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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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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가 아니다, 배 고프고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가난 앞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두 가지의 길을 택하게 된다.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허기진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가난의 멍애를 벗어던지기 위해 험산 준령을 넘어설 것인가.
10월 26일, 험산 준령을 넘어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 낸 주인공인 파독광부와 간호사 일행 224명이 50년 만에 모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인생 역전의 신화를 쓴 박정희 대통령 생가인 구미를 찾았다.
굴뚝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산등성이 아래 고향과 부모의 따스한 품을 떠나 이역만리 독일로 건너간 지 50년만에 모국을 찾는 길이었다. 특히 이들이 구미를 찾은 10월 26일은 (사) 박정희 대통령 생가 보존회 주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34주기 추도식이 열리던 날이어서 더욱 더 깊은 감명을 불어넣었고 의미를 더해 주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이 첫발을 내딛 던 1964년 12월, 경제 개발 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얼싸안고 오열을 터뜨리던 이들이 아니었던가. 이들은 지금도 당시의 감회를 가슴 깊이 들여놓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처럼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자”던 박대통령의 절절한 호소를 50년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이들은 산업화, 현대화의 기반을 닦은 구미공단을 멀리 내려다보면서 솟구쳐 오르는 감회 앞에 고개를 숙였다.
▶50년만에 고국을 찾았지만, 이들을 울린 초청 사기극
경찰은 지난 27일 정수 코리아를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구미를 찾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초청 사기극을 벌였다는 혐의 때문였다.
사건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는 정수 코리아 김문희 회장(68)의 서울 은평구 자택과 영등포구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서류 일체를 가져갔다.
이 단체는 224명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고국방문 행사를 기획했다. 하지만 이 단체는 입국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당초 예약했던 숙소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는가하면 대부분의 행사까지 취소하는 등 사기극을 벌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또 행사 진행 과정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1인당 1천달러를 챙겼다는 혐의에 주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파독 50주년을 맞아 지난 22일, 23일부터 30일까지 7박8일간의 일정으로 고국을 찾은 이들은 사기극에 휘말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젊음을 바쳐 보릿고개의 가난을 밀쳐내고 경제 부흥의 전도사 역할을 한 이들에게 고국이 보여준 것은 희대의 사기극은 또 다른 슬픔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듣고 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안은 이가 다름 아닌 구미시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면서 새마을 운동 종주 도시인 구미로서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적 책무감은 구미시로 하여금 이들을 끌어안는 선봉에 서게 했고, 관광공사와 한전이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모국 방문단들은 구미에서 잃어버린 웃음을 되 찾을수 있었다.
▶파독 광부 간호사 방문단을 맞이한 구미시
방문단은 26일 오후 1시 30분, 구미코에 도착해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오찬행사에 참석했다.이들은 이어 시청직원이 안내 봉사자로 나선 가운데 6대의 차량에 분승, 자신들의 피와 땀이 오랜 세월 속에 녹아들어 있는 1-4공단을 둘러보았고, 오후 4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도착한 방문단은 생가, 민족중흥관, 동상 주변을 둘러보면서 50년 전의 세월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특히, 민족중흥관 돔 시설을 통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 생활상이 나오는 영상물을 접한 방문단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떨리는 손을 젖은 눈시울로 가져갔다.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은 이들을 더욱 과거의 세월 속으로 끌어들였다.
“나라가 못사니까, 우리 젊은이 들이 이 고생 하는걸 보니,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다음세대에게 잘 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남유진 구미시장도 이들을 극진하게 환대했다. 26일 오후 6시 부터 3시간 가량 진행된 고국방문단 환영행사 장에서 일일이 악수를 나눈 남시장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들과 함께하면서 파독 당시의 애환을 경청하는 등 50년간의 짧지 않은 세월의 길을 동행했다.
특히, 남시장이 “파독 광부 간호사 여러분의 희생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 원동력인 산업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었다“면서 ” 오늘의 구미,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역만리 독일에서 흘린 여러분이 쏟은 땀과 눈물로 이뤄졌다“고 강조하자, 흐느끼는 소리가 장내를 숙연케 하기도 했다.
사물놀이, 해금독주, 태평무, 진도북춤, 민요 메들리, 소고춤 등 전통과 추억, 고향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와 춤은 이들을 더욱 더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더군다나 광부의 노래 등 추억의 노래를 부르면서 향수에 젖은 이들은 구미시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 간호사와 감격적인 재회를 한 P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방문단이 구미를 뒤로한 것은 27일 오전 8시 30분 박정희체육관 앞에서 였다. 남유진 구미시장과 시 직원, 새마을 남녀단체 100여명이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빠져나온 차량이 구미 IC로 향하는 동안 방문단은 이역만리 독일에서 흘린 피와 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구미공단을 고향의 동구 밖 돌아보듯 눈을 떼지 못했다.
▶ 파독 광부 간호사의 피와 땀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은 69달러였다. 당시 유엔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현실은 북한보다도 뒤져있었다. 인도 다음으로 못 살았던 나라로 한국을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그 무렵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궁리 끝에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할 인력을 수출하기로 결정했고, 드디어 1963년 121명 광부 1진이 이역만리 독일로 향발했다.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던 시절이었다. 이듬해인 1964년, 2진을 선발할 당시에는 500명 모집에 4만6천명이 지원했으니 말이다. 82대·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률이었다. 이들은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극복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처럼 보릿고개의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옹골찬 패기를 앞세우고 1970년대 후반까지 이역만리 독일행을 택한 광부는 8천명, 간호사는 1만 1천명이었다. 이들이 우리나라로 송금한 외화는 1억153만 달러였고, 그 피와 땀은 경부고속도로등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제철, 시멘트, 비료,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는 종잣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역만리 독일에서 간호사들은 악착같이 일했다. 수당이 많은 야간 근무를 도맡아 했고, 쉬는 날에도 다른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15일간 야근을 하면 10일을 쉴 수 있었지만, 이들은 쉬어야 할 10일 동안 다른 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했다. 생존 조건의 극한대를 오르내리며 젊음을 바쳤던 것이다.
광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갈 여비가 없어 소와 논팔을 팔거나 빚을 지고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당이 지상근무에 비해 비싼 땅 속 근무에 사활을 걸었다.섭씨35도, 지하 1000m 깊이의 탄광에서 탄 캐기를 마다않던 광부들 역시 생사의 벼랑을 넘어서는 아슬아슬한 길을 도도하게 걸어갔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초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50년 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흘린 피와 땀이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1964년 12월, 경제 개발 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 섭씨35도, 지하 1000m 깊이의 탄광에서 검정 투성이가 된 채로 자신과 싸우고 있는 광부들 앞에서 쏟아내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은 50년이 흐른 지금도 이들의 가슴 속에 영롱하게 살아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나라가 못사니까..., 우리 젊은이 들이 이 고생 하는걸 보니...,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다음 세대에게 잘 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실상과 허상은 그속을 볼줄 아는 심안(心眼)이 문제인데 그리도 삐딱하게 보는 그눈은 무엇인가??..작금의 정치를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희망이 없던 그시대에 이런 지도자가 또 있을까...넓고 깊은 사고가 요하는게 아니라도 우리 지역에 이런 지도자가 있어 자긍심과 존경심정도는 있어도 충분할텐데...참 안스럽고 안스럽다..
11/01 10:25 삭제
'박정희가 독일 방문했을 때 간호사의 눈물을 딱아주었다는 것은 거짓' '그 자리에는 광부와 간호학생들이 있었는데 애국가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린 것은 사실인데 박정희는 애국가가 끝난 뒤 그냥 나갔다' (이수길 박사)
10/28 15:43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