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고

시민기고]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27일
ⓒ 경북문화신문
큰딸아이가 가까이 사는 탓에 자연스럽게 손자 녀석을 맡게 되었다. 활동량 많은 다섯 살 남자 꼬마 뒤를 쫓아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이를 보는 것은 살림살이하기보다 훨씬 힘이 든다. 아이를 한참 보고 나면 가끔씩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남편과 아이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고기를 먹으라고 채근한다. 다시 힘을 내려면 고기밖에는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나 역시 그러겠노라고 순순히 따른다.
 
어느새 기력 회복에는 고기가 정답이 되었다. 어디 우리뿐이랴, 기력이 쇠할 때면 너도나도 고기를 찾는다. 암묵적으로 힘의 근원은 고기라고 모두가 합의한 듯하다. 고기를 먹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인다는 사람도 있고, 귀가 뻥 뚫린다는 사람도 있다.

유난히 고기반찬에 분주하게 젓가락이 오갔던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습관처럼 책상에 앉았다. 평소에 보이지도 않았던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책꽂이에서 마치 볼록 렌즈처럼 다가온다. 나를 비난하는 것인가? 조금 찔린다. 오래전 읽다가 너무 음산해서 중간에 멈추었던 책, 갑자기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채식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때마침 무슨 이유에서인지, 딸과 사위가 언젠가는 육식을 끊고 비건이 되겠다고 심각하게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채식주의란 무엇일까. 그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육식 문화에서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다.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로 인한 세상의 야릇한 시선은 피할 수 없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수數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는 어쩔 수 없이 별난 인간으로 취급된다. 다수에 의해 만들어지고 정의되는 ‘정상’,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비정상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과 문학은 다수에 의해 규정된 정상이 오히려 비정상임을 고발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같은 톤으로 ‘가짜 정상’에 도전한다. 비정상은 정상을 만날 때 가장 두려운 법, 그래서 현실은 정상과의 조우를 피하려고 겹겹이 장벽을 쌓아 놓는다.

가짜 정상에 중독된 보통 사람들은 장벽을 넘을 수도 없고 넘을 생각도 없다. 세상에 비정상의 울타리를 넘어 정상이 되는 것처럼 두려운 게 있을까. 다수가 가는 길이 진리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제정신으로는 안 된다.

꿈은 본래적 자아인 정상으로의 초대다. 주인공 영혜의 꿈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꿈은 그녀를 채식주의자로 만든다. 채식주의란 단지 고기를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일체의 공격성을 해체하는 것, 동물적 본능을 해체하여 식물됨을 희망하는 것이다. 머리 위에 오줌을 갈겨도 조금의 분노가 없는 식물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 그녀는 고기뿐 아니라 일체의 음식을 거부한다.

거식증은 내 몸의 모든 동물적 요인들을 해체하고 철저히 무기력하게 되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밖으로 향하는 모든 공격 에너지의 근원을 끊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정상을 향한 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몸부림, 그녀는 비로소 식물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동물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식물에의 길은 쉽지 않다.

질서를 깨어야 하고, 그것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마침내 정상이 되려면 정신병원을 각오해야 한다. 남의 살을 먹고 남의 살을 자기 살로 만들어야 삶이 가능해지는 세상, 남의 살을 제 살로 만드는 것이 정의가 되어버린 동물화된 세상에서 온전한 채식주의자가 갈 곳은 한 곳뿐이다. 창살 있는 정신병원.

세상은 식물을 은연중 무시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식물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세상이 조롱하는 것처럼 식물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식물은 자기 머리 위의 갈겨진 오줌도 거름으로 만든다. 그것을 세상이 알 리 없다. 식물의 역동적 반항으로 인해 세상이 유지되고 있음은 더더욱 모른다.

아마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일체의 공격성을 포기한 상태의 인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육식 문화로 표현되는 공격적인 세상살이에 정면으로 맞설 힘은 또 다른 공격성이 아니라, 공격성이 철저히 해체된 식물 같은 삶뿐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해석은 자유다. /구은주(goodmorningej@hanmail.net)

※본 기고문은 지역의 수필 문학인으로 구성된 '금오산수필문학회' 회원의 작품입니다.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27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인터뷰]“구미의 명품 멜론 디저트로 세계를 사로잡겠다”..
`제2의 애니콜 신화 쓴다` 구미시, 삼성투자 구체화에 `로봇 TF` 본격 가동`..
6억 들인 구미 다온숲 축제, 볼거리는 어디에?..
‘2026년 신활력 사업’ 액션그룹 7기 1단계 모집… 팀당 최대 4,800만 원 지원..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장 ˝시민에게 인정받는 `일 잘하는 강한 의회` 만들 것˝..
구미시, 삼성 19조 투자 발맞춰 AI 인재 1,000명 키운다..
구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첫 회의...2027년도 예산 편성..
구미대, ‘2026 전국 고교생 게임아트·웹툰 공모전’ 개최..
상주시, 민선9기 시정구호·5대 시정방침 발표..
김장호 구미시장, 민선 9기 경제·정주·공간혁신 본격 시동..
최신댓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구미에 이런 오랜 역사가 있었군요. 취재에 고생하셨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이 구미에서... 와우~. 관람료도 적당히 책정했군요. 정말 구미에서 만나기 쉽지 않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군요. 강추!!
구미는 별천지군요.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관련 기사인가? 하다가 보니... 구미시 의회로군요. 전국구에서 힘 못 쓰고 구미에서 '안방 여포' 하려는건지. 시의회가 어찌... 에휴.
오폐라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오페라의 전편이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입니다. 구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공연입니다. 강추!!
대통령과 악수하는데 이철우 도지사가 뒷짐지고 악수하데. 주려던 떡도 도로 거두겠다.
너거들이 무능한게 아니고?
국가산단 경쟁력 강화와 지역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KTX 구미역 정차? 나같으면 "구미 오시느라 오래걸려서 고생하셨을 겁니다. 기업의 직원과 협력사 직원들이 출장 다닐 때 이렇게 교통 시간이 많이 걸리니 불편할 뿐 아니라 산업경쟁럭도 악화됩니다. 해외법인이나 글로벌 파트너사에 시간을 다투는 출장가려고 인천공항에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랬을 것 같다. 말에는 초점이 있어야한다. 정주여건이야 그냥 시장이 알아서 하거나 경북지사와 얘기해도 될 일.
근대 그때 다부동 방어선 있고 가산 대구 방향은 국군, 유엔군 지역이고 구미 선산 왜관은 북한군 점령지이고 다부동 진출의 교두보인데 후방폭격은 당연함
일본어 이동네주위에4~5십년거주한시닌으로서금리단길은금오산가는도중길이어서상권형성에어려룸이많을것같네요
오피니언
과거 회색빛 쓰레기 매립장 ‘도심 속 정원’으..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한우충동(汗牛充棟)汗 : 땀 한, 牛 : 소.. 
매일 걷는 공원길,보도블록 구멍마다 삐죽삐죽 .. 
여론의 광장
방통대 중문과 한시 모임 ‘불역시호’, 구미서 여름 캠프 개최..  
LG두드림봉사단, 취약계층 1인 가구 위해 `보람찬 한 끼` 나눔..  
국립금오공대, 집단연구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선정..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