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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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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다산 정약용선생이 외갓집인 해남윤씨 집안에 청고 윤용의 그림첩에 대하여 비평한 발문으로 윤용은 스스로 자기 그림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마치 물총새가 스스로 아름다운 색깔의 제 깃을 애지중지하는 것과 같다면서, 그래서 이 화첩을 ‘취우’라고 한다는 말을 하고, 호랑나비와 잠자리 등을 잡아다가 그 수염과 분가루 같은 미세한 것까지도 세밀히 관찰하여 그 형태를 묘사해서 기어이 실물에 핍진하도록 하고야 말았다는 화가로서 열정과 노력을 격찬하고, 또 윤두서-윤덕희-윤용으로 이어지는 3대 화업을 예술로 승화한 가문으로 칭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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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 우색도 |
-청고(靑皐) 윤용(尹愹)의 취우첩(翠羽帖)에 발함-
위의 화첩(畫帖) 4권은 고 태학생(太學生) 청고(靑皐) 윤용(尹愹)이 그린 것이다. 윤용을 비웃는 자가, “윤용이 스스로 자기 그림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마치 비취(翡翠, 물총새)가 스스로 제 깃을 애지중지하는 것과 같다.” 고 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 화첩을 ‘취우(翠羽)’라고 이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화목(花木)ㆍ새의 깃과 짐승의 털ㆍ모든 벌레의 총칭 등은 모두가 그 참모습과 핍진하여, 정연하고 섬세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하니, 이것이야말로, 몽당붓으로 수묵(水墨)을 칠하여 그릇되게 기괴한 것을 그려 놓고는 스스로 ‘나는 그 의사를 그린 것이지 외형을 그린 것이 아니다.’고 자부하는 하찮은 화공(畫工)들의 작품과는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윤용은 일찍이 호랑나비와 잠자리 등을 잡아다가 그 수염과 분가루 같은 미세한 것까지도 세밀히 관찰하여 그 형태를 묘사해서 기어이 실물에 핍진하도록 하고야 말았으니,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그가 정밀하고 깊이 있게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때부터 그림으로 알려졌다. 윤두서의 아들은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이고, 윤덕희의 아들이 청고(靑皐) 윤용(尹愹)인데, 3대에 이르러 그 기예가 더욱 정밀해졌으니, 예술은 갑작스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윤두서는 나의 외조부(外祖父)이므로, 그의 유묵(遺墨)이 우리 집에 많은데, 대체로 인물화(人物畫)가 더욱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