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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지사 앞 숲의 꽃무릇 군락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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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秋分)이 가까워진 토요일이다. 이맘때 붉게 피는 꽃밭을 볼 수 있는 명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바로 직지사(直指寺) 앞 숲의 꽃무릇 군락이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낮의 늦더위를 식혀줄 계곡길이 있다. 바로 ‘사유의 숲 홀로 걷는 길’이다.
기자는 사명대사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직지사 입구 숲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물결이다. ‘보행자 오솔길’ 양편을 물들이며 피어난 꽃무릇이 간간이 비치는 초가을 햇살 아래 반짝인다. 추석 연휴인 9월 27까지는 야간 개장도 한다고 하니 달빛 아래 이 꽃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이 꽃무릇은 ‘석산(石蒜)’이라 불리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봄에는 잎만 무성하다가, 5월말쯤 잎이 모두 사라지고 추분 무렵 홀로 붉은 꽃대를 올린다. 이렇게 잎과 꽃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없기에 더욱 선명한 그리움, 그래서일까, 꽃무릇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멈추어 선다. 기념 촬영에 열중하는 사람들 틈에 기자도 벤치에 잠시 앉아 한 포기를 유심히 바라보며, 상상 속에서 그 꽃이 잎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사연을 엿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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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잎에게 편지 사연을 보내다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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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잎에게 보내는 편지 사연을 엿듣다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나의 잠을 깨웠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역시 당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서늘한 대지 아래, 당신이 온몸을 다해 응축해 놓은 생명력이 뜨겁게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을요.
사람들은 나만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나는 차마 그 칭찬을 혼자 다 받지 못하겠습니다. 나의 붉은 꽃잎 한 장 한 장에는 당신이 지난겨울 눈보라를 견디며 모아준 햇살이 깃들어 있고, 나의 꼿꼿한 꽃대에는 당신이 봄날 시들어 가며 알뿌리에 정성껏 갈무리해 둔 고귀한 생명의 영양분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만으로 있는 내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잎으로 살며 겪어낸 그 고독한 시간이 없었다면, 나의 이 화려한 외침도 없겠지요. 당신은 나를 위해 기꺼이 잊히기를 선택했지만, 나는 나의 빛깔 속에 당신의 이름을 새겨둡니다.
우리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평생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떡잎이 삭아야 본잎이 나오듯이, 자신이 온전히 지워져야 내가 온전히 붉어질 수 있다는, 이 자연의 순리라는 숙명을 기꺼이 당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여 나의 생명을 키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물려준 그 지극한 ‘울력’으로, 저 또한 이 계절을 붉게 타오르며 온 세상을 위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나의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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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지사 대웅전 위의 가을 하늘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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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자화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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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사연의 여운을 안고 기자는 만세교를 건너 직지사 경내로 들어섰다. 대웅전의 처마 끝으로 스며드는 바람. 산 위로 흰구름을 부른 초가을 하늘이 수채화처럼 닿아 있다. 약사전(藥師殿) 앞에 9월에 처음 보는, 작고 하얀 꽃이 있었다. 패찰을 보니 ‘칠자화(七子花)’다. 하나의 줄기 끝에 보통 7개의 꽃봉오리가 무리 지어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꽃의 특이한 점은 2차 관상이라 하여 10~11월에 흰 꽃잎이 떨어진 뒤 꽃받침(포엽)이 붉게 변하며 커지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분홍색 꽃이 다시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을철에 매우 화려한 관상 가치를 자랑한다고 하니 다시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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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의 숲 홀로 걷는 길’ 이정표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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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의 숲 계곡길 풍경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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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천불암 앞 계곡을 따라 사유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렷이 귀를 울리는 물소리를 벗하여 조금 오르니 ‘사유의 숲 홀로 걷는 길’ 이정표가 반긴다.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다운 맛을 풍겨주는 매력에다 참나무숲과 낙엽송 군락 지대도 있어 벤치만 놓으면 피톤치드 풍부한 산림욕장이 될 것 같다. 경사가 완만하여 부담 없는 ‘홀로 걷는 길’은 물소리와 함께하는 30여 분 걷기 코스로, ‘명적암/무욕의 길’ 이정표 있는 곳에서 마무리된다.
기자는 직지사로 되돌아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지공원, 사명대사공원을 거닐어도 기분이 상쾌하다. 대웅전 옆으로 바로 연결되는 사명대사 명상길을 오를 수 있다. 꽃무릇 군락 및 만세교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직지사 솔바람명상길’을 걸어도 좋은 직지사 부근은 그야말로 구미·김천 시민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산책 1번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