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이일배의 살며생각하며(4)]위대한 정령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16일
↑↑ 이일배 수필가(전 인동고 교장)
ⓒ 경북문화신문
밭에 나는 풀이 너무도 성가시다. 베어내도 나고. 뽑아도 나고 깊숙이 캐내어도 또 난다. 난 풀들은 쑥쑥 잘도 자란다. 아침저녁이 다르고 하루하루가 놀랍다. 신기하다. 이 풀들은 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가꾸는 것일까. 돌보는 이가 없다면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으로 나고 살고 무성해질 수 있을까.

심어서 가꾸려 하는 작물은 뜻대로 잘 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다. 잘 나라고 씨뿌리기 전에 땅에다 거름을 묻고, 나면 비료를 주고 병 들지 말라고 약을 쳐주고 해도 바라는 대로 키우기는 쉽지 않다. 원하는 결실을 거두기는 더 어렵다. 저 풀을 가꾸는 손길에 비하면 작물을 가꾸는 사람의 손길이며 그 힘이란 보잘것없는 것 같다.

누가 가꾸든 모든 식물에는 꽃이며 열매가 다 피고 열리기 마련이다. 단지 그 열매를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사람이 못 먹으면 새며 짐승이 와서 먹고 남은 것은 씨앗이 되어 또 난다. 경영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야생의 초목이 더 많은 생명체를 살려 나가는지도 모른다.

야생의 이런 경영은 누가 하는 것일까. 일찍이 인디언들은 ‘위대한 정령’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로는 ‘와칸 탕카(Wakȟáŋ Tȟáŋka)라고 하는 존재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비버며 들소가 뛰어다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하는 모든 것이 와칸 탕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했다.

인디언들에게는 성경도 없고 교회도 없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믿음은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만물의 아버지라며 감사하고, 흙은 대지의 어머니라며 감사하고, 강물은 대지의 핏줄이라며 감사하고, 바람은 대지의 숨결이라며 감사한다. 약초를 캐면서 그 풀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들소를 사냥하여 먹거리와 옷을 삼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자연의 모든 것이 경배의 대상이다.

그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여겨 오직 감사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그들의 신앙을 삼는다. 그리하여 풀 한 이파리, 미물이며 짐승의 목숨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필요하여 채취하거나 수렵을 할 때도 경배의 기도를 먼저 올린 후에 실행한다고 한다. 위대한 정령에게 올리는 기도다.

‘위대한 정령’이라는 게 정녕 있기나 한 건가. 인디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어떤 이가 위대한 정령의 정체를 알고 싶어 보이지 않는 정령에게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종달새가 노래했다. 그래도 또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천둥을 굴러다니게 했다. 모습을 보여 달라 하니 별을 빛나게 했다. 기적을 보여 달라 하니 한 생명을 탄생시켰다. 한번 만져 달라 하니 나비를 내려앉게 했다. 사람은 나비를 쫓아 보내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의 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문명한 백인들이 야만스러워 보이는 인디언의 땅을 침략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들의 교회며 학교에 다니라 하고, 살기 좋게 한다며 땅을 마구 파고 나무를 무참하게 찍어 넘기고 높은 집을 짓고, 조용하던 들판에 철로를 놓아 기차를 다니게 했다. 살기 좋아지기는커녕 온갖 공해며 질병이며 범죄가 만연해져 갔다.

그 문명인들은 자연은 정복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고치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풀은 잡초라고 부르며 짓밟았다. 인디언들은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모든 풀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어느 쪽이 더 괜찮은 삶일까.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강둑 위에는 정자가 놓여 있다. 정자 옆 마을 쪽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람하게 서 있고, 강 쪽에는 봄에는 해사한 꽃을 피우는 벚나무며 절로 난 온갖 초목이 우거져 있다. 어느 날 그 초목들이 무참히 잘려져 나갔다. 나무들이 너무 자라 강의 경관을 막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원을 받은 관에서 한 일이다.

정자에 앉아 물 맑게 흐르는 풍경을 바라며 즐기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다. 그 운치를 위해서 나무를 베어낼 수도 있다. 관의 발주를 받은 사람들은 그걸 어떤 마음으로 베어냈을까. 강과 정자의 경관을 살릴 수 있도록 나무를 다듬는 마음으로 벤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베어내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쳐 없애버린 것 같다.

오래된 벚나무의 커다란 가지들도 흉물스럽게 잘라 커다란 둥치만이 처참하게 서 있게 했다. 저 끔찍한 모습이 정자의 운치를 살려 줄 수가 있을까. 인디언처럼 ’위대한 정령‘의 존재에 관한 생각은 못 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사람과 함께 공존해야 할 생명체로 여겼다면 저리 무참히 자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언이 들소를 잡아 고기로 양식으로 삼고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면서도 ‘위대한 정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잊지 않았듯이, 자연물을 어떻게 쓰더라도 세상을 함께 사는 다 같은 생명체라는 생각만은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일까.

저 푸른 산의 나무며 저 들길에 함초롬히 핀 꽃, 저 숲속을 날아가는 새들이며 저 꽃을 찾아드는 나비들은 누가 가꾸며 누가 거두는 것일까.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16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김천 ‘부곡택지1호공원’ 전면 새단장..
개그맨 이선민, 구미시 홍보대사 위촉..
직접 키운 버섯, 가공식품으로 부가가치 창출...착한영광버섯마을 손광식 대표..
`정원`으로 사람과 도시, 농촌을 잇다...`가드닝브릿지교육원` 김경애 대표..
상주시 함창읍, ‘우리 아이들 옷과 운동화 지원’..
[서장우의 일상(4)]어디가 불편하세요?..
톡 쏘는 겨자처럼, 농촌과 도시를 잇다…‘겨자식생활’ 김재훈 대표..
구미 수점동 십수 년 묵은 주민 숙원 도로 전 구간 개통..
상주시 화령장전승기념관, 전국 무궁화 명소 4곳에 선정..
경북보건대 AI융합학부 스마트물류과, 9월부터 `물류관리사 전문자격증반` 운영..
최신댓글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 여름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몰랐던 것 배우게 되네요. 멋진 조상의 유산 배우고 갑니다.^^
라면 먹으러 축제에 가야겠군요. 타지 방문객 통계도 한 명 더 올리고. ^^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장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저마다 작은 결실 피워내는 식물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냉이꽃처럼...
선산봉황시장의 2층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어설픈 공연자 2백만원씩 5명 보다는 유명한 1명이 공연의 질을 더 높일 수 있죠. 그런데 스티븐 해링턴? 누가 아시나요? 그냥 행사 추진자가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지역 예술가들을 우대하되 기준을 객관화해서 정치인이나 지방권력자 친분으로만 하지 말고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아쉽군요. 음악이건 미술이건... 너무 외국 유명인에게 기대는 것은 좀... ㅠ.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5억원. 가본 사람이 5만명이면 인당 1만원. 그 만큼의 가치를 주나요? 구미 연간 예산 2조원. 구미시민 40만명. 시민 1명당 5백만원. 난 왜 구미시의 공공서비스를 연간 10만원도 못받는 느낌이지?
금오산 정상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곤 했나보군요. 산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자' 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두면 좋겠군요. 저는 딱 한번 ^^.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지자체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는데... 돈 버는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남산 케이블카' , '설악산 케이블카' 정도라고 하는군요.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적자라고... 좀 지난 기사기는 하지만... 혹 금오산에 케이블카 눈독들인 정치인 계시다면 조심하시는게... ^^
오피니언
마중 나온 아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평소 다니던 정형외과 의원에서 문자가 왔다.".. 
<작가노트> '새마을'이라는 이름은 오래전 ..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여론의 광장
방통대 중문과 한시 모임 ‘불역시호’, 구미서 여름 캠프 개최..  
LG두드림봉사단, 취약계층 1인 가구 위해 `보람찬 한 끼` 나눔..  
국립금오공대, 집단연구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선정..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