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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 속 마로니에 나무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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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내린 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선다. 불 켜진 가로등 옆 마로니에 나무의 일곱 개 잎은 바람에 살랑인다. 늘 그렇듯, 왼쪽 방향으로 길을 잡고 단지 상가 건물 앞으로 향한다. 연두색 간판 빛이 예쁘게 켜진 편의점이 나를 맞는다. 편의점 앞 나무 벤치에 캔맥주를 나누는 여성들, 107동과 상가 편의점 사이 청단풍나무를 둘러싼 돌 벤치에 앉아 담배 연기 내뿜는 남성, 킥보드를 발로 밀며 놀이터 쪽으로 향하는 아이, 10월을 앞두고도 아직 끝날 줄 모르는 여름의 어둠 속에 사람들이 스며들듯 지나간다.
청단풍나무 아래 흡연자가 내뿜은 담배 연기를 피해 편의점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 키 큰 나무 군락이 있는 110동 앞을 걷는다. 키가 3미터를 훌쩍 넘는 이 정체 모를 나무들은 유월 하순이 되어 피어난 익숙한 꽃을 보고서야 '무궁화'라는 그 이름을 알 수 있었다. 111동을 지나 112동으로 빠지는 모퉁이에 가로등이 꺼져있다. 그곳엔 세대에서 내놓는 폐가전 냉장고나 침대 매트리스 따위가 나와 있는 길인데, 조명이 꺼져 있으니 더욱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길이다. 그래도 '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적이 나타날 것도 아니고...' 하는 마음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니, 저층 세대 거실 불빛으로 다시 어렴풋 밝은 산책길이 드러난다. 이제 내리막 길을 지나 인공 조성된 중앙 연못길에 다다른다. 꽤 수령이 되어 보이는 팽나무 여럿이 심어져 있는 연못과 산책길인데, 코로나 시작 무렵 입주가 시작된 탓에 연못에 물이 채워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중앙 연못 앞 인공 오솔길은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키가 큰 팽나무들 안쪽에는 화살나무, 배롱나무, 측백나무들이 있고, 산책로 바닥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맥문동이라는 풀이 자라나 있다. 좁은 오솔길을 돌아 걷는데, 열 걸음 정도 앞에 자그마한 몸집의 검은 고양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앞서 가고 있다. 얼핏 봐도 올봄이나 여름에 태어난 녀석으로 보였다. 거리를 유지하며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꼬리를 살랑살랑 걷던 녀석은 인기척을 느꼈던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본다. 온몸이 까만 녀석이 두 개의 눈동자만 나를 향해 맑은 빛을 쏘아 보낸다. 마치 '왜 따라와?' 하는 듯 쏘아보던 녀석은 다시 길을 걸어간다. 나도 같은 속도로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몇 걸음 만에 녀석은 다시 탁 멈춰 서더니, 고개를 홱 돌려 그 맑은 눈을 내게로 향한다. 둘 다 멈춰서 대치하는 것처럼 2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검은 고양이는 총총총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박태기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 뒤로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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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앞에 앉아 있는 삼색 고양이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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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중앙 연못을 지나 단지 후문 라인 끝에는 화성시에서 관리하는 풀무지 공원이 나온다. 크지는 않지만 인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 탓에 동그랗게 조성된 길을 여러 바퀴 걷는 사람이나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터를 잡은 새끼 고양이들이 함께 나누는 공간이다. 치즈, 테비, 까망이, 삼색이 올봄에 태어났을 네 마리가 벤치 위나 길 위에 자리 잡고 있다가 사람이 바로 코앞까지 오면 얼른 달아나곤 하는 고양이 공원이기도 했다. 늘 몇 걸음 가까이 거리까지 다가가면 먼저 자리를 옮기거나 줄행랑을 치던 녀석들인데, 웬일인지 자그마한 삼색이 한 마리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삼색이를 내려다보았다. 앗! 이 녀석이 제 몸을 내 다리에 스윽 스치며 한 바퀴 돌아간다. 그리고는 꼬리로 내 다리를 툭툭 치고 나서 내 발 앞에 자리 잡고 앉아 빤히 올려다본다.
'이거 무슨 상황이지? 이게 말로만 듣던 야옹이의 집사 간택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내 손에는 고양이 사료도 파티믹스도 츄르도 없다. 17년간 함께 하고 이별한 '금동이'라도 있었으면 집에 뭐라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야옹이 먹거리가 하나도 없는데 이럴 때 하필 고양이가 내게 반가운 척을 하다니! 고양이에게 간택을 당해보니 마음이 포근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에구 이 녀석아! 번지수를 잘못 골랐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줌마를 꼬셔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고양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지만 그것과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 어린 삼색이 녀석은 저녁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월동 준비를 시작한 걸까? 평소 사람 근처만 가도 피하던 녀석이 어쩐 일이냐? 이것 참.
일이 분가량을 내 발 앞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삼색이는 '집사를 잘못 골랐다' 싶었는지 미련 없이 떠나갔다. 또 다른 집사를 찾으러 가는 건지, 츄르라도 먹여줄 캣맘을 찾아가는지 강아지풀과 개망초가 엉켜있는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유독 올해는 고양이들이 금슬이 좋았던지, 아파트 단지 정문 쪽과 후문 쪽 공원에 터 잡은 아기 야옹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다 자란 성체들은 눈에 잘 안 띄거나 마주쳐도 얼른 자리를 비켰는데 역시 '하룻야옹이'들은 사람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너는 내 집사' 하듯 귀여운 꼬리를 비벼대다니.
10월로 들어가는 새로운 주 중반에 비와 함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들려온다. 사람인 나도, 아까 만났던 삼색이와 그 친구 야옹이들 모두 겨울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비록 품어주진 못하지만 혹독한 겨울이 와도 잘 견디고 살아남아 내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아직도 내 다리에 남아있는 삼색이 꼬리가 휘감기던 느낌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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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장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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