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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성을 쌓지 말라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1년 07월 28일
심정규 경북도의회 의원 (교육위원회)
ⓒ 경북문화신문

중국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기원전 200년 경 이었다. 진시황이라 불리는 황제의 본래 성은 영(嬴)이고 이름은 정(政)이다. 전국시대 6개 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나라의 첫 황제라는 의미로 진 시황(秦始皇)으로 부르도록 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다방면에 걸쳐 통치를 위한 구상을 구체화 시켜 나갔다. 전국을 36개 군으로 구분하고, 지방의 수령을 모두 중앙에서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했다. 그 당시 파격적인 중앙집권제를 도입했던 것이다. 아울러 도량형과 문자도 통일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제자백가들이 자기주장과 옛것을 들먹이며 현실을 비방하게 될 경우 군주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명분을 내걸고 시경과 서경 그리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모조리 몰수해 불태우고, 말 많은 유가들을 묻어버리는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자행했다.


자신감이 넘쳤던 때문인지, 진시황은 아방궁을 짓고 자신의 사후 무덤을 호화롭게 건설하기도 했다. 그 중 백미(白眉)는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장성(長城)을 축조한다.


당시 중국의 서 북쪽은 오랑케 나라라 불리는 흉노족의 빈번한 침입으로 늘 유린을 당하는 등 통치가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오랑캐족의 침입을 막고자 거대한 장성을 쌓도록 한다.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는 1만 여리의 대장성을 몽염 장군에게 명하여, 군사 30만 명과 각 지역에서 강제 차출된 부역민과 죄수들 100만 명이 동원되어 10년 간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 때문에 백성의 원성은 높아져만 갔고, 나중에 진나라가 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실례로 진나라 폭정에 못 이겨 농민반란의 기폭제를 제공한 “진승과 오광”이 바로 부역자 출신이었다.


그리고 장성수축의 책임자 몽염 장군은 2세황제때 환관 조고의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는다.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성을 쌓으면서 지맥을 끊고 수백만 명을 노역에 종사케 했으니 말이다.”라고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00년에 서양의 로마에는 카이사르(Julius caesar;율리어스 시저)가 출현한다.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3두(頭) 동맹을 맺고 로마 공화정(共和政)의 최고 관직인 집정관(執政官)에 취임한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의 반란 진압과 함께 경제적,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면서 서서히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즈음 3두정치의 한 핵인 크라수스가 전쟁 중 사망하자, 남은 한사람 즉, 폼페이우스와 충돌하게 된다.


원로원의 보수파 지지를 받는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단신으로 로마에 복귀하라는 통고를 해온 것이다.


폼페이우스의 속셈을 눈치 첸 카이사르는 BC 49년, “앞으로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를 모욕한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갈리아 지방과 이탈리아 국경에 위치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해 폼페이우스 군을 격파 한다.


이때 도주하는 폼페이우스를 쫒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였으나 폼페이우스는 암살을 당해 그와 전투는 종료한다. 이집트에 주둔한 카이사르는 왕위계승에 휘말린 끝에 크레오파트라를 왕에 오르게 한다.


그녀와 염문을 뿌리며 둘 사이에 아들 카이사리온을 얻고 고국에 돌아온 BC47년 파르나케스를 격파하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간결한 세 마디 메시지를 원로원에 보낼 만큼 원숙한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다.


로마의 1인 지배자로 득세한 카이사르는 원로원과 집정관 그리고 시민회의로 되어 있는 집단지도 체제가 공화정(共和政)에 가장 큰 문제라고 인식하고, 종신 독재관(獨裁官;Dictator) 특전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려면 효율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정책 채택을 위해 1인 체제를 구축한 카이사르는 율리우스력 제정과 함께 화폐를 통일하고, 항만과 도로건설에 착수한다.


군사와 병참의 신속한 이동을 목적으로 신설한 도로는 훗날 활발한 경제교류와 사람의 이동에 이르기 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제국(帝國)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도로는 혈관과 같은 존재로 재화와 용역을 신속하게 이동케 하는 물류와 말로 산업의 총아이기도 하다.


 


진시황과 카이사르의 역사 속을 걷다보면 특이한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정복한 땅의 백성들이 항복할 경우 속주(屬州)로 편입해, 단지 총독만 파견 했을 뿐이다. 이를 통해 대부분 이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가도록 했고, 심지어 시민권 까지 부여하는 등 동화(同和) 정책을 펴 나갔다.


반면 진시황은 6국의 왕조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통일전쟁을 통해 적군 수십만 명을 생매장하거나 포로로 잡아 만리장성 수축의 노역자로 부린다. 결국 이러한 진시황의 폭정은 통일 후 불과 20년도 안돼 멸망으로 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더욱이 그를 무너뜨린 것은 당시 한 때 노역자 신세였던 한나라 유방이었다.


진시황은 통일 후 자신을 황제로 칭 하도록 하고 차후 황제이름을 따로 정하지 말고 진나라 2세, 3세로 이어가 만세에 이르도록 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는 불로 약을 구하려고 지방을 순행하던 진시황은 나이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더군다나 진시황이 죽은 후 간신 조고와 이사에 의해 후계자를 조작함으로써 그가 꿈꾸던 영원불멸의 통일 왕국은 2대 때 멸망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진시황의 폭정과는 다른 길을 갔다. 종신 독재관 으로 1인 체제를 구축 한 그는 각종 사회정책을 펴면서 개혁사업을 추진하는가 하면, 시민에게 위압감을 준다는 이유로 호위병도 물리친 체 로마 시내를 홀로 활보하는 정치를 펼쳤다. 자신감과 관용의 발로였다.


하지만 “한사람의 영웅탄생을 용납하지 않는 로마인의 시대정신과 달리 그가 혹시 황제로 군림하지 않을까?” 하는 공화정파 부르터스와 14명의 원로원 회원에 의해 원로원 회의석상에서 암살을 당한다.


카이사르와 진시황의 통치관은 도로건설과 장성수축을 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도로건설에 집착한 카이사르는 당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보도와 차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구분하고, 돌로 바닥을 쌓는 등의 시공법을 통해 튼튼한 길과 다리를 놓았다.


군사와 물류의 이동을 원활히 하도록 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는 8만 킬로미터에 이르렀고, 지선까지 포함하면 30만 킬로에 이르렀으니, 세계사에 길이 남을 대형 국책사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로마가 건설한 도로는 적의 침입에 일조를 하는 통로 구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통을 중시한 카이사르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라는 얘기를 회자 되게 할 만큼 소통을 중시한 선각자였다.


더군다나 카이사르는 로마의 일곱 개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도 모두 허물게 했으니 말이다.


그것은 로마의 패권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로마라는 개념을 가졌기 때문에 갇힌 로마를 활짝 열고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은 다른 나라와 소통하기보단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에 성을 쌓아 단절 시켜 버린다. 요즘 말로 사이버 공간에 방화벽을 쳐 소통을 거부한 것이다. 성벽이란 사람들의 마음에 “안과 밖”구별을 만든다.


징기스칸도 유언을 통해 후손에게 "성을 쌓지 마라 했다." 성을 쌓을 경우 유목민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사라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민의 일단이었다, 하지만 징키스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손자 쿠빌라이는 1271년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에 원나라를 세우며 성을 쌓았다. 그 이후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기마민족인 몽골인은 성안에 갇혀 벼슬과 권력을 찾게 되고, 재산축재와 향락에 젖어 기마민족의 날렵한 모습은 비대증에 걸려 불과 몇 대를 가지 못하고 9대 테므르 황제를 끝으로 97년 만에 망한다.


공을 이루었다고 현실에 안주하여 성을 쌓지 말고 끝없이 생존을 위해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며, 소통하고 열린 마음을 지녀야 현재는 물론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동서양의 걸출한 두 스타인 진시황과 카이사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다. 천하를 얻기 위해 야심 찬 삶을 살아간 그들도 생의 마지막엔 극적인 최후를 맡는다.


창조적 천재라 불리 우는 카이사르와 폭군 진시황, 2천년이 지난 오늘날 로마와 중국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1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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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고
징기즈칸이 맞는 표현이 아니실런지요 아무튼 많이 배우게 해소 고맙소이다
07/29 09:33   삭제
제언
잘난 정치인들 본받아요  잘읽어 보세요
07/28 19:29   삭제
반대의견
너무 진취적이라면 약한 이들의 생존권을 억압하게 되는 건 아닌지요. 개방을 하는 것은 포용과 침략의 의미가 있는데, 너무 개방하면 희생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농수산물 수입으로 농민들이 애가 터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07/28 11:41   삭제
애독자
너무 길어 읽기는 힘들지만, 만리장성을 쌓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돼 의미가 있네요.
고통받게 한 사람은 결국 망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구, 또 폐쇄적이다 보면 발전이 없다는 사실도, 늘 의원님 칼럼 보는데요, 이번이 짱이네요
07/28 11:3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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