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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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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건축에 관해서 읽은 최근의 책들은 건축 혹은 집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깜깜한 문외한에게는 혼돈을 넘어 안타까움을 보여줍니다.
그 첫째가 건축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입니다.
대학 5년의 과정, 수련 3년, 그리고 국가 자격증 취득율이 전문의 시험의 90% 합격률에 비해서 건축사 10%대라는 심각(?)한 진입장벽을 통과해야하는 전문직이면서도 영화에서 보는 멋진 사람(‘신사의 품격’의 장동건 처럼)인지, 결벽증의 사람(‘결혼 못하는 남자’의 지진희 처럼)인지 그도 아니면 밤샘작업에 소파에서 잠을 자고는 화장실에서 세수하는(‘건축학 개론’의 엄태웅 처럼) 생활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사람에게는 어떤 건축물(건축재료)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견들입니다.
후나세 슌스케는 콘크리트의 역습(2012.12. 도서출판 마티)에서 ‘콘크리트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살아야 할) 집은 목조건물이라고 규정합니다. 실제 실험쥐를 통한 생존율에서 콘크리트 속에서는 7%이던 것이 목재에선 85%라는 수치와 콘크리트 학교 건물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집중력, 면역력에서 저하되고 폭력성이 증가하는 것, 콘크리트주택의 탄소배출량은 목조주택의 그것에 비해 4.2배나 높다는 근거를 증거물로 내면서....
그런데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집 ‘나는 어떤 집에서 살아야 행복할까?’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려면 살아있는 생명체인 흙, 바로 그 흙으로 만든 집에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생애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원형인 토담집과 그것을 피한 현실에서의 모습을 아토피(흙을 피한 결과 생긴 아픔)라는 자료의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권투선수, 트럭운전수의 경력으로 대학의 정규공부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일본 최고 대학의 건축과에서 강의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왜 콘크리트인가’라는 제목 하에서 ‘콘크리트 건물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된 공법으로 만들고 싶은 공간을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 할 수 있는 매력’으로 ‘건축가의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인 콘크리트의 집을 통하여 건축을 말하기도 합니다.
집을 만드는 사람(건축가)의 모습도, 그 사람들이 애써 만드는 집의 재료에 대한 각각의 다른 이유도 사람을 혼란하게 하고, 헷갈리는 정답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안도의 책은 앞서 제기한 혼돈 즉 ‘사람이 살기에(건강에) 좋은 집을 위한 재료로써 흙이나 나무’보다는 건축가의 정신, 즉 건축에 대한 철학과 방식을 이 책을 통해서 ‘콘크리트가 가장 적합한 재료’라고 말합니다. 이어 ‘계속이라는 힘이 건축을 키운다’는 말로써 자연을 해치지 않는 건축물, 자연과 같은 호흡의 건축물, 그 가운데 피어나는 작가의 혼이 건축이라고.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 선생님의 시에서는 ‘어디서나 만난 사람 그 모두가 친구이고 이 강산 발 닿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라네.’라는 말이나 옛사람들은 ‘산에 가면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에 가면 산을 그린다’고 한 말들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또 그분들이 가르쳐주신 ‘집이란 풍경보다는 영혼의 한 상태’라는 글이 참 마음에 듭니다.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도 집이란 만드는 재질에 따라 평가되거나 건강에 대한 호 불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과 그 혼이 깃든 마당의 풍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20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