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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수필] 이미 정해진 사람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2년 07월 09일
임수진
ⓒ 경북문화신문

 


그는 오래 신은 운동화 같다. 적당히 늘어난 티셔츠 같고 내 머리 형태를 정확히 기억해내는 메모리폼 베개 같기도 하다. 가끔 운명적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만난 소나기처럼 피할 수가 없다. 용케 그 자리를 벗어난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몇 년 전 읽었던 책의 한 대목이 불현 듯 떠 오른다. 16세 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엄마와 아빠의 만남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그 만남을 방해한다면 자신도 태어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호기심 많은 소년은 즉시 그 일을 실행에 옮겼다.


과거로 돌아간 소년은 미혼인 엄마와 아빠가 처음으로 마주친 장소로 갔다. 소년은 둘의 만남을 엇갈리게 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오고 있는 아빠의 자동차를 고장 나게 만들었다. 소년의 방해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그날 마주치지 못했다. 이제 둘의 인연은 깨졌겠지 생각했는데 이후 엄마와 아빠는 우연한 장소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들은 곧바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과 동시에 소년을 낳았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인연의 고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세상엔 우격다짐으로 되는 일이 있고 순리대로 풀어나가야 될 일이 있는 것 같다. 둘 사이에 연(緣)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강제로 잊는 일처럼 힘겨운 일은 없다. 그러나 내 몸같이 사랑하던 사람도 연이 다하면 크나큰 고통 없이 지워지기도 한다. 방해 작전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부모가 다시 만난 건 엇갈림조차도 부부의 연을 끊어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느낌을 사람이 아닌 자연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올 휴가 때도 나는 그와 함께 이곳에 왔다. 삼악산 줄기의 등선폭포, 춘천 여행길에 우연히 들렀는데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사람이 아닌 자연에게 마음을 내주긴 처음이다.


두 개의 바위산이 전설처럼 열리는 곳, 멈춘 심장마저도 다시 뛰게 하는 곳, 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곳, 바위 사이로 보이는 하늘, 낮지만 웅장한 폭포, 물속의 돌멩이와 측백나무. 마치 어제 본 풍경처럼 다정하다. 나는 풍경의 손을 잡고 기억 속을 자맥질해 들어간다. 과거의 내가 희붐하게 떠오르다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결국 전생의 나를 연람하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바위표면에 대롱대롱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냐고 물었다. 바위는 침묵했다. 한번 더 물었다. 천 톤에 육박한 바위가 입을 열리 만무하다. 소심해진 나는 물방울을 꽈리처럼 떠뜨린다. 터진 물방울이 바위를 타고 수직으로 떨어진다.


지금껏 나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이나 지역과도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왔다. 숱한 인연 속에서도 가슴의 밑바닥을 건드린 것은 역시 사랑이었다. 고등학교 때 연시에 빠져 산 적이 있었다. ‘이미 정해진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는 서정윤 시인의 시를 외우고 다녔다. ‘이미 정해진 사람’이란 글이 좋았다.


“밤 열두 시에 화장실에 앉아서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신랑감이 보인대”


친구들과 근거 없는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깔깔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 나는 그렇게나 궁금해 했던 ‘이미 정해진 사람’을 만났고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모든 게 급속도로 진행된 걸 보면 그와 나도 책속 소년의 부모처럼 비껴갈 수 없는 인연이었던 모양이다. 그와의 인연처럼 이곳에만 서면 나는 마음이 순해지고 따뜻해지고 편해진다.


“나, 전생에 이곳에 살았던 것 같아.”


내 말에 그가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곳에 살던 상수리 나무였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할미꽃이나 진달래, 혹은 이 산에 살던 다람쥐가 아니었을까. 어느 해 심한 가뭄에 상수리나무였던 내가 말라죽기라도 한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상수리나무는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이곳의 삶은 깡그리 잊었을 텐데. 레테의 강 실수일까. 내 속의 이 희붐한 기억의 정체는 무엇일까.


억겁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연인을 상상하는 동안 산의 정상에 다다랐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다. 그 예사롭지 않은 감정들이 내 일상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들이 나의 문학적 감수성을 꿈틀대며 깨어나게 하고 있다. 그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걸음을 멈춘다. 하늘이 한층 가까워져 있다.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2년 07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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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5억원. 가본 사람이 5만명이면 인당 1만원. 그 만큼의 가치를 주나요? 구미 연간 예산 2조원. 구미시민 40만명. 시민 1명당 5백만원. 난 왜 구미시의 공공서비스를 연간 10만원도 못받는 느낌이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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