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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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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금오산성 성문 입구의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다>
구미지역 곳곳에 산재한 역사 유물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엉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역사적 유물을 찾아 이를 보존, 계승하려는 타 지자체와는 격세지감이라는 것이다.
금오산 성안 마을 입구에는 금오산성이 있다. 이곳은 영남지방의 전략 요충지로서 3천 500여명의 군병으로 선산, 개령, 김천, 지례등 4군을 관할하던 곳이다. 특히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정기룡 장군이 왜적을 맞아 산성을 지키기도 했을 만큼 역사적인 곳이다. 내성 둘레가 2천 316미터, 높이가 2.1미터, 외성의 경우는 둘레가 1천 253미터, 높이가 4.2미터로서 성안에는 7개소의 못과 8개의 샘, 1개의 개천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유서깊은 성안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산성은 허물어진 채 방치되고 있다. 여기저기 나뒹글고 있는 돌담들은 구미시의 문화 정책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산성을 지나면 성안마을의 옛터가 있고, 맞은 편에는 남북 분단 아픔의 상징인 미군통신기지터와 통신시설물이 잔존해 있을 만큼 이곳은 조선과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인 가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어서 이를 연계할 경우 살아있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존재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하지만 이처럼 유서깊은 역사의 현장이 방치되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각이 고을 리가 없다. 11일 이곳에서 만난 이모(형곡동)시민은 “역사적인 향기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현장을 방치하는 것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고증작업을 통해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뿐이 아니다.
금오산 중턱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 역시 관리가 허술해 글씨체가 지워질 위기에 놓여 있다.
케이블 카 출발지점으로부터 금오산 방향 500미터 부근에는 거대한 바위에 황기로 선생이 음각한 금오동학 金烏洞壑 ( 金(103㎝×72㎝) 烏(107×69) 洞(90×52) 壑(95×50)이 바로 그것이다.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을 뜻하는 소중한 보물인 금오동학은 보물적인 가치가 있으나 안내판만 있을 뿐 이를 보존하거나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이 뒤따라 주지 않아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글씨체가 상당부문 훼손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고귀한 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보호시설을 서둘러 설치하고, 아울러 시야를 장애하는 나무를 잘라내는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여론이지만 이 또한 시는 흘려 버리고 있다.
조선 중종 16년 (1521년) 지금의 고아읍 대망리 속칭 망장에서 태어난 고산 황기로 선생(1521년- 1567년)은 유구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성인 칭호를 받는 3인 중의 한 사람이다. 문인으로 신라시대 김생은 서성 書聖, 조선시대 황기로는 초성 草聖, 무인으로 이순신 장군이 성웅聖雄 칭호를 받았다. 그만큼 황기로 선생은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의 한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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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고 있는 금오동학 서체, 보호 장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 |
특히 구미출신으로 우리나라 3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인 황기로 선생이 금오산 정상의 큰 바위에 초서체로 음각한 후망대 (候望臺)가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파묻혔고, 현재 큰크리트에 덮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보물적 가치가 있는 후망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큰크리트 해체 등 옛 미군기지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뜻있는 시민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은 금오산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방치 되다시피하고 있다. 오태동 자연부락에는 야은 길재 선생과 여헌 장현광 선생의 묘지가 한 동네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안내 표지판이 없어서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관련 최근 구미경실련은 228억 원을 들여 구미역사 디지털문화센터(야은 기념관)를 건립하거나, 최근 번듯한 여헌기념관을 만든 사례와 어울리지 않는 지역 역사인물 묘지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아읍의 야은 선생 생가 유허지를 경상북도지정 기념물로 추진하면서도 역시 안내 표지판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구미경실련은 지적했다.
오태동은 최근 이러한 지적에 따라 안내판을 설치했다.
선산읍에는 또 조선 세조(世祖)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구미가 낳은 충절과 절개의 상징인 단계 하위지(河緯地, 1412~1456) 선생의 유허비가 있지만 이 또한 관리가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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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물이 부서지고, 소화기가 나둥글고 있는 단계 하위지 유허비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된 유허비의 설치물이 파손돼 있는가하면 방재용 소화기도 나뒹글고 있다. 또 최근 잡초를 제거했지만, 뒷정리를 하지 않아 짤린 잡초들이 나뒹그는 유허비 주변이 폐허를 방불케 하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에 문화 유산이 밀려나게 한다는 것은 후진적인 시정책의 산물이다.이 때문에 시민들은 “ 가치가 없는 역사적인 유물도 들춰내 가치성을 부여하는 선진 지자체의 문화관광 정책과에 비하면 수치스러운 일이고, 동시에 경제적 가치를 무시하는 발상 자체가 안타깝기 그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