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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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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족 구성원에 대한 질문이 퍽이나 흥미롭다. 특히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가족구성원은 우리의 삶과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특별한 가르침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 전국적인 대이동(나라의 높으신 분이 도덕적 해이로 만연해졌으니 우리민족에서 마음의 고향 같은 날이지만 귀향은 자제해서 막자는 처방을 내린 구제역 소동에도)은 설문과 다르게 온 민족이 가족이라는 생명의 공동체가 있어 가능했던 우리나라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누가 지었겠지만 너무 생생하여 사실(Fact)로 보여지는 이야기다.
서울하고도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사는 셀러리맨 집안에 몇 년전 홀로되신 아버지를 서울에 모시고 와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 하여 ‘요즘 보기드문 효자집안’이니, ‘참 착한 며느리를 둔 그 어른 행복하시겠다’는 등 이웃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날 아들은 보통 날처럼 ‘퇴근 후 약속이 있어 한잔하고 집에 조금늦게 귀가할 것’을 전화로 알려주었고, 아내로 부터는 ‘식구들과 외식할 것’ 이야기를 듣고 그날도 접대(?)를 받으며 가볍게 취한 기분 좋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때까지 집은 조용하기만 했단다. 조금 있다가 아내와 식구는 외식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보이지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아버지가 같이 계시지않는 이유를 묻자 아내는 ‘아버님이 외식을 싫어하시는 듯해서 저녁을 차려놓고 갔다’고 답하고......아버지가 오신 후 그 때까지 거의 들어가 보지않았던 아버지가 계시던 방에 들어가니 조그만 밥상에 식은 밥과 멸치볶음, 구운 김이 상보가 벗겨진 채 드러나 있었다.
귀퉁이에 조그만 쪽지에 ‘아버님 식사하시고 반찬그릇은 냉장고에 두세요, 김치는 방에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상에 두지않으니 드시려면 냉장고에 바로 꺼내 드시고 바로 넣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아내가 아버지의 저녁상을 방에 두고 외식을 갔고 아버지는 그 저녁상에 손도 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반대 바닥에 광고지 이면에 ‘3아 잘 있거라 6은 간다’라는 낮 익은 글씨가 보였다. 이상을 느낀 아들이 아버지의 행방과 내용이 무엇인지 아내를 다그쳤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시큰퉁한 모습과 연신 비 맞은 사람처럼 잔소리로 웅얼댄다. ‘평소 늦게 돌아오시니 곧 들어오실 것이다’ ‘아버님은 자식 생각은 통 없이 시간이 늦으면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라며 아내의 짜증스런 표정을 그치지않앗다.
자정이 넘고 급기야 그날 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경찰서에 사람찾는 신고와 더불어 평소 잘 가신다는 보신각 주변에서 아버지 사진을 들고 아들은 아버지를 아는 사람을 찾아나섰다. 그곳에서 사진을 보던 한 할아버지 왈 ‘숫자영감아녀. 오늘 안보이네’하고 아는 척한다. ‘숫자라뇨?’ ‘응 그 영감이 집에서는 1은 며느리, 2는 손자, 손녀, 3은 아들, 4는 해피(애완견), 5는 가사도우미, 그리고 6은 자신이라던데, 그래서 우리는 숫자 영감이라 불렀어’
그 다음의 이야기는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만이라도 웃어넘기기엔 너무 아픈 이야기다. 지금 효라는 말의 의미를 어찌 말로 연결할까?
‘공자님 촛대뼈 까는 소리’ 같은, 그러나 진짜 공자님의 말씀으로 이 설날의 효라는 모습을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를 모시면 그것이 효도인줄 아는데 그것만이라면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 효도의 차이는 마음에서부터 공경하는 것이다(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皆 能有養 不敬何次別乎. 論語 爲政 7章) (리영희 산문집 희망 임문선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