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한창 무더운 여름철이면 우리 개구쟁이들은 ‘봇도랑’으로 모인다. 마땅한 놀이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그곳이 유일한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면소재지 외곽에 위치한 봇도랑은 금오산 계곡을 타고 흐르던 물이 바위 틈새로 스며들어 십리 이상을 땅속으로 달리다가 이곳에서 다시 지상으로 솟아올라 보(洑)를 만들었고 그 보의 물이 흐르도록 도량이 형성된 곳이다. 그래서 보의 도랑 즉 봇도랑으로 불렀다.
도랑의 길이는 약 50미터, 폭이 10미터 가까이 되었고 맨 위쪽은 깊이가 2미터 정도, 맨 아래쪽은 1미터, 중간지점은 1.5미터정도 되었다. 따라서 5,6학년인 고학년은 제일 위쪽 3,4학년은 중간, 제일 수심이 낮은 곳은 1,2학년 차지가 되었다.
6학년인 내가 노는 곳에 5학년짜리 후배 한명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면내 요지에서 사진관을 운영했으며 관내에서 유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후배의 이름은 백흥기라는 친구로 키는 작지만 달리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했다. 학과 공부도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는 부모덕에 항상 옷도 잘 입고 다녔다. 당시에 딴 아이들은 무명 적삼에 무명 바지를 입고 다녔지만 그는 기지 양복을 있었다. 우리들이 책보자기를 허리에 메고 다닐 때 그는 란토셀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봇도랑에 수영하러 올 때 우리는 사각 무명 팬티를 입고 왔지만 그는 메리야스 삼각팬티를 입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하여간 그때는 팬티만 걸치고 수영하러 갔고 물에 들어 갈 땐 팬티와 신발을 함께 벗어놓고 알몸으로 들어갔다. 수영복이라고는 없던 시절이라 팬티를 입고 그냥 들어가면 물어 젖어 축축한 걸 다시 입고 집으로 갈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백흥기가 삼각팬티를 입고 봇도랑에 나타났다. 나와 동급생인 점용이는 우리가 입고 있는 헐렁한 사각 광목 팬티보다 몸에 착 붙어 볼륨 있는 메리야스 삼각팬티를 입은 그가 그렇게 부러웠다.
물가 모래밭을 한 바퀴 휙 돌고 간 흥기는 신발을 벗고 팬티를 벗어 그 위에 두어 번 접어 올려놓고는 ‘점버덩’하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 새끼 쬐그만한 놈이 수영도 잘 하네”하고 점용이가 이죽거렸다. 그때 나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점용아, 저 놈 골탕 좀 먹이자!”
“어떻게”
“저 놈 팬티를 감추자.”
나와 점용이는 흥기가 딴 애들과 물놀이에 정신이 없을 때 그의 팬티를 슬쩍해와 뚝 넘어 콩밭에 숨겼다. 긴 여름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봇도랑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와 점용이는 흥기보다 좀 빨리 물에서 나와 멀찍이 떨어진 뚝 아래서 그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흥기도 물에서 나와 모래밭에서 몇 번 펄쩍 펄쩍 뛰며 물기를 털어 내고서는 바로 옷을 벗어 놓은 곳으로 갔다. 그런데 신발은 있고 팬티가 없는 것이다 그는 고추를 내놓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발이 달린 팬티가 콩밭으로 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때 점용이와 나는 숨어서 킥킥거리며 얼마나 고소해 했는지 모른다. 결국 옷을 찾지 못한 그는 비상조치로 맨 마지막으로 귀가하는 3학년 하급생을 붙들고는 자기 집에 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 같았다. 한참 후 흥기 어머니가 멀리서 나타나는 걸 보고 점용이와 나는 꽁지 빠지게 집으로 도망쳤다. 벌써 55년 세월이 흐른 이야기다. 지금 내 나이 68세 흥기의 나이는 67세 점용이가 세상을 뜬지는 숱한 세월이 지났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남은 우릴 보고 노인이라 한다.
모든 것을 털고 비울 때다. 55년 전, 나의 장난 아닌 장난으로 집에 가지도 못하고 어두워지는 봇도랑의 모래밭을 헤매고 다녔던 흥기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며 이실직고 해야겠다.
“그 때 자네 팬티는 내가 콩밭에 숨겼었네.”
그래야 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