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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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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국보급 문화재인 동조 여래 입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려던 절도단이 경찰이 검거된 가운데 구미시의 국보 유산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이 세간의 관심을 사고 있다.
지난 달 29일 문화재청은 감식결과 동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74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면서 1976년 경상북도 구미서 발견돼 국보 182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과 흡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산읍 금동여래입상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1976년 당시 선산군 고아면 봉한 2동 뒷산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관음보살입상 2구(국보 제183, 184호)와 함께 출토된 금동 여래 입상은 발견되기 70여 년전 어느 농부에 의해 부근 대밭골이라는 곳에서 발견됐다가 몇년 뒤 현재의 장소에 다시 묻었던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왼손과 왼발 일부가 없어지고, 얼굴과 가슴에 약간의 녹이 있으나 도금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양감 있는 얼굴은 원만하며, 예리한 선으로 눈·코·입을 표현하였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몸에 달라 붙어서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옷자락은 배부분에서 평행한 U자형의 주름을 이루고, 다리 부분에서 좌우로 갈라져 대칭을 이루면서 발목까지 드리워졌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여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몸의 형태나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며, 옷주름이 정리되어서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생동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소 경직된 자세와 고졸한 미소가 남아 있는 얼굴, 우전왕식의 착의 법, 뒷면에 작은 틀잡이 구멍이 있는 중공식 주조법 등에서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반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불상은 1976년 3월 8일, 당시 고아면 봉한2동 산(山) 56번지에서 사방공사를 하다가 인부 김삼복(金三福) 등 두 사람이 발견했다.
마을의 전설에 따르면 70년 전에 사망한 윤원벽(尹源璧)씨가 주웠으나 그의 부인이 지금의 발견장소에 묻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기(統一新羅期) 초기의 양식을 갖춘 8세기의 작품으로, 조법(彫法)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