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진솔한 사랑이 넘쳐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들의 미래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이 가난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내일을 향해 갈 수 없다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던히도 한파가 몰아치던 2012년 1월 9일, 여고 3년생의 손을 맞잡은 석호진 LG 디스플레이 노동조합 위원장(53)의 눈가에 눈물이 아련하게 맺히고 있었다.
석위원장과 손을 맞잡은 소녀는 구미여고 3년이었다. 시한부 엄마를 둔 여고생은 교육대학 등에 합격한 인재였지만 앞서 떠난 아버지와 머지 않아 세상을 등질 시한부인 어머니, 그리고 월세비 조차 낼 수 없어 길거리로 나앉게 만든 가난 앞에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이처럼 기막힌 사연을 전해들은 구미경실련과 김익수 시의원이 학생 돕기 운동에 나섰고, 그 운동의 최일선에 선 석호진 위원장은 여고생에게 장학금과 여고생 동생의 향후 생활비를 지원했다.
또 머지않아 고아가 될 여고생 형제가 거처할 외할머니의 노후 주택에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헌혈했다. 마치 소설같은 넌픽션이었다.
이처럼 노블리제 오블리즈를 실천해 온 석호진 위원장이 지난 23일 신임투표 형식으로 진행된 선거에서 99.92%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7대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위하는 타아의 가치관, 기업과 지역사회가 마치 수레바퀴처럼 굴러가야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윈원의 철학이 2만3천여 동료 근로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타지로 향하는 노모의 안타까움이 석양 속에 밀물지던 예천에서 1980년 2월 구미 금성사(현 LG 전자)로 거처를 옮긴 석 위원장은 늘 배려의 삶을 실천해 왔다. 그 철학은 구미라는 공동체에 희망과 꿈을 심어주었고, 가뭄 든 이랑에 빗물이 스며들 듯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음지에 따스하고 때로는 시원한 사랑의 씨를 파종케 했다.
지난 2012년 7월, G디스플레이 이사회는 고부가가치 중소형 LCD 시장에 대비, 약 1조2008억 원을 투자해 구미 P61공장 내 6세대(1500㎜×1850㎜) 라인 일부를 LTPS(저온폴리실리콘) 라인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경영주의 선택이었다. 어마어마한 투자를 구미로 견인한 이면에는 “종가집인 구미”유치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 온 석호진 노조위원장의 피와 땀이 녹아들어 있었다.
석 위원장의 구미사랑 정신에 힘입어 구미유치를 견인한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구미 사업장에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키로 한 금액이 무려 6조여원에 이를 정도이니 말이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윤 추구에 공유의 철학이 살아있을 때 기업은 사랑받는 기업이 된다. LG 디스플레이가 구미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있게 한 숨은 주인공도 바로 석위원장이다.
시의원이던 2007년 2월, 의정활동비 전액을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석 위원장은 의정활동 과정에서도 효율성과 약자를 우선하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지론을 일관되게 가시화 시켰다.
“기업이 잘되려면 노사분규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미시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결혼 이민자 지원 예산은 구미시 전체 예산의 0.5%를 조금 웃돌 정도다.”라고 역설했던 발언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윤 가치의 공유, 약자 우선의 삶을 살아 온 석위원장은 늘 양지보다 음지의 삶을 보듬어 안는 가치관을 실천해 왔다.
사랑의 집수리 봉사,나눔캠페인 이웃돕기,지역별 경로잔치, 어린이재단 결식아동돕기, 각종 장학금 지원, 장수사진 ,나눔과 배풂의 고리맺기 운동 동참, 농촌 지원 및 일손 돕기, 시설수용 학생 지원, 민간단체 봉사활동 지원,불우이웃 돕기 등은 석위원장을 뒤따라다니는 수식어일 정도다.
<약력>
▶예천 출생 ▶1980년 2월 금성사 (현 LG 전자) 입사 ▶ LG 디스플레이 LCD 노조지부장 ▶ 구미시의회▶ LG 디스플레이 노조지부장▶석탑산업 훈장▶LG디스플레이 노조 위원장 ▶ 한국 노총 전국 금속연맹 수석부위원장 ▶석탑산업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