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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장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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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늘 '오랜만'에 가는 곳이었다. 서울의 외갓집을 갈 때 말고는 딱히 서울에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물론 서울에서 기차를 내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서울역을 올려다보거나, 서울역 앞에 수많은 차들과 대우빌딩을 보며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곤 했다.
서울과 경기의 지명들은 나 같은 지방 사람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서울', '강남', '강북', '종로', '수원' 이런 지명들을 빼고 보면 이게 도시 이름인지, 도시 안의 다른 구역 이름인지 알기가 어렵다.
내비게이션이 생긴 후 서울도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충청도 북단 '천안'을 넘어 경기도로 들어서면 낯선 이정표들이 지방 촌놈을 맞이한다. '평택', '안성', '용인'처럼 그나마 알아볼 만한 지명도 있지만, '안산', '시흥', '일산', '분당' 같은 지명이 등장하면 도시 이름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일산', '분당'이 서울의 어느 지역인 줄 알았다. 게다가 서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웬만해선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이라고 친절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그저 그 지명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순전히 '촌사람'의 몫이었다.
지금은 구미나 김천 같은 지방의 도시도 '선산'이나 '금릉'을 통합하면서 행정구역상 도시와 도시가 직접 맞닿아 있다. 하지만 당시 지도를 보면 구미시는 선산군에, 김천시는 금릉군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구미에서 김천으로 가자면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확연히 구분되는 '시골의 모습' 같은 것이 있었다. 좁아진 2차선 국도와 플라타너스 가로수들, 그 주변으로 펼쳐지는 논밭과 비닐하우스. 그런데 서울과 경기는 그런 완충 지역이 없다.
과거 지방 사람이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 갑시다' 하면 영락없는 '촌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이야 그렇다 치자. 서울 강남 아래에는 광명, 안양, 안산, 의왕 그리고 수원까지 도시들이 이어진다. 완충 지역이 없고, 여백이 없다.
한때 자동차 동호회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동호회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용인 에버랜드 앞에서 모여서, 점심은 수원에서 먹고, 성남 분당에서 차를 마신 다음, 고양 일산 킨텍스까지 주행을 한 후 헤어지는 코스로 움직였다. 마치 김천에서 모여서 구미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대구에서 차를 마신 후 경산쯤에서 헤어지는 코스 같은 느낌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넘나드는 서울과 수도권의 생활 스케일. 지방 출신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수도권 생활을 하게 되면 출퇴근만으로도 자동차 동호회 코스와 별다를 바 없이 움직이게 된다. 여러 곳을 들리지만 않을 뿐.
서울 사람들은 큰 지명을 말하는 것에 인색하다. 사는 곳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한남', '상암', '잠실' 같은 동네 이름을 말한다. 경기도 사람들 중 상당수도 나 같은 지방 출신이 알기 쉬운 '도시명' 대신 '일산', '분당', '영통', '동탄'을 말한다. 각각 고양시, 성남시, 수원시, 화성시에 속하지만 이제는 고양, 성남, 수원, 화성이라는 도시 이름을 압도하거나 그에 못지않게 익숙해진 지명들이다. 물론 근래에 와서는 구미시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닌 '선산'을 구미시에 포함된 작은 '읍'으로 만들어 버리긴 했다.
오늘도 수원 영통에서 출발해 용인과 성남 분당을 지나 서울 광화문으로, 화성 동탄에서 수원과 용인을 거쳐 이천으로, 의정부에서 강남 신논현으로 사람들이 이동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거대한 순환. 서울과 경기의 역동적인 모습은 때로 장엄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피곤하고 힘겹기도 하다.
모두가 몰려드는 서울과 경기.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도 오늘 지하철 1호선이나 강남으로 가는 광역 이층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러다 문득, 떠나온 고향의 여백과 여유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