자는 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나한테 그런 복이 와줄까.
남매뿐인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명의가 많다고 소문난 병원으로 갔다. 아이들이 나에게 요즈음이 어떤 세상이냐며,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했다. 아이들이 나보다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 한 구절을 떠 올렸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 (이문재, 「오래된 기도」)
‘오래된 기도’란 익숙해져 있는 기도라는 말이다. 우리가 늘 하고 있는 기도라는 뜻도 된다. 불가의 말을 빌리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유위법’이고,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위법’라 할 수 있을까. 이 유위법이며 무위법이라는 건 받아들이고 말고, 인정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야 하는 법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많이 살았잖아. 너희들이나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저 통증이나 살살 오면 좋겠다. 허허”
골 스캔이며 페트시티는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을 확인해 줄 것이다. 그것들이 확인해 주는 바를 따라 의사는 치료에 임할 것이다. 치료하는 대로 받으면 된다. 적절한 진통제도 처방해 줄 것이다. 그러다가 잘 나으면 다행이고, 안 나으면 ‘무위법’을 따라가면 된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오라는 날 다시 오리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아이들의 손길을 받으며 먼 길을 달려 집으로 왔다. 아이들은 제 어미 없이 혼자 사는 아비라고 몸 어디 어디 좋다는 건강식품이며 여기저기 영양을 채울 수 있는 먹거리들을 잔뜩 부쳐왔다. 이것도 저들의 혼자가 아니라는 인연의 법이요, 핏줄을 향한 본능의 무위법이라 할 수 있을까.
몇 가지인지도 모를 무얼 무얼 하루도 거르지 말고,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잘 챙겨 드시라 했다. 그 많은 걸 다 먹으라고?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휴~! ㅎ 그래, 고맙다.”
그 오래되어 익숙한 기도를 다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