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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장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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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구미는 지금보다는 훨씬 소박한 도시였다. 대구와 김천의 중력 사이에서 막 성장하던 도시의 모습이 있었다. 그 시간 속에는 필자를 비롯한 세대의 청소년기 십여 년이 담겨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는 어른이라 믿었던 청춘들. 필자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금오산 가는 길가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산골짜기를 자전거로 힘겹게 올라야 했던 중학교, 다른 학교지만 같은 교문과 같은 운동장을 쓰던 남고와 여고. 팔십 년대는 발전해 가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던 소년, 소녀들의 시대였다. 12년 동안 소풍을 가던 금오산, 주말이면 친구들과 배회하던 2번가, 어릴 때 살던 대단지 연립주택 등 현재 구미의 지형을 간직하거나 변화한 곳도 많지만 필자의 기억에는 여전히 과거의 그 모습들이 남아있다.
구미역 앞 중앙로 양쪽으로 '춘양당 서점'과 '영창 서림'이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시절 참고서와 문제집은 사야 했지만, 추리소설은 몇 시간이고 서서 읽고 나오던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또 2번가 어딘가에는 '포그니'라는 음악감상실과 '온실'이라는 연두색 인테리어 카페가 있었다. 음악감상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가제보의 'I Like Chopin'과 온실처럼 따뜻했던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세월이 흐른 지금 지구의 어느 곳에 그 잔향이 남아 있을까? 중년이 되어버린 소년·소녀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는지.
어느덧 떠나 온 지 삼십여 년이 흘렀다. 구미대교를 건너 구미공단 사이를 잇던 추억은, 여의도를 지나 마포대교 너머 서울의 도심으로 넘나드는 생활이 되었고, 금오산 저수지를 친구와 걷던 발걸음은 동탄 호수공원이나 석촌 호수공원을 거닐며 벚꽃을 만나게 된다. 가끔 전국 뉴스에 실려오는 구미 소식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는 미지의 소식, 떠나온 자에게는 고향의 향기이면서 동시에 함께 변화하지 못한 낯섦의 내음이기도 하다.
1988년, 한국 사회 전체로 보더라도 큰 사건이었던 올림픽이 있던 해, 필자는 구미의 품을 떠나갔다. '성년'이라는 어색했던 타이틀을 달고서. 구미를 떠나와 블랙홀처럼 사람과 재화를 흡수하는 서울과 수도권에 자리 잡은 그 시절 구미 소년은 어떻게 생존해 있을까? 현재의 구미가 과거의 구미가 아니듯, 현재의 중년도 과거의 구미 소년은 아닐 터이다.
이 글은 구미를 떠난 한 소년이 살아낸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이야기이자,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부이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평범한 수도권 직장인의 출근길, 퇴근길 막히는 수원 신갈 IC, 산책길에서 만나는 야옹이와 나무 그리고 풀들의 일상을 이과 출신의 눈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평범하지만 따뜻하게.
[필자 서장우는]
구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물리학을 전공했다. 경기도 화성에서 살며 여러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거쳐 현재 반도체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시와 산문집 『습관처럼, 오늘도』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