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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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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구미시 장천면 오상중학교를 품어안은 덕무봉에는 겨울바람이 남아 있는 이파리를 마저 떨궈내고 있었다. 이미 명을 다한 잎새에게 무슨 미련이 남아 있었길래 서둘러 가자며, 옷깃을 부여잡은 한기 앞에 여태껏 버티고 서 있던 것일까.
그 사잇길로 허허로운 무념무상의 배에 한 세월을 의탁한 허주가 간간이 떨어져 내리는 잎새를 보듬어 안고 마지막 세상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맨 앞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리의 슬픔을 온몸으로 안은 이가 끄억끄억 는물을 토해냈다. 2004년 12월 18일, 김태환 국회의원은 형, 허주가 망망한 하늘을 품어안고 영원히 침묵해야만 할 그 대자연 속에 오래 오래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은 멈춰서는 일이 없다. 숱한 인생사와 정치사들이 질곡을 굽이쳐 흘렀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은 허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세월이 어느 덧 세상도 변한다는 10년을 흐르고 또 흘렀다.
허주 김윤환 대표 10주기 추도식이 엄수된 2013년 12월 15일 오전, 김태환 의원은 그의 형 허주의 1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르며 복받치는 심경을 억누르지 못해 몇 번이나 추도사 곳곳마다 애환의 서정을 남겼고, 결국에는 복받치는 가슴을 가누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날, 영원히 침묵의 길을 걸어간 하늘은 얼마나 맑던지, 8백여명의 추도객들은 저마다 눈시울 붉혀오는 가슴 깊은 심정 속으로 두손을 가져갔다.
세상길을 재촉하던 2003년 8월, 이국만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병석에 누운채 두손을 꼭 잡아쥐던 외롭고 고독한 형의 모습이 스쳤기 때문이리라, 2004년 12월 5일 오전 10시, 마저 못한 세상사를 유업으로 남긴 형이 그토록 그리움으로 물결쳐 흘러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그 눈물은,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8백여명의 지역주민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고, 이 나라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쓰고 있는 정객들에게는 부끄러움과 죄책의 채찍으로 다가왔다. 냉랭한 갈등의 정치세계를 오르내리며 정치 화합과 민족번영을 부르짖던 허주가 아니었던가.
영입한 이회창 총재가 정치운명을 뒤바꿔놓은 낙천장을 주었고, 결국 운명을 재촉하는 시련을 가져다 주었지만 세상의 종착역에서는 손 내미는 이 총재의 손을 따스하게 맞아주었을 만큼 결국 허주는 말 그대로 부대끼는 삶의 희노애락을 세상 밖에 부려놓던 빈 배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정객들은 조사를 통해 혹은 말없는 침묵의 일순일순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깊은 가슴으로 되돌아보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특히 박희태 한나라당 전대표,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 이철우 새누리당 경북도당 위원장, 주호영 새누리당 대구시당 위원장, 이해봉, 정경우, 신경식, 김세옥, 심학봉 국회의원과 장영철,정동윤, 이상배, 김기홍 전 국회의원 등은 허주의 세월을 따라가며 고개를 숙였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밖으로 밀려난 작금의 정치는 허주가 실천해 왔고, 갈망해 온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유진 구미시장, 박승호 포항시장, 김영식 금오공대 총장, 권오덕 구미경찰서장,김용창 구미 상공회의소 회장, 김호용 종친회장, 송요선 구미 폴리텍대 학장, 이재웅 전 경주부시장 등 주요 기관장들 역시 허주의 세월을 따라가며 눈물을 흘리는 김태환 의원의 가슴과 함께하면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허주와 김태환 의원의 눈물
세월은 흐르는 강물이다. 그 속에 무심한 낚시대를 드리우고 간간이 강물 속의 일족들을 낚아올리지만, 그 쾌감은 순간이며 찰라이다. 모든게 그렇다. 돌아보면 무상이다.그렇다.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 중에서 정치세계 만큼 무상한 서경과 서정이 또 있으랴. 1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필자는 고달프고 쓸쓸하게 돌아서던 허주 김윤환 대표의 뒷모습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16대 총선이 있던 2000년, 4월 선거일이 임박한 그 겨울 같은 봄날에 필자는 구미관광호텔에서 대면을 했다. 한나라당 후보 공천에서 낙천하자, 솟구쳐오르는 울분을 삭이며 창당한 민국당 간판을 앞세우고, 한나라당 후보와 힙겹게 맞서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총선 마지막 유세가 있던 선산초교 유세장에서 지역 여론이 보여 준 호응도는 예전 같지가 않았다. 세상은 무심했고 야박했다.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온 세월이 온기를 간간이 온기를 뿜어내는 그해 봄, 허주는 며칠 앞으로 다가올 16대 총선을 예감하는 듯 했다.“ 세상의 인심이 예전 같질 않아, 마음을 비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지역 기자들과 막걸리잔을 돌리며 지역의 내일을 논하던 늠름하고 자상하던 기상을 찾아볼 수 없던 당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소위 "2・18 공천파동"(일명 "학살공천" 혹은 "개혁공천")을 부르짖으면서 이총재를 영입하는데 가교역할을 한 실세 김윤환 전 의원을 하룻밤 사이에 낙천시켰다. 비극적인 역사가 밤에 이뤄진다는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3년 10월 28일 이 회창 총재는 "여러가지로 미안하다,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고, 병마와 싸우던 고독한 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점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허주는 그해 12월 15일 빈배에 몸을 실었다.
필자가 김태환 의원을 처음 만남 것은 2003년 가을이었다. 그해 8월 이역만리 로스엔젤레스로 달려가 병마와 싸우고 있던 허주를 만나고 온 직후 였다. “부족하지만 못다한 형님의 정치 유업을 물려받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어눌하지만 친근감 넘치는 표현이었지만, 그 속에는 결연함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결국 16대 총선이 실시된 2000년, 형 김윤환의원의 석패를 지켜보아야 했던 김태환 의원은 구미갑과 을구로 선거구가 분구된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중앙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탄핵열풍이 몰아치던 당시 선거에서 초반전에는 열린우리당 추병직 후보에게 밀렸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탄력을 얻은 김의원은 상대 후보를 여유있게 물리치면서 신승을 거뒀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4년 후 김의원에게 시련은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나라당 공천 발표가 막바지에 다다른 2008년 3월 중순, 김태환 의원은 장천의 모 음식점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떨리는 이맛살에는 걸어온 세월의 편린들이 가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형(허주 고 김윤환 의원)은 마지막 떠나시면서 이렇게 말했어. 공천을 받지 못하면 출마를 하지 말라고...”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혼미한 후보 공천 발표 전야, 누구보다도 형을 따르고 사랑했던 김 의원은 ‘공천의 회오리 속’에서 형의 추억을 붙들어 그 추억에다 자신을 의지하고 싶을 만큼 고독했던 것일까.
“형이 킹 메이커였다면, 나는 국무총리 메이커야”라고 농을 할 만큼 정치인생의 중심을 짙게 물들여 놓은 형 허주를 김 의원은 늘 추억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저녁 8시, 각 방송은 공천의 화약고인 영남지역 공천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었다. 우려했던 대로 친박계인 김태환 의원은 명단에 없었다.
이틀 뒤인 김 의원은 야간열차에 지친 몸을 싣고 구미로 낙향을 했고, 지역민심을 읽은 후 한나라당과 맞선 가운데 박대통령 생가에서 출마회견을 했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출마를 포기하라”던 형의 유고를 거역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을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던 분들이 공천을 받았다면, 출마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략공천 앞에서 굴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내건 구미을 민심이 저를 총선 현장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0여일 후 김 의원은 59.8%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이 됐다. 형인 허주가 남기고간 한을 푸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대중, 조병옥, 김동석 가문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부자(아버지와 두 아들) 3명이 국회의원을 지낸 기록을 갖고 있었다. 김태환 의원이 당선되는 그 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홍업은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있었고, 조병욱 전 의원의 아들 조순형 의원은 7선 의원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당선의 의미는 이렇게 다양했다.
형인 허주의 맺힌 눈물을 닦아준 김태환 의원에게 거는 구미시민들의 기대는 그만큼 남달랐다.그로부터 김의원에게는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2011년과 2013년, 내리 3년 동안 김태환 국회의원은 가뿐하게 3선의 능선을 뛰어넘었고,
18대 대선 기간 중에는 전국 곳곳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중앙위 위원들을 규합해 박근혜 후보에게 상당한 힘을 실리게 했다. 여기에다 역대 대선 중 처음으로 도입한 재외국민 투표의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간 김의원은 일본에서 일본통으로서 입지를 확인하면서 18대 대선 승리의 파워메이커 역할을 소화해 내기도 했다.
김의원이 갖고 있는 명함은 그가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를 증빙케 해 준다.
▶2011년 9월 새누리당 중앙위 의장 당선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선 3선 국회의원 ▶2012년 7월 국회 행정안정위 위원장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 파워 메이커▶2013년 1월 새누리당 중앙위 의장 연임▶ 2013년 2월 5일 대한 태권도 협회 회장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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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태 전 대표 |
■눈물의 힘으로 따스한 세상을 향해
김태환 의원은 눈물이 많다. 2003년 12월 허주가 세상을 하직하던 날 장천면 덕무봉을 오르면서 눈시울을 붉힌 김의원은 지난 2008년 친박 무소속 후보로 나선 자신에게 뜨거운 가슴을 보내는 지지자들에게 순박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 15일에는 성공한 정치 무대에서 형 허주를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에게는 많은 과제가 부여되고 있다. 형 허주가 늘 갈망하던 정치권의 화합과 민족번영에의 기여가 그것이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민들에게 따스한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두 번째 풀어야 할 과제이다.
특히 세상은 그 눈물이 김의원으로 하여금 농민과 서민, 근로자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길을 닦게 하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공인 김의원의 눈물은 개인의 눈물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함께하고 있는 또 다른 눈물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허주님이 그립습니다. 정말 그 때 우리들 생각을 잘했어야 하는데
떠나고 나니 그리워지네요
영원히 영면하소서 님이여
12/16 20:02 삭제
너무나 어렵네요 그 눈물로 우리 서민들 더 감싸안아 주시실
12/16 20:00 삭제
허주, 그대로 그분만한 분이 안계셔
너무 그립네여
12/16 20:00 삭제
그래요 구구절절
한폭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김태환 의원님 열심히 사시는 모습, 더 보고 싶어요
12/16 19:59 삭제
참 잘쓰셨네요 사실적이고 감동도 있고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12/16 17:07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