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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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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경 신라불교 발생지 모례정 내부 우물이 더러워지고 바닥의 판자가 잘 보이질 않아 "내고장 문화바로알기 문화탐방"시 우물 속에 판자가 아직도 썩지않고 잘 보존되고 있다는 말에 모두들 우물 속을 들여다보지만 잘 보이질 않아 구미문화지킴이 회원들과 양수기 동원하여 우물물을 퍼내고 바닥의 나무판의 물때를 벗겨내고나니 선명하게 잘보였다.
모례정 내부 청소하고 난 후 인근의 계곡을 살피던 중 우연히 분청자기 파편과 상감청자 파편을 발견하게 되어 주변을 조사하게 되었다. 계곡을 오르락 내리락 몇번이나 하였지만 가마터 같은 곳은 흔적도 없었다.
그 후 몇달이나 지난후 다시 그 지역을 찾아 산아래 작은 계곡을 옆에 두고 오솔길을 오르는중 오솔길에 상감청자파편과 도자기 구울때 받침용으로 쓰이는 흙빗음과 도침 파편이 보여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오솔길 옆 둔턱에 가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무수히 많은 자기파편을 보니 틀림없는 조선시대 분청자기를 생산했던 가마로 보여졌다. 아마도 초기엔 상감청자를 구웠던 것 같았다. 계곡둔턱엔 많은 양의 도자기 파편이 묻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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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 파편 |
지금은 수년전 불어온 사나운 태풍땜에 파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가마터 주변을 살피던 중에 흙빗음을 살펴보니 600년전의 가마터에서 일한 도공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엄지손가락과 검지, 장지의 지문으로 보였다. 또 다른 흙빗음을 보니 작은 손가락으로 아마도 아들이나 가마에서 도와주는 작은 사람의 지문이 있는 흙빗음 이었다.
여기 도개의 가마터에선 특이하게도 흑유로 만든 흑도의 파편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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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유로 제작한 접시 |
흑유란, 유약색이 나타내는 것처럼 흑색의 도자기를 일컫는, 고려시대의 흑유 에서부터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도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유약은 다량의 철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구운 후 표면의 색이 흑갈색, 또는 암갈색을 띠는 것이다.
긴 세월에 걸쳐 제작되어 왔지만, 그 수는 적고, 초기의 백자나 분청사기가 출토된 곳에서 흑유가 발견된 경우가 많았다.
흑유는 태토나 유약에 신화제2철을 첨가해 산화소성 또는 환원소성한 것으로 흑, 갈색, 감색등의 여러 가지 색을 보이고, 흑유 표면의 결정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졌다. 그외에 지명(地名), 문양등에 따라 명명(命名)된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 天目釉라고 불리게 된 것은, 중국의 복건성이 흑유의 주산지인 그곳에서 수학한 일본 승려가 천목산에서 흑유다완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에서 천목다완이라는 이름이 유래 되었다. 조선시대에서는 각지에서 흑유 도기가 만들어지고, 계룡산 일대에서는 절에서 사용했었던 흑유다완이 발견되었고, 또, 제주도 에서도 흑유의 편호(扁壺)가 발견되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석회석을 사용한 검은 엿 색깔의 병이나 호등의 파편들도 발견 되었다.
흑유는 태토나 유약에 신화제2철을 첨가해 산화소성 또는 환원소성한 것으로 흑, 갈색, 감색등의 여러 가지 색을 보이고, 흑유 표면의 결정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졌다. 그외에 지명(地名), 문양등에 따라 명명(命名)된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 天目釉라고 불리게 된 것은, 중국의 복건성이 흑유의 주산지인 그곳에서 수학한 일본 승려가 천목산에서 흑유다완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에서 천목다완이라는 이름이 유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