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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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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귀뚜라미 울음소리 듣기는 참 힘들다 환경파괴때문이지 산골 속으로 들어가야 소리를 들을 수있다.
그 울음소리도 시국정서에 따라 우는지 시절마다 울음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 귀뚜라미는 우리나라, 중국,일본 등지에서 가을에 나타나는 곤충이다.
고어로는 "귀도리" 귀또라미" 등이 있다 우는 소리를 본떠 "귀돌>귀똘>귀뚤"에 접미사" -이 " 또는 "-아미"가 더해져서 된 의성 명사이다. 한자어로는 실솔(蟋蟀), 청렬(蜻蛚), 촉직(促織)등이 있다. 8~10월에 정원이나 풀밭 부엌등에 살면서 가을을 알리듯 밤에 우는 귀뚜라미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이 가을철의 서정으로 즐겨 다룬 소재로, 인간의 슬픔과 원망을 상징하였다
귀뚜라미가 가을의 곤충이기는 하나, 다른 것과는 달리 집안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방안의 인간이 처하게 되는 심리나 감정 상태가 이에 투사되고, 고독, 소외, 내버려짐등의 애상( 哀傷)이나 비창( 悲愴)을 상징한다.
나비가 봄의 전령이듯, 귀뚜라미는 가을의 소식을 상징해 비창,고독,무상,죽음등의 이미지에 관계된다. 또 귀뚜라미가 다른 가을 풀벌레와는 달리 집안의 친숙함,낯익음이나 순치(馴致)를 상징한다는 점도 거미 등속과는 다르다.
여인의 외로룸, 특히 여인이 겪는 외로움을 흔히 귀뚜라미 소리에 의지해 표횬한다.
밤에 운다는 속성과 함께 숨은듯이 소리내는 습성은 가을이나 밤의 정서를 첨가해 이 땅의 여성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를 대변해 왔다.
벌레는 동물의 작은 부류에 속하며, 대부분이 약하다. 수명이나 계절적으로 누리는 삶의 주기도 짧다. 일정한 시간대에 한정된다. 그래서 적잖은 벌레가 짧은 목숨, 기구한 삶, 하찮음,약함 무상 등을 상징하는데, 귀뚜라미도 예외일 수 없다. 여기에는 소외나 버려짐 외에, 조락(凋落)과 죽음이라는 상징성도 곁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경 당풍(唐風)에 "귀뚜라미 대청에 있으니 / 한 해가 저무는 구나"하였고, "시월에는 귀뚜라미가 내 침대 밑으로 들어온다"고 하여 귀뚜라미의 출현이 한해의 저묾에 비유 되었다. 또 귀두라미 울음소리는 나그네에게 "한해가 다 가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소리로 여겨졌다. 두보(杜甫)는 시 "촉직(促織)에서" "귀뚜라미는 무척 작은데, 슬픈소리는 어찌 그리도 사람을 뒤 흔드는가/ 풀 뿌리에서는 소리가 시원치 않더니 /침상 아래에서는 밤중에 가까워지는구나, "라고 하여 사람의 가슴을 뒤흔드는 소리라 하였다.
이규보는 "매년 가을이 되면 궁중의 비첩들이 조그만 금롱(金籠)속에 귀뚜라미를 잡아넣어 베갯머리에 두고 그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서민들도 이를 흉내 내었다고 하였다.
귀뚜라미는 자연에서 우는 소리가 좋아 /금롱에서 무슨 별다른 울음 나을손가 / 질탕한 풍류 인간에까지 새어 나와/궁중의 베갯머리 소리를 흉내 내었네 (이규보의 금롱속의 귀뚜라미) 찬 비 듣는 소리/ 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 숯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김소월)
밤이면 나와 함께 우는 이도 있어/달이 밝으면 더 깊이깊이숨어듭니다/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밤을 지켜야 합니다(노천명의 귀뚜라미)
이 두 시에서 귀뚜라미는 고독한 밤의 슬픈심정, 슬픔의 밤을 지키는 존재, 소리죽여 우는 슬픈 이웃들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화 중에서 초충도(草蟲圖)에 난초와 귀두라미 등이 그려진 것을 찾아 볼수 있다. 그림위에 빈생(瀕生)이라는 화제(畵題)가 쓰인 그림이 있다. 빈생은 물가의 젊은 선비를 뜻한다. 이 화제는 난초와 귀뚜라미를 다 같이 선비로 비유했다 한다.
귀뚜라미는 추초생(秋初生)이라는 별명이 있다. 즉 가을 일찍이 나와 계절을 알려주는 젊은이라는 뜻이다.
또 귀두라미는 가을의 상징 뿐만 아니라 용기 있는 선비로도 비유되어 왔다.
[哀傷]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함.
[馴致] 짐승 따위를 잘 따르게 하거나 부리기 좋게 길들임.
[凋落] 초목의 잎 따위가 시들어 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