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사회일반

분석>박정희 대통령의 형, 박상희 선생은 지고지순한 독립운동가

김경홍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01일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의 부친
ⓒ 경북문화신문

 

 

구미현대 정치가 한국 현대사 중심축의 한 줄기로 흘러들 수 있는 것은 구미가 박정희 대통령을 태생시킨 둥지였는데다 세상으로 날아오른 애향심이 그 둥지를 늘 따스하게 보듬어 안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킹 메이커 김윤환 전 의원은 이후 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정계활동의 물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정회 의원이라는 월척을 건져올리면서 현대정치사에 이름을 올렸다.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9선 국회의원(6~10대, 13~16대), 두 차례 국무총리,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3김(金) 시대'의 한 축을 이룬 김종필 전 총리가 현대 정치사에 남긴 또렷한 족적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애정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였다.

 

▶처가집이 구미인 김종필 전 총리

“ 2월23일, 오후 7시경 고향시장으로서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님 빈소를 조문했습니다”

지난 달 23일 오후, 남유진 구미시장은 페이스북에 이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2015년 2월 21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고 박영옥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 선생의 큰 딸로서 고향이 구미였다.

원남동 속칭 각산에 살았던 박 여사는 고독한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9년 생이었던 박여사가 아버지 박상희 선생과 이별했던 것은 1946년, 그의 나이 17세였고, 남동생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탄생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개월 후인1947년 1월이었다. 5명의 동생을 둔 큰 딸로서 어깨가 무겁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박 여사는 그러나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모진 세파를 딛고 해방 직전인 1944년 구미초등학교(24회)를 마쳤다. 이후 그녀는 숙명여대 국문학과 졸업과 동시에 모교인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0년 김종필 전 총리를 처음 만났다.

중매를 선 이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국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당시 박정희 소령은 관사에서 짐종필 당시 중위와 국수를 먹다가 그곳을 찾았던 박영옥 여사와 처음 만나게 된다.그로부터 얼마후 6.25 전쟁이 터지자, 김 전 총리가 말라리아를 앓던 박여사에게 의사를 구해주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바스킷과 빵으로 미국 야전식을 대접하면서 첫사랑의 인연이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 데리고 갈 생각이 없나.지내보긴 뭘 지내봐,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라며 결혼을 권유했고, 1년 후인 1951년 대구의 한 교회에서 백년의 동행을 가약했다.

▶박영옥 여사의 부친 박상희 선생

박정희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 선생의 발자취는 좌우 이념의 대립 역사 속에서 때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어께를 무겁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상희 선생이 남긴 족적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63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은 동분서주하시면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수많은 옥고를 치루셨고, 돌아가시던 1946년 10월5일에도 시위대에 둘러쌓인 경찰관이 위태롭다는 전언을 듣고 경찰관을 구하러 가셨다가 변을 당하셨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좌익이니, 우익이니, 공산활동을 했느니 하는 부당한 평가에 시달리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별세하신지 60년이 지나도록 묘비하나 없이 싸늘한 땅에 누워계셨다”

2010년 7월15일 오전 11시, 박상희 선생 추모식 제막식에서 당시 박준홍 유가족 대표는 하염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박준홍 대표는 이어 “18년 전인 지난 1992년 11월 19일, 이곳으로 이장할 때도 비석을 세울 것을 신중하게 고려했으나, 가족들이 간단하게 세우는 그런 비석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더욱 초라할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날을 보내왔다”고 술회한 후 “몇몇 분들이 아버님의 공적을 인정하고, 국가에 서훈을 제청할 움직임과 함께 뜻있는 시민들의 모금을 해서라도 비석하나 없이 쓸쓸하게 묻힌 아버님의 추모비를 세워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추모비 제막식을 갖게 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박상희 선생을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1905년 8월 약목면에서 태어나 1914년 상모동으로 이사 온 후 구미에서 독립운동을 한 박 선생은 특히 20대 초반, 선산 청년 동맹을 결성, 선산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항일 좌우 합작 신간회 선산지회 결성과 또 다른 독립운동을 한 이유로 수차례 옥고를 치룬 선생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지국장등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박선생은 선산군 인민위원회와 민족주의 민족전선 선산군 지부를 결성, 분단없는 민족국가 건설에 매진했는가 하면, 미군정의 강재 공출로 국민들이 굶주림에 항거하면서 대구에서 시작된 1946년 10월의 민중항쟁이 구미로 확산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서 활동을 하면서 경찰을 보호하고 평화 협상 노선을 견지했다.

당시 추모비 제막식에서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은 “ 그해 10월 5일, 경찰과 주민간의 중재를 마치고 귀가 중 경찰의 오인 총격으로 향년 마흔 둘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흔희 선생을 좌익 독립운동가로 오인하지만, 선생은 1931년 개량주의 사회 운동인 구미소비조합 이사로 활동하셨고, 부인인 조귀분 여사도 여성단체인 근우회 김천지회장 경 중앙부회장으로서 야학 학교 교사를 하셨다”고 설명했다.

조국장은 또 “호방한 성품의 선생은 특정한 노선이나 특정단체에 편향됨이 없이 폭넓게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론 편향적이 아니었던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는 조봉암 선생의 묘비명에 씌여진 것처럼 선생의 일념 또한 이러한 민족독립에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형이면서 박영옥 여사의 부친인 박상희 선생은 이처럼 민주주의와 지역 사랑의 외길 인생, 독립운동가로서 재조명 되고 있다.

▶박영옥 여사의 남동생, 박준홍

박상희 선생의 유일한 아들이면서 박영옥 여사의 동생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구미 지역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996년 실시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상대는 사촌형인 다섯 살 위의 박재홍 전 의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선거에서 박 전 회장은 42%의 득표율에 머물며 2위로 낙선해야 했다.

이어 제1회 지방선거 경북지사 선거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으나 3위인 27.7%로 낙선했으며, 2004년 제17대 구미총선에도 자민련후보로 출마했으나 12.4%를 획득하며 4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2010년 구미지방선거를 앞두고 미래희망연대와 함께 친박연합을 창당한 박 전회장은 구미에서 4명의 시의원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인생무상

구미가 고향인 박영옥 여사의 일대기를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구미초등학교 1년 후배인 박병천 옹(25회)은 박 여사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일대기를 전해들을 수는 없었다.

박여사가 86세를 일기로 영면했으니, 유유히 흘러가는 삶의 세월이 박여사와 한때의 삻을 살았던 인연들을 온전케 놔두진 않았으리라.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투병하다 2014년 다시 척추 협착증과 오도암과 투병하다 2015년 2월 12일, 숙환으로 별세한 박영옥 여사.

2월25일 오전 6시 30분, 발인이 시작되자 김 전총리는 침통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고개를 떨궜다.

세월은 부와 권력도 비켜가지 않는 법이었다.

<김경홍 기자>

무단전제▪복재 금지- 경북문화신문, 경북타임즈

 



김경홍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01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구미시, `휴머노이드 로봇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박정희 대통령 고향 구미, 영화 `암살자(들)` 역사 왜곡 논란 확산..
인사]구미시 10월 1일자..
가을의 문턱, 구미 예술로 물들다...금오예술제 2일 개막..
국립금오공대, ‘AI중심대학·AX대학원’ 모두 선정..
공연]신카이마코토 하이라이트 필름콘서트..
원평동 상생플랫폼 7층에 `구미시 여성커뮤니티센터` 개관..
학서지 생태공원 같이 걸어요!..
구미시 자살예방사업 `우수기관` 선정...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상주시, 2027 곶감축제...1월 22~24일 개최 결정..
최신댓글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기사내용의 접수 일정 오타있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오피니언
지역신문은 단순히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전달하.. 
병원 양성자치료센터를 찾아갔다. 의사가 내 병.. 
10월의 첫날이다. 낮의 더위가 다소 남아 있.. 
어스름 내린 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선다. 불 .. 
여론의 광장
방통대 중문과 한시 모임 ‘불역시호’, 구미서 여름 캠프 개최..  
LG두드림봉사단, 취약계층 1인 가구 위해 `보람찬 한 끼` 나눔..  
국립금오공대, 집단연구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선정..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