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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봉곡 출신 항일독립투사 박희광 선생, 추모사업회 “시비 7억원 마련해 다오” 호소

권상윤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2년 10월 28일
18세때 항일 특공대원 참가,청춘 불사른 20년 옥고- 해방 후에도 풍상에 쫓긴 삶
ⓒ 경북문화신문

 


수림이 울창한 금오산 진입로를 따라 오르고 나면 정상인 현월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단풍이 곱게 물든 산기슭을 따라 눈길을 접어내리면 그 끄트머리에 금오지가 가을산이 남기고간 정취를 짠뜩 물고 앉아 있다. 유난히도 크게 자란 잣나무를 등짐지고 마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동구 밖의 노모만 같아 보인다.


그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백운교 옆에 일제 치하와 맞서 싸우다 세상을 달리한 구미출신 애국지사가 오늘도 조국의 미래 번영을 근심하면서 온 몸을 풍파에 내맡기고 있는 동상이 있다.그 주인공이 바로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인 구미시 봉곡동 출신의 애국지사 박희광(1901- 1970년) 선생이다. 박 희광 선생의 동상(입상) 건립은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愛國志士朴喜光先生之像> 친필휘호와 함께 하사금 100만원이 바탕이 됐다.하지만 자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끝에 동상을 제막하게 된 것은 11년 후인 1984년 12월 28일이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2011년 11월 17일,구미시는 도비 2억, 시비 9천만원등 2억9천만원을 들여 지난 1984년 제작된 기존 동상의 형상을 그대로 복원해 좌대 0.4미터, 기단 1.8미터를 포함한 4.6미터의 동상 규모로 다시 제막됐다.또 항일 특공단으로 활약했던 박희광, 김광추, 김병현 의사의 활동상을 청동상 부조로 형상화해 항일 독립 투사의 전공으로 기리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18세의 어린나이로 이국땅 중국 만주의 특공대원으로서 오로지 조국 독립만을 위해 투쟁해 오다 동토의 땅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20여년간 옥고를 치룬 박희광 선생은 숭고한 항일 독립운동 정신과 애국정신을 실천을 통해 보인 행동하는 애국정신의 산증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의 뿌리를 출생지인 구미시 봉곡동에 심고, 가꾸기 위한 애절한 운동이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명예 회장 이수성, 사무처장/유족대표 박정용)를 중심으로 세상에 감명을 불어넣으면서 생명력을 얻고 있다.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고향옛터 생가 복원과 추모관 및 겨레(애국)의 동산 조성 사업>은 생가를 고전적 한옥 황토집1동과 팔각정 1동으로 복원하고, 유물 전시실을 포함한 추모관 1동과 겨레(애국) 동산 등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사업착수에 따라 예상되는 21억4천5백만원의 사업비이다.


사업회는 이를 위해 친지와 유족이 이미 확보한 4천5백만원에다 추가로 21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국비 7억원, 시비 7억원, 도비 7억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이에 앞서 밀양박씨 경주공파 종중은 2천58평방미터(622평/ 18억6천6백만원 상당)의 대지를 확보했다.


국가 보훈처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정부는 사업 주체인 기념사업회로부터 사업 계획서를 제출받아 ‘ 부지 확보, 지방비 확보방안, 향후 활용방안’을 검토한 후 국가 보훈처 현충시설 심의위원회에 상정, 최종적으로 국고지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따라 사업회는 생가 건립 부지 확보 및 자부담 확보, 2013년도 본예산에 시비 및 도비를 확보한 후 2013년 3월말까지 국가 보훈처에 사업계획서와 모금 계획서, 국고 예산 지원 요구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기념사업회는 지난 9월 24일, 구미시에 대해 관련 사업에 필요한 시비 7억원을 2013년 본예산에 상정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제출했다. 이와함께 경상북도에 대해서도 도비 보조금 7억원을 2013년 본예산에 상정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국가 보훈처는 2013년 3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내에 국비 보조금 지원에 대한 타당성을 심의, 결정한 후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회에 상정하게 된다. 결국 박희광 선생의 추모사업은 구미시가 시비 7억원을 2013년 본예산에 확보해 주느냐의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사업회 측은 “ 구미출신 항일 독립 투사인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의 얼이 구미에서 발현될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박희광 선생의 항일 독립 투쟁사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난 박희광 선생은 1908년 8세때 부친을 따라 만주로 들어가 1916년 3월, 청원현 남성자 학교를 졸업한 후인 18대 때, 일제를 토벌하기 위해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지휘하는 독립 군사단체인 통의부 5중대에 자진 입대했다. 이어 6개월간의 군사 훈련을 마친 후 특공대원으로 편입,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박희광 선생은 특히 김명봉,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일본군 공격작전에 참가했다. 이들 특공대원들이 가장 먼저 겨냥한 대상인물은 남만주 일대에서 악명 높았던 일제의 앞잡이 최정규와 일제의 첩자 정갑주였다. 결국 1924년 6월 1일, 정갑주와 가족을 몰살했고, 이어 1964년6월 7일에는 최정규의 집안을 초토화시켰다.


이어 1924년 7월 22일에는 봉천의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했으나 실패했다. 이에앞서 박희광 선생 등은 이등방문의 수양녀를 대련에서 암살하려고 했고, 일진회 회장 이용구를 봉천에서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희광 선생 등은 1924년 7월 22일, 일본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그날 저녁 일본의 고급 요정인 금정관에 들러 군자금 3백원을 징수해 나오다가 일경에 발각돼 총격전으을 벌였고, 이 와중에 김광추 소대장은 순국했다. 또 박희광 선생은 권총으로 응사하면서 맞섰으나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투사다운 기백을 보인 박 선생은 관동청 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상고해 고등법원 2심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아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박희광 선생이 출옥한 것은 20년간의 옥고를 치룬 1943년 3월 23일, 그의 나이 43세였다, 결국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옥중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것이다.박 의사는 출옥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대련에서 동지들과 함께 중경으로 이동한 후 임시정부를 찾아 독립 투쟁을 하려고 했으나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4년 구미 귀향


1944년 귀향해 그해 4월 20일 결혼한 박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임시 정부 요원들이 귀국하자, 백범 김구를 만나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당시 김구는 비서를 시켜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박 선생의 생활은 궁핍했다.옥중에서 익힌 양복 제봉 기술에 의지해 어렵게 살다가 5남매를 남겨둔 채 부인마저 세상을 떠나자, 풍상과 맞서 사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은 것은 광복 후 23년만인 1968년 3월1일이었다.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다. 박선생은 7년 후인 1970년 1월 22일 70세를 일기로 서울 보훈 병원에서 한많은 생을 마쳤고,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부인 류씨와 함께 안장됐다.


그가 세상을 뜬 2년 후인 1972년 3월에는 공적을 기리는 동상(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이어 1973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친필휘호와 하사금을 받으면서 동상건립이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여의치 못한 자금사정으로 결국 1984년 3월 1일 당초 흉상을 동상으로 재주조 변경해 건립키로 하고, 1984년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지금의 백운교 옆에서 기공식을 가졌다.이어 1984년 9월 정부로부터 동상건립 심의 84-1호로 지정받아 1984년 12월 28일 제막식을 갖게 됐다.


▶구미시민들의 반응


국비와 도비,시비 및 밀양박씨 경주공파 문종중의 토지를 확보해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의 고향 옛터에 생가 복원 및 추모관 건립과 겨레의 동산 조성 계획과 관련 시민들은 이를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 강화를 통해 애국 선열들의 호국 정신을 기릴 수 있고, 시민들의 역사의식 및 체험의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고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계도함은 물론 선열의 문화단지와 연계해 주변 환경 조성의 정서적인 효과와 예술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아울러 애국애족의 정기를 담은 독립정신을 함양해 후세에 민족 체험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상윤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2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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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바른게 국가를 운영해야 해요, 혼자서 나라를 꾸려간다는 망상은 버리시오. 어떻게 이런 분이 해방후에도 고생하셨다 하니, 이건 말이 안됩니다
10/28 21:28   삭제
민족혼
18세의 나이에 항일운동, 지금으로선 고3생, 그리고 옥고 20년, 
우리 구미에도 이런 분이 계셨군요, 구미시 도와 주세요
10/28 21: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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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5억원. 가본 사람이 5만명이면 인당 1만원. 그 만큼의 가치를 주나요? 구미 연간 예산 2조원. 구미시민 40만명. 시민 1명당 5백만원. 난 왜 구미시의 공공서비스를 연간 10만원도 못받는 느낌이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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