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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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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서 司膳署 : 고려시대 목종 때 상식국(尙食局)이라는 관호로 처음 설치되었다. 문종 때 관원으로 정6품의 봉어(奉御) 1명, 정7품의 직장(直長) 2명, 정9품의 식의(食醫) 2명을 두었다. 1308년(충선왕 복위)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사선서로 개칭했다. 이때 사선서에 어주(御廚:수라를 짓는 주방)를 두었다.
1392년(태조 1)조선 초기에는 궁중음식의 조리를 맡아 본 사선서(司膳署)에 왕실에서 사용할 음식물의 검수 및 위생에 관한 일을 보았다. 도자기 생산을 감독하며 사선서(司膳署, 후에 司甕院)에서, 전국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기소(陶器所), 자기소(磁器所) 324개소를 감독하였다.라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있다.
2007년 영남매장문화연구소에서 8월 학하리 가마터 발굴조사 발표회에 참석하여 당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물고기 문양이 상감된 분청접시, 대접 등의 유물 바닥에는 임금의 식기 공급을 관장하던 관청인 사선서(司膳署)와 충녕대군(世宗)의 태자 책봉 절차를 위해 설립된 순승부(順承府) 등의 관청을 상징하는 ‘司膳(사선)’, ‘順(순)’, ‘寧(녕)’ 공(公),과 정(定), 김(金),대(大)등의 명문(名文)이 상감돼 이 가마터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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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문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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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녕자 |
아깝게도 이 중요한 조선초기 분청자기 가마터에 (칠곡군에서 골프장으로) 허가를 주었으니 우리나라관청의 문화보존과 활용의식을 엿볼수 있다.( 그 넓은 분지에 도자기 마을과 청소년 문화쉼터, 등등과 다양한 체험마을을 조성하여 문화관광단지로 활용하였다면 지금의 골프장 수입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사라져가는 문화유산 보존활용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 안타깝기만하다.)
학하리2리 골프장 가마터에서 20분거리에 학상리에 또한 조선초기 가마터도 필자가 86년경 가마터를 발견하여 조선초기 분청자기 가마터로 추정하였지만 95년 5월경에 장마로 인한 가마터 부근의 파편이 들어나면서 "인동인수부(仁洞仁壽府)와 "인동장흥고(仁洞長興庫)"란 명문이 발견되어 칠곡군청에 보고를 취하였지만 그대로 방치되어 2004년 6월 충북대학교 강경숙 교수에게 연락을 하여 이 가마터가 조선초기 분청자기를 제작하여 인수부와 장흥고에 공납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이 가마터도 지금까지도 방치되어 있으며, 유학산일대의 가마터에 대한 학술조사나 지표조사한번 이루어지지 않은채 이 가마터도 심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웃 고령군청에선 조선초기 분청자기가마터를 발굴하여 사적지로 지정받아놓고 문화유산 자료로 활용가치를 연구하고 있는 중에 있다.
우리구미지역엔 세종실록지리지편에 선산부 동쪽과 해평현 동쪽에 (2곳의)자기소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필자가 가마터를 찾아낸곳이 4곳으로 명문(인수부와 장흥고)을 발견 한곳은 한곳이다)}이들 가마터를 찾아내는데 온갖 어려움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였지만 가마터를 발견한 뒤 그 보람은 이루 말할수 없을만큼 기쁘기도 하였다.
도자기 만드는 사람입니다 한번 가보고싶군요 방법이??
04/29 00:22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