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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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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인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가 2월14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는 영예를 안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50여년 동안 걸어온 공직의 꽃을 선물받는 순간이었다.1942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 출신으로 나이 70세. 그러므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 분명했다. 50년을 훌쩍 넘긴 한국 최장수 공직생활이라는 경력에다 ‘95년 민선초대 구미시장을 시작으로 기초자치단체장 3선과 광역자치단체 2선 등 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5선을 거치는 동안 밀물 처럼 때로는 썰물처럼 보내고 받아들였을 희노애락이 그러했을 것이다. 대구 사범학교를 다녀야 했던 유년의 흔적 또한 교차하는 만감에 감성을 불어넣었을 터였다.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장에다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등을 통해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는 김지사는 특히 구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임박해 오면서 구미시민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겨울을 이겨내야 봄을 맞이하는 법이고, 험산준령의 길을 버텨내야 정상에 오를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김지사는 어떠한 길을 걸어오면서 어떤 자취를 남겼을까. 그리고 구미시민들이 김지사에게 어떤 주문을 하고 있을까.
▶구미현대 정치 1세대의 주역
구미출신 김관용 지사는 구미가 배출한 현대 구미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화려한 언변과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친화력, 낙마처럼 얽힌 다양한 과제를 말끔하게 풀어내는 정치적인 수완은 김지사만이 갖고 있는 힘이다.
이러한 자산이 힘이 되었기에 초등학교 교사, 행정고시 합격,구미시 3선시장, 재선의 경북도 민선 지사라는 이력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돼 김윤환-박세직- 박재홍 국회의원으로 이어져 내려온 구미현대 정치사에 김관용 지사라는 이름 석자를 구미 시민들은 써 넣는데 주저 않는다.
행정가에서 정치가로 택호를 바꾼 것은 지난 1995년 실시한 제1대 민선구미시장 선거가 계기가 됐다. 이 당시로부터 지난 2010년 민선 경북도지사 재선에 이르기까지 김지사는 험산 준령을 뛰어넘어야 했고, 때로는 수도권 규제 완화의 한파 앞에서 고독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민선 1대 구미시장 선거
행정고시 합격 후 중앙부서에서 주요 보직을 거친 김관용 지사는 전 용산세무서장이라는 직책으로 1995년 제1대 민선구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 당시 김지사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이가 전병억 현 박대통령 생가보존회장이었다.
선거 당일 개표는 갑,을 선거구로 나뉘어 진행 됐다. 개표가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갑 지역 개표장이었던 올림픽 기념관에서는 전병억 회장이 1천수백표를 앞서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김지사는 갑지역에서 뒤진 표를 을지역에서 보충했다. 특히 고향인 고아읍의 몰표에 힘입어 김지사는 손에 땀을 쥔 끝에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후 전병억 회장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출마예상자로 거론이 되었으나, 백의종군의 길을 걷다가 박대통령 생가 보존회장을 맡으며 구미를 이끌어가는 원로의 길에 들어섰다.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 궐기대회
경북도지사 선거를 향해 잰걸음을 하던 3선 구미시장 시절인 2005년 가을은 김지사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 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방침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결국 그해 11월 17일에는 정부와 여당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발한 구미시민을 비롯한 경북도민들이 구미 공단운동장에 집결, 대규모 궐기 대회를 가졌다.
이 당시 수도권 규제 완화의 주무부처의 장은 바로 건설교통부였고, 장관이 바로 구미출신 추병직 씨였다. 건교부 차관을 사직하고 제 17대 구미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김태환 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석패한 추 병직씨는 선거에서는 졌지만, 차관에서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한 추 장관이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 대시민 궐기대회가 있은지 4일 뒤인 2005년 11월21일. 가산- 도개 국도 개설공사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 날 추장관은 개통식 기념식장에서 김관용 당시 시장을 바라보면 이런 말을 남겼다.
“수도권으로 공장 가지 말라고 외쳐 봐도 소용없다. 그 이전에 혁신역량을 키워야 하고,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었어야 한다. 일류대를 나온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방으로 오겠느냐, 교육,문화 시설등 주변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차기 시장은 이러한 여건들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직인 김관용 시장이 문화, 교육 인프라 등 정주여건 개선시책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했더라면, 공장들이 지방으로 (구미) 몰려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그날 김 시장은 경운대에 마련된 오찬장에도 불참할 만큼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시민 감정이 시장의 책임론으로까지 번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 도지사 출마를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던 김 지사에게 추장관의 발언은 자칫 핵폭탄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 따라 권력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관용 당시 시장은 소통령으로 불리는 민선 경북도 도지사가 되어 있었고, 추병직 건교장관은 2006년 11월 15일, 직에서 물러나 전직 장관이라는 야인으로 물러앉아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6월1일 오후 구미역에서 열린 KTX 구미역 정차 환영식장 행사에 참석한 두 인사는 상황이 역전된 가운데 만났다.
남유진 시장의 환영사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등단한 김관용 지사는 앞에 앉은 추병직 전장관을 바라보면 여유를 보였다.
“추장관께서도 현직 장관이셨으면 단상에서 축사를 하셨을 텐데요...”
이처럼 미래의 세월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도지사 경선, 본 선거
2005년도의 악몽을 안고 새해를 맞은 2006년은 김지사의 운명을 가르는 해였다. 경북도 도지사 경선을 위한 경선일인 2006년 4월 22일 당일까지도 김지사의 승리는 불투명했다.그런 만큼 후보 경선을 위한 경선장은 뜨거운 열기와 긴박감으로 달아올랐다.
포항시장 출신의 정장식, 구미시장 출신의 김관용, 국회의원 출신의 김광원,지역별로는 포항과 구미의 경쟁이었고, 지방대와 서울대의 대결이기도 했다.
대구 사범대학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김관용, 서울대 출신의 정장식,김광원의 대결은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특히 당시 김관용 후보는 들성 김씨였고, 김광원 후보는 일선김씨이기도 해서 관심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경선이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던 정장식 후보에게 경선 당일까지만해도 승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결과는 이외였다. 전체 유효투표 4천452표 중 김관용 후보는 41.3%인 1천840표를 획득한 반면, 정장식 후보는 1천402표, 김광원 후보는 1천210표를 얻는데 그쳤다. 3인의 운명이 뒤바뀐 2006년 4월22일이었다.
이후 김관용 지사는 압승을 거두고 경북도지사에 당선됐다. 선거패배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짧지 않은 23개월 동안 외로움을 달래오다 2008년 3월 차관급인 중앙공무원 교육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광원 전 국회의원 역시 정장식 전 포항시장보다 6개월 늦은 2008년 9월 12일 경선 패배 후 30개월만에 마사회장에 임명이 확정됐다.
박명재 씨도 김지사와 인연이 깊다. 2006년 5월31일 경북도지사 본선에서 김지사는 열린 우리당 후보인 박명재 씨와 맞붙어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경북도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와의 경쟁은 예상했던 대로 싱겁게 끝을 내렸다.이후 박명재 후보는 참여정부의 행자부장관으로 임명이 되었다. 그 또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세상에서 사라지는 인물로 분류가 되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2009년 2월12일 포천 중문의대 신임 총장을 선임하는 학교법인 성광 학원 이사회, 이사진 회의에서 새 총장으로 선임되면서 또 한번 파란을 일으켰다.
4년후인 2010년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2006년 석패의 아픔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김지사에게 도전했으나 승리의 월계관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권불십년이요,화무십일홍이다. 구미시장 김관용, 경북지사 김관용이 있기까지 그를 거쳐간 당시의 인연들, 그 인연들은 김지사에게 험산준령으로 작용했고, 그 험산준령이 있었기에 오늘의 김관용 지사를 탄생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직함에 국민훈장 목련장이 걸리게 된 것도 희노애락이 점철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되기까지
7년의 민선 경북도지사 재임기간 동안 김지사는 국정의 최대 현안사업인 △낙동강 사업의 성공적 추진 △원자력 클러스터사업의 모범적 추진 △FTA 선도적 대응으로 농․어업 경쟁력의 향상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다문화 정책의 선도적 실천 등의 국정과제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정운영에 헌신적으로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국정운영에 협력․동반자로 적극적인 협력체제를 구축,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점도 높이 평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4대강 살리기의 최대 현장인 낙동강살리기 사업을 가장 모범적으로 추진해 하천준설과 6개의 명품보 건설, 자전거길, 하도정비, 농경지 리모델링 등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이와함께 “더불어 낙동강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이 찾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국민의 휴양공간으로 만들고, ‘2015년 제7차 세계물포럼’ 유치를 계기로 물산업 R&D 인프라와 산업 집적화를 통한 물산업 핵심 거점으로 육성해 나가고 있다.
특히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사업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지역주민들의 불안심리로 원전 추가건설에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지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여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FTA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자체조직을 정비하고, 기금을 조성하는 한편, 농민사관학교를 통한 농업리더 육성 등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농업경쟁력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세계적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맞이한 국가경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하여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에도 도정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추진되고 있는 ‘2013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은 ‘세계 빈곤퇴치의 희망’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며 최적의 ODA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더군다나 2006년도에는 ‘지역균형발전협의체’를 결성하고 6년간 초대공동회장을 맡아 ‘수도권 규제완화 철회’를 촉구하는 1천만명 서명운동, ‘국가균형발전’에 앞장서 왔다. 특히, 국토발전계획을 서남해안 발전을 위한 L자형 발전계획에서 동해안을 포함한 U자형 발전계획으로 수정하는 근간을 이끌어낸 것도 김지사의 빼놓을 수 없는 지대한 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에는 만장일치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지역현안인 ‘영유아 무상보육 확대’, ‘취득세 감면연장’ 등을 국회, 정부부처, 언론사를 방문,지방의 어려운 현실과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건의 하므로써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여기에다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 바로 경북도청 이전이라는 과제 해결이었다.
김지사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 본부가 주관한 공약실천평가에서 2년 연속 최고등급(SA), ‘대한민국 글로벌 CEO',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 ’2012 공생을 위한 사회책임경영 CEO', 'Seoul Success Awards 수상', '2013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에 선정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할
제 18대 대선을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김관용 지사가 당선에 큰 몫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 근혜 대통령 정부에서 김지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구미시민들은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이 최초로 고개를 든 2005년 당시의 구미 가을의 악몽을 기억하고,이를 교훈삼아 구미공단이 제2의 부흥시대를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역할론을 김지사에게 위임하고 있다.
이처럼 구미시민들이 김지사에 대한 간절한 요구는 구미 낙동강의 허허벌판에 구미공단을 일으켜 세운 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인데다가 구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앞두고 있다는 우호적인 환경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