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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가족같은 소를 떠나 보낸 안동시 노 부부의 절절한 사연

김경홍 기자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1년 01월 14일
구미에 거주하는 아들 N모씨의 편지
ⓒ 경북문화신문

 


<이 글은 구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N모(구미시 형곡동)씨가 보내온 사연입니다. 500미터 반경 이내에 구제역이 발생하자, 가족 같은 소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 남제권(84), 어머니 이 춘희(73)씨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해12월 13일에 김장을 가지러 집에 온 누나가 집을 떠나면서 침울한 목소리로 내게 한 통의 전화를 보내왔다.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순간, 머릿 속에 우리 마을에도 올 것 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아랫마을 다리 옆집에 있는 소를 오늘 묻었다. 트럭에 타지 않겠다고 울어대는 소의 울음소리가 온 골짜기를 흔들어. 그 소리를 듣고 두 노인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일어나지도 못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밖에 매어놓은 소를 얼른 마구에 몰아넣었어.” “그러면 우리 소도 묻어야 하는데…….” 하고 말을 했더니, "안 그래도 그 집소가 실려 가는 모습을 두 노인네가 보고는 식사를 안 한다기에 나오면서 겨우 한 두 숟갈 드시게 하고 나왔다"며 집에 전화 한 통 해서, 너무 비관적인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하라고 했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예상대로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으셨다. “ 시절이 이런데 어쩌겠습니까? 어머님! 마음을 굳게 먹고 식사를 제 때 하십시오.”라는 말 밖에 어떤 위로도 전할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매일 서너 번씩 집에 수시로 전화를 드렸더니 “죽도 잘 먹고, 무엇이든 주면 너무 잘 먹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머님의 그 말씀이 오래도록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 이었다.


 


2010년 12월 17일 운명의 날!


출근과 동시에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찍혀진 번호는 고향집 전화번호였다. “어머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 “내일 소 묻으러 온단다……. 어쩌면 좋노?”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슨 말로 어머님의 애끊는 마음을 달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올 것이 왔구나!, “어머님 마음은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보다 더 한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마음 굳게 먹고 소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마음 편히 보내드리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니셨다. “우리 소는 남들하고 다르잖아......, 가족과 다름없잖아…….” 눈물로 전해 오는 어머님의 목소리에 나 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 묻을 장소를 정해 놓으라고 하는데 어디가 좋노?” 집근처에 묻게 되면 묻은 장소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아파할 부모님들이 걱정이 되어 집에서 1㎞떨어진 한 곳이 생각이 났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묻으세요. 오미골 밭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남 준 밭에 묻으면 좋아 하겠나?” “괜찮습니다. 몇 년간 경작을 하지 않은 아래쪽 작은 밭에 묻으세요. 묻으러 갈 때 방안에서 나가지도 말고, 따라 가지도 마세요. 저가 지금이라도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합니다. 아버님은 어떠세요?”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허망한 마음이 실려 계셨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에게 먹을 것만 자꾸 갖다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어머님이 얼마나 슬펐으면 표현도 못하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나는 어머님을 위로해 드려야 했다. “소도 소지만 사람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식사 거르지 말고 드세요?”라는 궁색한 말만 되풀이 하며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부모님의 애끓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소가 부모님 곁에 더 있게 시간을 지체하려는지 새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 눈을 보면서 부모님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겠지?’ 하고 생각하며, 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형제들에게 하나 둘 전화를 했다.


잠시 뒤 작은 누나와 여동생이 집에 가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눈이 이렇게 내리는데, 차도 없이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그냥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해서 걱정이 앞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눈도 오는데 오지 말라고 해라…….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라.” 는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작은누나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머님께 왜 간다는 말을 했느냐"면서 화를 냈다. "부모님 몰래 가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안 갈 우리들이냐고.” 내심 누나와 여동생의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오후 4시쯤에 또 다시 전화를 했더니 가늘고 힘없는 어머님의 목소리에 많이 우신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엄마!”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와 여동생이 막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왔을까?’ 알고 보니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눈 내리는 빙판길을, 그것도 시내에서 30㎞나 걸리는 먼 길을…….’ 아마도 택시비로 10만 원 이상은 족히 지불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가 수 없이 갖다 주는 소죽을 소는 잘도 받아먹었다고 했다. 아버님은 누님과 여동생이 억지로 권하는 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힘없이 수저를 내려놓았고, 어머님은 얼마 전 김장을 할 때 사다 놓은 막걸리 몇 잔으로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외지에 있는 자식들의 전화를 받아가며 그렇게 밤을 보냈다고 했다. 작은 누님은 큰일을 치르려면 아무래도 남자가 있어야 한다며 형님을 아침 일찍 오라고 했다고 했다. 이왕 떠나보내는 소를 부모님이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 아는 지인을 통해 안동시청과 예안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장사를 잘 지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2010년 12월 18일 통곡의 그 날!


아버지는 늘 해왔 듯이 새벽에 일어나 소죽솥에 짚과 마른풀을 섞은 마지막 소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지난 가을 뽑아 온 고추나무를 아궁이에 하나 둘 넣으면서 새어나오는 연기를 마시면서 차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소죽을 끓여 먹이고 나면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텐데……. 그동안 소한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슬픔이 되어 돌아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밭에 떨어진 감 이파리를 먹으려고 할 때 그냥 둘 것을……. 겨우내 먹이려고 장만한 꼴도 아끼지 말고 더 먹일 것을……."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는 동안 소죽을 끓여 소에게 먹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 소의 모습에 아버지는 차마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어 소의 목을 끌어안고 속으로 참아왔던 울음을 밖으로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곁에서 소를 쓰다듬으며 함께 보던 어머니도, 누님도, 여동생도 함께 엉엉 울었다. 여동생은 휴대폰 카메라로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마지막 가는 소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형님은 경산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제설작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빙판길을, 안동시내에서 일곱 고개를 넘어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몰아 고향집으로 가고 있었다. “형님! 소가 나가는 모습을 아예 보지 못하도록 부모님을 어디 다른 곳에 모셔다 놓고 소를 데리고 가세요.”하고 했더니.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겠나?”라고 했다. 형님이 고향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동시청에서 살 처분 처리반도 도착했다. 매몰처리지로 꼽은 오미 골은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들어갈 수가 없으며, 다른 곳으로 정해야 한다고,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되도록이면 부모님이 볼 수 없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좋겠다고 했더니 “박골”에 가서 묻고 오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소를 차에 태우지 말고 형님이 소를 몰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물어보니 그렇게 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소가 집을 떠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어머니, 아버지는 방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애써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슬픔을 삼켰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아끼고 사랑했던 소는 어느 여름날 소 먹이러 가는 것처럼 형님이 몰고 떠났다. 부모님의 슬픔을 뒤로 한 채 집을 떠나 밭골로 향했던 것이다.


 


형님이 소를 몰고 밭골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인에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도 걸리지 않았는데 꼭 소를 묻어야 합니까?” “우리 소가 걸리지 않아도 예방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묻어야 한다.” “시료를 채취해서 검사라도 해보고 걸렸으면 묻어야 하지 않나요?” “국가시책인데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잖아” “소보다 사람이 먼저 가겠어요.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어떻게 되면…….” 평소에도 약간 억지를 부르는 동생이었지만 내가 공직에 몸담고 있다고, 어떻게 해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이 순간 누군들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서 생떼라도 써보고 싶었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형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우리 가족이었던 소는 소리 없이 생을 마감했다. 소를 묻고 온 형님은 리어카를 개조한 아버지의 자가용을 보기가 싫다며, 망치로 나무판자를 부셔버렸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소죽을 끓이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잠시 뒤 소를 몰러간다며 동구 밖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마구에 둘러친 노란테이프를 보면서 소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아채곤 힘없이 돌아오며 가슴속으로 전해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 에 필 로 그>


 


소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는 소를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다. 아버지는 매일 빈 소죽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펴 아궁에 불을 때면서 습관처럼


떨어진 고추 이파리를 주워 모아 소를 줘야 한다고 마구로 향하다가 소가 없다는 사실에 다시 돌아와 앉아 떠나간 소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머님은 아버지와 함께 두 분의 자가용인 소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면소지재에 볼 일을 보러 갈 때면 지나가던 자가용도 잠시 서서 “소가 참 무던하네요. 너무 신기해요. 이런 소는 첨 봐요”하면서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들도 많았다며, 6년 전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소가 맨홀에 빠져 요동도 못하고, 손도 쓰지 못하는 하는 상황 속에서 119가 출동하여 구해줬는데……. 그 때 너무 고생하여 오래도록 함께 할 줄 알았는데……. 구제역 때문에 소를 잃었다고 마음아파 하면서 늘 소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는 가족처럼 아끼던 소가 떠나 밭을 갈 때마다 “이로! 이로!....., 워! 워!”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슬프다. 또한 고추밭에 약을 치기 위해 모터와 호스를 싣고 이동할 때 끌어줄 소가 없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더욱더 가슴 아픈 일은 소가 떠난 뒤 부모님의 소일거리가 업어졌다는 것이다. 겨울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새벽잠을 깨면 소죽을 끓이고, 그 소죽을 퍼 대어 소를 주고, 소가 소죽을 다 먹고 나면 소를 양지 바른 곳으로 일광욕을 시키러 내다 매고, 소가 나간 마구에 쌓인 소똥을 치우고, 소똥이 모이면 밭으로 실어내던 반복되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더욱 슬프게 한다.


 


소가 우리 가족을 떠났지만 차디찬 이 겨울이 지나면 희망의 새 봄이 또다시 오듯이 어머니 아버지도 가슴 아픈 일들을 이겨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또한 하룻밤이 지나면 쉴 새 없이 전해오는 구제역 확산 소식에 언제나 이 사태가 끝날지 까마득하기만 하지만, 고통 받는 축산농가와 구제역 근무로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속에 희망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구제역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따름이다.


 


<구제역, 너는 쟁기가 돼라, 나는 소가 될 터이니,>


/ 김경홍


 


 


 


겨울이 뼛속의 계곡까지 스며들고 있다.


가슴이 시린 길이


봄으로 가는 노선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겨울의 어깨 위에 은신했다.


내가 살아남은 것일까. 모진 목숨일까.


오랫동안 간직해 온 그 것들, 사진 몇 장 꺼내 든다.


모락모락 사랑을 피워내던 겨울 굴뚝,


노모의 굵은 가래침은 안전할까.


동구 밖을 걸어나온 착한 소 몇 마리,


길 위에서 살 길을 찾다 눈물 안에


매몰된다. 올 굴뚝마을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하다.


이 죄 없는 무죄를 매몰하는


인간의 방종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끝이 나는 것일까.


사람의 품에서 태어나 짐승으로 버티다 간 아버지들,


그들도 한때는 매몰돼 악몽의 역사가 됐으니,


서러운 애비들을 얼마나 더 두어야 하는 것일까.


아. 소와 돼지, 닭과 오리가 자식인 순박한 가슴들,


오즉했으면 탯줄을 끊고 나간 제 핏줄마저 거부하는 것일까.


 


걸어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눈 쌓인 마을, 동구 밖 노모가


귀향길을 다급히 막아선다.막아서지만


아, 사랑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것인가.


귀향길이 잦아질수록 소들은 끌려나갔다.


이제, 누가 겨울을 갚아엎고 꽁꽁 얼어붙은


봄을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겨울길이 끝나는 계곡 깊은 마을 언저리,


올 겨울만큼 사람 사는 길이 끊긴 적이 있던가.


 


새벽이 오는 굴뚝마을은 좀처럼 빛이 들지 않는다


닭이 홰를 치던 닭장 속, 닭들은 또 노모의 근심 깊은


가슴 이랑마다 매몰되고, 그 속에서 걸어나온 생애들이


소줏잔을 쥐어든다. 취기로 이 깊은 겨울을 빠져나오려는 것일까


눈 뜨고는 버틸수 없는 슬픔, 그 흥건한 슬픔, 그 깊음 속으로


흘러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아름다운 삶은 남에게 있질 않고 내 안에 있었으니,


어미는 그랬다.


“애야, 남과 싸워 이기려 들지 말고,


자신과 싸워 이기려고 해라, 그게 삶이다”


 


 


우리는 지난 한해 얼마나 많이


남이 될수 없는 남과 핏대를 올렸는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들을 끊어냈는가.


식육점의 도마가 돈 만큼의 살갗을 도려냈 듯


혹은 욕망만큼의 무를 도려냈듯


아, 모두 도려내고 어쩔 셈이던가.


 


동행이 없는 길은 길이 아니다.


누군가 길을 막아설 때 두 주먹을 쥐고 가슴을 쳐라.


그대들은 오랫동안 보아왔지 않느냐.


우리의 어미들이 뭉친 손으로 누구의 가슴을 치더냐.


길이 막히어도 싸우질 마라.


신묘년 올해는 모아진 두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쳐라.


상대는 밖에 있지 않고 가슴 안에 있으니,


우리 어미들, 모아 쥔 두손으로 가슴을 치는


새로운 1월, 똑똑히 보고 있으니,


길을 내려고 더는 죽이질 마라.


이제, 어쩐단 말이냐


그대들이여,나는 소가 될 터이니,


올 봄엔 네가 쟁기가 되어라


오순도순 어우러져 길을 내는 것이 사랑이다.


너 없이는 봄을 꿈꿀 수 없고


나 없이는 봄을 노래 할 수 없으니,


그것이 삶이다


네가 살고, 내가 사는 것이 삶이다.


 


 


 


 


 


 


 


 


 


 


 


 


 


 


 


 


 


 



김경홍 기자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1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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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햇살
비록 말 못하는 소이지만 가족이거늘...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 위안이 되겠습니까? N님의 부모님생각과 사람이 얼마나 따뜻하고 한없이 눈부셔 N님의 가슴에 머물렀습니다.이렇게 서로의 아픈맘을 함께 할수 있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 입니다.올해는 좋은 일만 있길 빌어요... 감기조심 하시구요^^
01/14 23:25   삭제
재순
누렁이와할아버지 너무나 아름다운동행 이었네요 이젠 ...마음이아프네요.  부모님의 허전한마음을 우리모두같이 위로 해드립시다.할아버지 할머니 힘네세요.건강하세요...
01/14 20:58   삭제
구제역
소가 살처분 되면서 많은 이들이 가슴을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구제역을 방어하려는 정부나 공무원 여러분의 고통은 얼마나 크고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힘들 때일수록 마음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요 우리
01/14 13:59   삭제
겨울
너무나도 기가 막히는 사연이군요. 아무쪼록 노부모님이 건강을 헤치지 않도록 따스한 사랑을 보내야 겠네요.
정말 소는 영물이라고 들었어요. 
정든 인간 세상을 버리고 사람 때문에 죽음의 현장으로 가는 소의 눈망울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힘내세요. 머지 않아 봄이 오지 않겠어요
01/14 13:53   삭제
눈물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시겠어요. 아버님, 건강이 우선이오니 약주는 자제하셔야 됨니다.
구제역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안동시민 여러분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01/14 13:4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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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대 항공헬기정비학부 전체 학생들의 단합된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아요. 요즘은 개인적인 성향들이 많다보니 함께하는 모습 넘 보기 좋고 흐믓합니다.
민원인들 중에서도 악의적으로 이용하여 누구는 유료로 이용하고 누구는 무료로 주차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형편성에 문제가 생기기에 저렇게 현수막을 걸어 놓은 듯. 관리자의 입장과 이용자의 입장 둘다 본다면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해 하려는 마음이 문제라고 느껴짐.
역시 정론직필!!
예방법없음
따뜻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주변에서 볼수 있지만 관심을 주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후원해 주신 에스엠디에스피 대표님과 선행을 알려주시는 경북문화신문과 김예은 학생 기자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단체장이 불법?
충돌 우려로 이승환콘서트를 금지했던 구미시장은 왜 이번엔 잠잠하지요? 정치적 선동금지 서약을 받았나요? 이건 이승환콘서트 보다 더 큰 충돌 우려가 되는 이벤트인 것 같군요.
산과 함께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멋지네요.!!
늦은감은 있지만 향토문화유산의 조명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 기대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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