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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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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으로 유턴하는 기업에 재정을 지원하겠다는데 지방으로 오겠다는 기업이 있겠나. 오히려 지방에 있는 기업이 수도권으로 가려고 하지 않겠나.”
“입주했을 경우 발생하는 지가 상승 효과 때문이라도 기업들이 수도권으로 가려고 하질 않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 규제를 올해 안에 과감하게 풀겠다고 한데 이어 하루 뒤인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수도권 규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로 간다는 얘기가 많다. 올해 안에 해결하겠다”고 밝히면서 구미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그렇잖아도 구미시민들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풀리지 않는 경제 상황 때문에 상실감의 중심에 서 있어 왔다. 이러한 여론을 체감한 구미시의회 의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미 정치권과 시가 힘을 한데 모아 청와대나 중앙부처, 유수의 기업을 방문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구미경제 회생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그 이면에는 “중소상공인들을 만나면 구미제조업은 이제 끝났다고 하고, 자영업자와 시민들을 만나면 어렵고 힘들어 버티기 힘들다. LG와 삼성이 빠져나가면 구미제조업이 어떻게 버티겠느냐”는 비등한 시민적 여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구미 위기론이 득세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구미방문을 학수고대했다. “동구 밖에 앉아 읍내 장터로 간 어머니가 사 올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 자녀의 심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17일, 박 대통령이 경북창조 경제 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를 방문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다녀 간 후 온 많은 시민들은 “ 박대통령이 구미에 주고 간 선물이 무엇이냐”며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어떤 대답도 내놓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구미4공단, 이명박 대통령의 구미5공단 지정 승인이라는 선물에 필적할 그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 방문에 따른 구미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뒤바뀌던 상황 속에서 2014년 구미공단 수출액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초 2014년 구미공단 수출목표액은 380억달러였다, 하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목표액에 비해 11%가 감소한 325억달러 였고, 무역수지 역시 전년도 보다 20% 감소한 195억달러에 그쳤다. 인구 역시 사망자수보다 출생자수가 세배 이상 많은 젊은 도시 구미특성에 힘입은 892명에 불과했다.
경기침체가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 수출액은 전년도의 5천597억달러 보다 134억달러가 늘어난 5천731억달러 였고, 무역수지 역시 전년도의 440억달러보다 34억이 늘어난 474억 달러였다.침체 일로의 구미공단 경제를 우려해 온 시민여론이 지표를 통해 그대로 표출되는 순간이었다.
구미시민은 절망적일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게 그 종착점이 아니었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 규제를 올해 안에 과감하게 풀겠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최경환 부총리가 수도권 규제 완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내륙최대의 구미공단에 직격탄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구미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 힘입어 1973년11월, 구미1공단 조성사업이 완료되는 것을 시작으로 2,3공단으로 외연과 내연을 확장해가면서 한국 경제 발전을 견인해 온 구미공단은 IMF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하지만 2005년부터 몰아닥친 정부차원의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은 구미공단의 앞길을 가로막기 일쑤였다.그 때마다 구미시와 경북도, 경북정치권이 적극적 대응에 나서면서 일시적인 방어를 하면서 시간을 끌어오곤 했다.
수도권 규제완화가 정부 차원에서 공식 논의된 것은 2005년 11월이었다.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 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을 공식화했다. 구미로서는 위기였다. 하지만 그해 11월 17일, 정부와 여당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발한 구미시민을 비롯한 경북도민들은 구미공단 운동장에 집결,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졌다.
궐기대회를 주도한 김관용 시장 (현 경북도지사)은 대회가 있은 후 4일 뒤인 2005년 11월21일, 가산-도개 국도 개설공사에 참석한 수도권 규제완화의 주무부처 장인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야 했다.
“수도권으로 공장을 가지 말라고 외쳐도 소용 없다. 그 이전에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하고,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었어야 한다. 일류대를 나온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방으로 오겠느냐. 교육, 문화, 시설등 주변여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차기시장은 이러한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당시 김 시장은 경운대에 마련된 오찬장에도 불참할 만큼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다.그로부터 10년 후인 2015년 1월, 다시 정부차원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를 공식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 안에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박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함께 “수도권 규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로 간다는 얘기가 많다. 올해 안에 해결하겠다”고 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선 지역균형 발전과 후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비수도권의 외침이 결국 메아리에 그치고 만 것이다.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 십년창하의 세월 속에서 비수도권은 발버둥을 쳤지만, 돌아온 것은 결국 지역균형 발전이 완성되지 않는 가운데 추진하려는 정부 차원의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인 것이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가 밝힌 수도권 규제 완화의 주요 핵심이 지난 해 말 정부의 규제 기요탄(단두대)민관 합동 회의에서 논의된 ▼수도권 유턴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허용▼항만 및 공항 배후지 개발 제한 완화▼자연 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 입지규제 완화 ▼경제 자유구역내 국내기업 공장 총량제 저굥 배제 등이라는 점에서 비수도권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비수도권 자극해 온 정부차원의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은 지난 2005년 11월,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비수도권을 괴롭혀 온 최대 사안이었다. 이 당시부터 비수도권은 지역균형 발전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가운데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지방을 살리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라고 요구해 왔다.
게임도 안되는 중량급 대 경량급 싸움이 아닌, 중량급 대 중량급 대결 환경을 조성해야 만 결과적으로 국가 균형발전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 핵심에는 “ 수도권 규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 일류대를 나온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방으로 오겠느냐. 교육, 문화, 시설등 주변여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식의 수도권 편애 의식이 수도권 규제 완화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요지이기도 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의 수도권 규제 완화 시도는 일관된 흐름을 형성해 왔다. 2008년 7월21일에는 5+2 광역 경제권을 발표했다. 수도권에 지방과 동등하게 기업입지 제도를 완화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9월 25일에는 국가 균형 발전 특별법을 전면 개정하는 내용의 지역발전 특별법을 입법예고했으며, 10월30일에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국토이용 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기업의 수도권 산업단지 내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고, 서울에 첨단산업단지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2009년 3월27일에는 수도권 보전지역 내 기존 공장 증설을 허용하고,산업단지 활성화 등 2년간 한시적 규제 유예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이어 5월8일에는 2020년 수도권 광역 도시 계획을 변경, 2020년까지 수도권 내 그린벨트 14평방 키로미터를 해제키로 했다.이러한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은 2011년 들어서면서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또 2011년 1월8일에는 수도권 과밀억제를 ‘수도권 경쟁력 강화 및 계획 성장관리’로 수정한 제4차 국토종합 수정 계획(2011-2020)울 국무회의를 통해 통과시켰고, 1월 24일에는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회담을 통해 ‘기업의 R&D 센터 서울 및 수도권 설립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 3월2일에는 첨단업종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결국 3월30일까지 의견을 반영한 제2차 입법예고를 마쳤으나, 경북을 비롯한 비 수도권의 강력 반발로 무위에 그쳐야 했다.
박근혜 정부들어서도 수도권 규제완화 논의는 구미를 비롯한 비수도권을 괴롭혔다.
지난 2013년 4월28일, 당시 현오석 경제 부총리는 경기도 시화국가 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인 4월29일,주무부처의 장인 윤상직 산업 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산업 통상자원위원회에 출석, 수도권 규제완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경제부총리와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또 경제부총리는 그해 11월 21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비수도권의 강력 반발을 의식, “수도권 규제가 맞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제를 풀 때는 다른 지역과의 평등성, 수도권 내에서의 불평등성등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당시 현 부총리의 발언은 향후 수도권 규제완화를 기정사실화한다는 속 마음을 내면에 감췄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12월28일, 민관합동회의가 자연 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을 위한 입지 규제 완화등에 대해 추가 논의하기로 하면서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정리됐음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우려가 1월12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과 1월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
수도권 규제완화는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국가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비수도권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비수도권은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 후에 규제를 완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전국 14개 도지사와 지역대표들로 구성된 지역 균형발전 발전협의체(공동회장 최문순 강원도 지사, 주호영 국회의원)가 수도권 규제 완화에 앞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을 위한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협의체는 또 지난해 12월 28일 규제 기요틴 민관 합동 회의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한 자연 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을 위한 입지규제 완화 등 4개 과제를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경북출신 대통령이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경북지역 정치권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반격하는 식의 대응논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수도권 규제완화를 해서는 안되고, 또 시기 상조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 개발을 통한 합리적인 대응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또 경북지역의 특성상, 정치권이 행동으로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시민, 사회단체의 역할론에 무게를 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협의체 기구인 구미사랑시민회의는 매 사안마다 입을 다무는 등 제 역할을 못하면서 시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
■6공단 성격의 구미문화 관광단지를 조성하자
수도권 규제완화는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예고된 악연이다. 따라서 두고두고 반대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한다면 대응방법이 도마 위에 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손에는 반대의 깃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신성장 동력의 금맥을 캐는 삽을 들 필요가 있는 만큼 그 대안으로 6공단 성격의 구미문화 관광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박대통령 생가, 새마을 테마파크, 박대통령 유물 전시관과 후삼국 통일의 현장과 도리사 등을 연결하는 체류형 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할 경우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 유치를 통한 부가 특수와 함께 역외자금 유출 방지, 기업유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주여건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례로 동두천시는 지난 해 1월9일, ㈜드림우드와 한류문화관광단지 조성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상호 협력 의향서 체결식을 가졌다.한류문화관광단지 조성사업은 약 20만평 규모로 K-pop 공연장, 촬영소, 컨벤션센터 등 6개의 테마에다 약 1,8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추진할 계획이다.
또 경기 안성은 지난 1월, 죽주산성을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키로 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인 죽주 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곳으로 왜군에게 내주고 말았으나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해 더 이상 왜군이 용인과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고 할 만큼 군사전략적인 요새였다.이러한 역사적 현장을 문화 관광상품화 하자는 것이다.
구미지역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과 연계해 체류형 문화관광단지 조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이 있다. 그곳이 바로 후삼국 통일의 현장인 일선교- 관심-괴평- 지산- 신평 앞들이다.
김관용 지사 역시 올 초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미시, 시의회, 구미출신 도의원들과 머리를 맞대 후삼국 통일의 현장을 재현하는 사업을 펼칠 경우 도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후삼국 통일의 현장
굴뚝산업과 굴뚝없는 산업을 조화시키는 것이 구미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산업화의 현장인 구미에는 여타 지자체들이 부러워하는 문화유산이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들어 후삼국 통일의 현장인 지산앞들인 발갱이들 일대를 대상으로 한 후삼국 통일의 현장을 문화 관광 상품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미, 삼국통일의 현장인 논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토축제인 60년 전통의 백제문화제 일원으로 참여해 황산벌 전투를 재현하면서 관광가치를 재고시키고 있다.
따라서 936년, 발갱이들이 후삼국 통일의 현장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왕건이 견훤(아들 신검)과 대적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했던 해평면 냉산(태조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연안부터 고아읍 관심리, 괴평리의 앞들과 지산동 앞들을 대상으로 후삼국 통일의 길을 스토리텔링화 한 가운데 만들고, 후삼국 통일의 현장을 재현하는 내용의 후삼국 통일문화제를 탄생시킬 경우 막대한 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특히 낙동강변을 대상으로 시가 추진하고 있는 <낙동강 7景6樂 리버사이드 프로젝트>와 접목할 경우 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호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광산업은 대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것 이상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국의 도시들은 보여주고 있다. 실례로 괴테의 도시 프랑크 푸르트는 괴테의 생가 문화를 포장해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한 도시가 먹고사는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 문화 유산이 전무하다시피한 미국 뉴욕은 로마나 파리처럼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스위스처럼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아니지만 없는 문화유산을 개발하고 이를 포장해 상품화 함으로써 4000만명의 내국인과 10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936년 후삼국 통일을 이루기까지 선산읍 낙동강변과 고아읍, 지산동 앞들에서는 어떤 전투가 전개되었을까.
지산동 앞들은 발갱이들이라고 불린다. 이 명칭의 시초는 발검(拔劍)들이다.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는 의미가 바로 발검이다. 고서에 따르면 935년 지금의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연안에 있던 견훤을 무찌른 왕건은 마지막까지 항전하는 견훤의 아들 신검을 쫓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936년 지산동 앞들에서 신검을 격퇴시켰다.
칼집에서 칼을 뽑은 (발검 拔劍) 왕건이 신검을 격퇴시킨 지산동 앞들인 발갱이들은 바로 후삼국 통일의 현장인 것이다.
▶후삼국 전투
918년 궁예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고 권력을 쥔 왕건은 927년,견훤과의 팔공산 동오수 전투 (桐藪동수전쟁)에서 대패한 후 선산지역으로 후퇴해야 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것은 8년 후인 935년이었다. 왕건은 그동안 지금의 선산인 당시 일선군 냉산(태조산)에 숭신산성 (崇信山城)을 쌓고, 그 아래의 낙산동 일대에 군창( 軍倉)을 일곱 개나 지어 군량을 비축하는 등 장기전을 마무리했다. 낙산동 일대를 칠창리(七倉里)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열을 가다듬은 왕건은 그해 선산읍 생곡리 앞〔지금의 일선교 근처, 속칭 어성정 禦城亭〕 태조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935년 선산 전투는 8년전 분루를 삼켜야 했던 팔공산 동오수 전투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선산에서 대승을 한 왕건은 이듬해인 936년 여세를 몰아 견훤의 아들 신검과 고아읍 관심리 앞들에서 제1차 결전에 들어갔다. 당시 왕건이 신검을 막기 위해 주둔한 관심(官心)평야는 어검(禦劒)평야, 지금은 어갱이들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아울러 괴평동 앞뜰에 진을 쳤던 신검의 진지를 왕건이 점령한 후부터 이곳은 점검(占劒)평야 즉 점갱이들이라고 불렸다.
어검들 전투에서 패배한 신검은 936년 인접해 있는 지산동 앞들과 사기점(신평2동)으로 피신했고, 이곳에 미리 도착해 진을 치고 있던 왕건은 신검을 사로잡고 그를 굴복시켰다. 결국 이곳은 당시 칼집에서 칼을 뽑고 신검을 격퇴시켰다는 의미에서 발검(拔劍)들이라고 했고, 이후 발갱이들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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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하나어없는 촌구석에 인류대학나온애들이 뭐하러 구미에올까 그들은 대구도 촌동네라고 하는데 구미는 머슴들이 사는동네다 그러니 그들이 안오지 우리가 머슴이 되는냐 아니냐는 우리손에 달렸다
01/22 17:16 삭제
좋은 내용입니다. 이제 구미도 대기업 유치도 좋지만
문화도시로 조금씩 변모하여도 정말 좋은듯 합니다.
내용보니 참으로 기대되고 설레입니다.... 희망이 드는군요
01/22 10:36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