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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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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앞에 모습을 들어 낸 민족 중흥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난 2000년대 초부터 꾸준하게 거론되어 온 자연보호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시민들은 독자적인 기념관 건립이 여의치 않을 경우 최근 기공한 경북자연환경연수원 내 친환경 탄소제로 교육관의 명칭을 자연보호 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아울러 교육관 내에 관련된 시설을 추가하게 되면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성에다 상징성을 더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보호 기념관을 별도로 건립하거나 부대시설 보완 후 탄소제로 교육관을 자연보호 기념관으로 개칭하게 되면 생가 앞 민족중흥관, 조성 중에 있는 새마을 테마파크 공원, 자연보호 기념관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경우 근대화 산업 메카의 상징물인 민족중흥관, 새마을 운동 중심지로서의 새마을 테마파크,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로서의 자연보호 기념관이 상호 밀접한 상징성을 맺으면서 향후 구미를 먹여 살릴 신성장 동력 산업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녹색운동이 지구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구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자, 지난 90년대 말부터 자연보호 운동 구미시협의회와 자연보호 중앙협의회는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인 금오산에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표지석, 금오산 도립공원에 자연보호 운동 상징 아치, 자연보호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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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 교육관 조감도 |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97년에는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에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라는 표지석을 설치했으나, 이후 공원 입구에 상징아치 설치 및 자연보호 기념관 건립은 논의만 됐을뿐 가시화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된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 자연보호 발상지인 금오산 도립공원에는 자연보호 운동 헌장탑과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표지석, 대혜폭포의 쓰레기 줍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물 설치등이 전부인 실정이다.
▶자연보호 기념관 건립 공식 논의
구미시 차원에서 자연보호 기념관 건립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3년 11월 23일이었다. 이날 자연보호 구미시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곽용기 구미시의회 의원은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인 금오산 도립공원은 온국민을 대상으로 한 자연보호 운동의 산교육장으로써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연보호 시설물의 설치, 오물쓰레기 수거 캠페인을 거쳐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되가져 가기 등의 시책의 산실이 되었고, 전국 단위의 각종 자연보호 행사 개최와 자연보호 백일장 등을 통해 자연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자연보호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답변에 나선 당시 행정지원국장은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로서 긍지와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수년전부터 자연보호 운동 중앙협의회와 공동으로 환경부 관계관과 수차례에 걸쳐 협의를 했으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면서 향후 박대통령 기념사업과 연계해서 자연보호 관련 자료를 함께 전시하도록 하는 등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답변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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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대혜폭포 찾은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의 자연보호에 대한 열의
1977년 9월 5일 금오산 대혜폭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널부러진 병조각과 휴지를 줍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보호 활동을 태생시켰고, 이후 구미는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로서 자리를 다졌다.
따라서 저탄소 녹색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자연보호운동의 계승은 구미시가 추구하고 있는 새마을 운동 종주도시로서의 위상과 비교해 뒤쳐질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의 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무분별한 훼손으로 자연의 평형이 상실되어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는데 대한 대응 논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보호 헌장이 선포된 것은 1년 후인 1978년 10월 5일이었다. 헌장 전문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연생태계의 법칙과 조상들의 자연보호관을 소개하고,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고, 자연보호를 위한 국민적 결의를 집약하고 있다. 헌장 실천사항은 7개항의 다짐사항을 통해 자연보호에 대한 국가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의 중요성, 올바른 환경윤리관의 확립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77년 9월 5일 금오산 대혜폭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널부러진 병조각과 휴지를 줍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보호 활동을 태생시켰다고 하지만,박대통령은 그 이전부터 구미를 방문할 때마다 자연보호 운동의 절박성을 강조하곤 했다.
▷1967년 3월 30일 선산군 일선교 준공식 치사
1967년 3월 30일 당시 선산군 일선교 준공식에 참석한 박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 우리 고향은 문자 그대로 선산, 착할 선자 뫼 산자, 착한 산인데, 한가지 오늘 고향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당부를 해야 될 말이 있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자연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선산은 옛날부터 살기 좋고, 산천이 아름답고, 우리 고장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났읍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우리 고향의 산들이 저렇게 모두 뻘겋게 헐벗고 있읍니까? 나는 선산을 지나다닐 때마다 기차로 갈때나 비행기로 이 위를 갈때 늘 보고, 우리 고향이 딴 고향보다 산이 제일 나쁘다, 선산인데 선산이 아니라 나쁜산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건 우리가 그동안에 우리 고향산의 산림을 애호하고, 나무를 가꾸고 심고하는 이런 고향산천을 아끼는 마음이 적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결과가 오지 않았나 하는 것을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우리 고향을 사랑하면 할수록, 무엇보다도 우리 고향의 산에 아름다운 나무를 우리가 심고 가꾸고 보호를 해야 하겠다는 것을 우선 이 기회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
▷1968년 11월 11일 선산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식
일선교 준공식에 이어 1년 반 만에 다시 고향 구미인 선산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대통령은 또 치사를 통해 자연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한국의 산을 보십시오, 전부 벌거숭이 같은 산에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앙상한 나무들이 붙어 있다”고 전제한 박대통령은 자연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의 경우 이것은 전부 울창하고 무성합니다. 외국에서는 땅이 좋고 비가 잘 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일년 내내 거의 비가 안오는 땅에서도 훌륭한 나무를 심어서 몇년 내에 울창한 숲을 이루었읍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당에다 나무를 심어서 울창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 이 사람들은 수 십년 수 백년 동안 노력하고 당대에서 안되면 자손들까지 대대로 노력해서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내가 얼마 전에 동남 ‘아시아’와 ‘뉴질란드’를 방문하고 왔읍니다. 그 나라에서는 온 산이 꼭 공원과 같이 목장이 아니면 울창한 숲입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산에 심어져 있는 나무, 목장의 풀, 이것은 거의 다 지난 백년 동안에 ‘뉴질란드’사람들이 동양이나 ‘구라파’에서 가져와서 전부 개량을 했습니다.
그 지방의 농산 수목이라든지 풀이라든지 이런 것이 거의 없어지고 개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지방에서 키우고 있는 소라든지 양이라든지 전부 ‘구라파’에서 가져왔읍니다. 종면도 그렇습니다. 이런 정도로 끈질기게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정년 우리들 당대에는 잘 사는 부자가 되지 못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들 다음 대에 가서는 우리도 남과 같이 훌륭한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77년 10월 5일 치사
자연보호 운동에 대한 절박감은 박대통령 재임기간 내내의 최대 국책과제였다. 1977년 9월 5일 금오산 대혜폭포를 방문하고 널부러진 병조각을 줍는 것이 계기가 돼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 구미를 태생시킨 열흘 후인 1977년 10월 5일 박대통령은 자연보호 운동과 산업화 시대를 연계한 연설을 함으로서 자연보호 운동을 구체화 시켜 나갔다.
“자연은 한번 오염되고 훼손되면 제 모습을 되찾는데 오랜 시일이 걸리고 때로는 그 복원이 영영 불가능한 경우조차 있으며 자연자원도 결코 무진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이 크게 발달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감에 따라 자연의 이용도가 급증해가고 있으며 이와 비례해서 자연환경의 오염과 훼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을 더 늦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가 슬기와 정성을 다해서 해결해 보자는 것이 이 운동의 목적입니다.조국근대화의 세찬 물결 속에서 우리가 쾌적하고 풍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해치지 않고 자연을 아끼며 절도있게 이용하는 슬기를 터득해야만 하겠습니다.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우리 강산을 더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가꾸어서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 세대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구미,지혜 보태면 보물이 되고 돈이 된다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 구미는 최근들어 유해물질 누출사고로 홍역을 앓고 있다. 1960년대 박대통령은 산을 푸르게 가꾸는 것이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고, 산업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970년 들면서는 산업혁명과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연계하는 등 현재의 구미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예고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연보호 발상지 구미의 곳곳에는 자연보호 운동을 태생시킨 박대통령의 어록과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자연보호 운동 발상은 일선교 준공식과 선산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대통령의 치사를 통해 이미 거론됐고, 이러한 구상은 금오산 대혜폭포를 찾은 박대통령이 직접 쓰레기를 주우면서 구상에서 실천단계로 성숙돼 나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보호 운동은 전세계가 주창하고 있는 녹색운동, 탄소제로화 운동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구미는 형언할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10년전부터 공식 거론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소중한 사료들을 집대성할 수 있는 자연보호기념관 건립은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백억원을 들여 시설한 테니스장, 청소년 시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물이 되고 미래 구미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줄인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구미를 집대성하는 것이라는데 뜻있는 시민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