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모 방송국에서 예산에 관한 프로그램에 숟가락하나 놓고는 집으로 가는 길, 늦은 저녁 대구역 주변의 싸늘한 추위가 무섭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힘들여 민영화를 막아내고자 하는 이들의 아픔을 아는지 선로를 따라 부는 바람의 냉랭함이 뼈를 파고듭니다.
그런데 ‘예수천당’ 이란 자기의 몸체만 한 입간판을 걸고는 ‘밋~쉽니까’하면서 외쳐대는 모습이란 우습기도하면서도 일견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라 갈파하던 시인을 떠올리면서요.
페이스 북에는 스님과 젊은 시의원이 제기한 구미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 예산지원 문제가 뜨겁습니다.
스님은 (나중에 오류를 수정했지만) 구미에서 교인이 가장 많은 교회가 100주년이 되어 기념관을 만드는데 억대의 시비가 책정되어 통과되었음을 강하게 책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의 (시장의 선거용, 선심성 예산이라는)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잘못 제기한 내용에 대해 수정하면서도 성탄절의 시청 광장 및 주변의 장식이 초파일의 그것과 다르다면서 종교적인 편파성에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30개가 넘는 덧글은 종교전쟁(?)으로 보기에 충분히 감정 대립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데 모 시의원은 같은 문제에 대해 예산안의 제안내용을 공개하면서 구미에 있는 기독교 기념관 건립을 위해 시비의 지원은 특정 종교의 전파를 위한 예산책정 불가원칙을 들고, 사찰등과의 비교를 통하여 그릇된 예산 계획을 지적하면서도 그럼에도 통과한 것에 대하여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00년을 수십 년 전에 지났으니 우리지역에서 100주년을 맞는 교회가 10여개 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도 아니고, 기독교를 국교로 하지 않는 입장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기념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예산안을 제안한 것은 모순된 일입니다.
더구나 구미가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역사에서나 독립운동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것도 아니며, 단순히 일정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시설을 만드는데 시비를 지원한다는 데 동의하고 결정해준 시의회 예결위의 분명 잘못된 발상이며 판단입니다.
동시에 이 예산안의 내용을 적시하지 않은 채 종교적인 차별이니 선거에서의 유불리에 따른 지원이니 하여 종교적인 논쟁으로 문제를 비화한 것은 더더욱 잘못된 판단이며 진행입니다.
구미시가 오얏나무 아래 갓 끈을 매는 것처럼 보이는 예산을 제안한 것이 문제를 만든 장본인으로 보고 세금을 내는 시민의 이름으로 우선 책망합니다.
그러나 예산안은 예산의 문제로 다루어야 할 것이고 그런 면에서 시의원이 지적한 선교목적의 시설에 대한 지원불가를 제기한 것은 정당함과(다만 타 종교의 그것과 비교한 것은 까지는 아님), 불요불급한 예산을 통과시킨 시의회는 시설이 종교적인 선교와는 무관함과 혹 제기되는 선거용 선심성 예산이라는 의혹에 대하여는 주민들에게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염려하기는 이 문제를 종교적인 차별이나 논쟁으로 비화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동조하신 분들의 감정적인 반발과 대응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타 종교에 대한 종교인들의 행위로는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바른 예산과 올바른 시의 행정을 위한 뜨거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그러나 성탄절을 며칠 앞에 두고 시청 앞의 호화찬란함은 아기 예수에게는 매우 섭섭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아마 그때 그분은 밀양에 계실 것 같습니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이 칠불쇄법으로 가르치신 첫째 ‘모여서 화합하고 옳은 일을 의논하는 것’을 바로 어기는 것이 되어 모두에게 선생되어야 할 자의 모습이 추해지는, 그리하여 ‘형용모순’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201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