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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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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금오산 중턱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 관리가 허술해 글씨가 지워지고 있다
금오산 정상 미군기지 내의 콘크리트에 묻혀 있는 황기로 선생의 걸작품인 후망대 候望臺 를 복원해야 한다는 본지 보도와 관련 구미시가 내년도 금오산 정상을 복원하는 계획에 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본지 2013년 4월 23일 최초 보도>
시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미군이 미군기지내의 철조망과 건물을 철거하고, 내년에는 구미시가 자체적으로 정상복원에 나서게 된다.
이에 앞서 본지는 구미출신으로 우리나라 3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인 황기로 선생이 금오산 정상의 큰 바위에 초서체로 음각한 후망대 (候望臺)가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파묻혔고, 현재 큰크리트에 덮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보도 후 시민들은 문화적으로 보물적 가치가 높은 후망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큰크리트 해체 등 옛 미군기지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금오산에 남긴 황기로 선생의 발자취
정상 이외에도 금오산 케이블카 기점으로부터 금오산 방향 500미터 부근에는 거대한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 金烏洞壑 ( 金(103㎝×72㎝) 烏(107×69) 洞(90×52) 壑(95×50)이 있다.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을 뜻하는 소중한 보물인 금오동학은 보물적인 가치가 있으나 안내판만 있을 뿐 이를 보존하거나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이 뒤따라 주지 않아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글씨체가 상당부문 훼손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고귀한 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보호시설을 서둘러 설치하고, 아울러 시야를 장애하는 나무를 잘라내는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종 16년 (1521년) 지금의 고아읍 대망리 속칭 망장에서 태어난 고산 황기로 선생(1521년- 1567년)은 유구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성인 칭호를 받는 3인 중의 한 사람이다. 문인으로 신라시대 김생은 서성 書聖, 조선시대 황기로는 초성 草聖, 무인으로 이순신 장군이 성웅聖雄 칭호를 받았다. 그만큼 황기로 선생은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의 한사람인 것이다.
특히 황기로 선생은 사신단으로 중국을 방문 했을 때 황제 앞에 글씨를 써 넣었고, 이를 본 황제는 황기로 선생을 해동초성 海東草聖이라고 칭했다. 왕휘지 이후 일인자라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중국사신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황기로 선생의 글씨를 받아가는 것을 최고의 선물로 여겼고, 금오산 정상에 올라 후망대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 만큼 황기로 선생은 중국에서도 성인의 예를 받던 인물이었다.
고아읍에 있는 접성산의 유래 역시 황기로 선생이 서재로 사용하던 매학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인이 태어나고 도를 닦는 매학정과 접해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접할 접 接자에 성인 성 聖자를 써서 접성산 接聖山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한편 시는 후망대가 복원될 경우 문화재 지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