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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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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닻을 올리며 취임일성으로 KAIST 총장이 내놓은 혁신적인 교육방안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개혁안이 세간의 도마에 오르는 등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면 낡은 체제를 뜯어고치려는 개혁은 가죽을 벋기는 고통과도 같은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개혁의 그늘에 가린 기득권자들의 거센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그의 뒤에는 전략가이자 개혁가인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있었다.
선향(先鄕)이 영주로서 단양에서 태어나 이색 문하에서 수학했고, 젊은 시절엔 정몽주. 이숭인. 하륜 등과 교유하기도 한 조선의 건국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했다.
이를 통해 그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라며 왕권이 아닌 재상이 다스리는 민본주의를 실현하고자 개혁안을 낸다.
이에 위기를 느낀 이방원과 기득권세력인 하륜. 이숙번 등이 합세해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 이근. 장지화 등을 급습하고, 궁궐로 처 들어가 세자 방석과 동생인 방번을 살해하는 1차 왕자 난을 일으킨다.
“한양천도”와 “조선경국전” 편찬 등 조선의 기틀을 잡은 불세출의 사상가이면서 정치인이었던 정도전의 개혁안은 이처럼 기득권의 강한 반발로 주저 않아야 했다.
정도전이 개혁에 실패한 200년 후 연산군을 쫒아내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연산군의 이복동생 중종은 반정공신들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동안 중종은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서는 강력한 친위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를 위해 중종은 성균관 전적(典籍)으로 34세의 조광조(호;靜庵 1482-1519)를 발탁해 나라의 기강과 법도를 바로잡으려 했고, 젊은 개혁가 조광조는 중종의 뜻을 받들어 공자의 정명주의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려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현량과”라는 새로운 과거제도를 도입해 신진사림을 대거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을 견제하고자 했고, 중종반정에 앞 장선 정국공신의 삭훈을 실시했다.
이러자 기득권 세력인 공신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조광조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군주인 중종이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고, 성리학을 바탕으로 이상정치를 실현 할 수 있다고 보고 경연에 전념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급진적인 젊은 개혁가의 이상주의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중종은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기득세력의 집요한 모략에 휘말려 훈구파에 밀지(密旨)를 내려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등을 참형에 처하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율곡 선생이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등과 함께 동방사현이라 며 높이 평가한 개혁가 조광조는 이렇게 해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아도 그렇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정권은 가장 먼저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개혁이라는 칼을 이용한다.
최근엔 5년 주기로 개혁을 부르짖어왔다. 이를테면 “부정축재자 처벌. 국보위 설치. 삼청교육대. 5공 청산. 토착 비리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개혁의 칼을 세우면 “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처세술을 방편으로 잔뜩 움 추렸다가 세월이 흘러 개혁 피로감에 쌓이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개혁은 집권 초기에 해야지 레임덕에 빠지는 후기에 가면 물 건너간 애물단지로 전락한다고 한다.
미국 MIT공대 학과장 경력으로 2006년 취임한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우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미국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발 앞선 정책이 한국에선 개혁으로 비쳐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교수와 학생들의 자살로 촉발된 작은 암초에 그간 개혁의 칼 앞에 소리 죽이던 자들이 목소리를 낸다.
혹자는 인문계가 아닌 공대출신으로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고, 또한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학생들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우지 않는 소통 부재에서 원인을 찾으려고도 한다.
그 동안 개혁 정책에 피해를 보았던 기득권의 주장에 따르면 카이스트의 미래는 없다.
일정한 학점을 못 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내게 하는 성과제도는 계속 되어야 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어강의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양털을 깎아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생존을 위해 적당한 경쟁과 노력은 있어야 한다.
아이들 재롱을 보면서 76세의 말년을 즐겨야 할 인생황혼기에 조국에 돌아와 손자 같은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는 서남표 총장에게 돌을 던져선 안 된다.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혁신을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
작은 저항에 개혁이 침몰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주문하고 싶다.
개혁 혁신 쇄신..........공염불인가? 사람사는 세상인데........
05/11 20:40 삭제
의미심장한 고사 하나나 문장의 뼈대가 되는 용어[낯말]하나하나를 분리해서 문제삼는 것은 지양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의도와 다른 독자의 견해에 주목하는것도 중요하지요.
04/26 17:05 삭제
이방원의 하여가나 정몽주의 단심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무척 큽니다. 피패와 개혁의 양 벽을 분리해서 생각할수있는 좋은 글입니다. 충신에게 불사이군이라는 의미는 해석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한결같은 충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고사입니다.
04/26 17:01 삭제
그래도 구미에 이러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행복하게 알아라.
바른 말에 토달려면 바르게 달아라 . 당신들이나 돌아보소
04/26 16:39 삭제
'겨울이 오기 전에 양털을 깎으라'는 뜻은
양털은 양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에도 필요함 - 겨울이 오기 전에 털 옷을
벋기면 양은 생존을 위해 더 열심히 움직여
양이 건강해 진다는 뜻입니다. - 필자
04/26 09:30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