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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은쉼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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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아침, 구미시청에서는 왕산 허위 선생이 1908년 순국하신 날을 맞아 그 행적과 교훈을 기리어 ‘굿모닝 수요 특강’ 이 열렸다.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박경목 교수는 강연을 통하여 13도 창의군의 실질적 대장으로서 활약한 왕산 허위 선생은 항일 ‘의병을 독립전쟁으로 승화시킨 분’이라고 전제하고, 공직자로서의 공명(公明), 미래에 대한 혜안(慧眼), 위기에 삶을 헌신한 충정(忠正), 절망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挑戰) 정신 등을 총괄적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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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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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을 계기로 기자는 선비의 얼로 빛나는 ‘오태동산’의 세 분의 묘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10월의 마지막 화요일, 기자는 이른 점심 식사 후 먼저 임은동의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에 주차했다. 기념관에서는 선생의 생애와 훈장, 그리고 교지와 친필유묵 등을 관람하였다. 허위 선생은 퇴계 이황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 가문 출신이다. 한말의 거유이자 대학자인 맏형 허훈으로부터 수학하는 등 유학적 전통에 기반한 학문적 기틀을 형성하는 가운데 ‘포부와 경륜’을 쌓았다는 점을 기자는 주목했다. 또 한 가지는 13도창의군의 서울 진격이 실패한 후에도 경기도 일대의 부분적인 독립전쟁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일생은 선비정신을 실천적으로 발휘한 지도자라 여겨진다. 선비정신이란 ‘유교를 배우고 실천하는 고결한 인격체를 바탕으로 행동과 예절을 올바르게 실천하며, 강인한 의지를 갖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사회에 정도를 구현하는 것’ (‘경북선비아카데미 오석원 교수 교재’에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왕산 선생의 유허비에도 “겨레의 선각자요 ‘선비’의 본보기”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런 만큼 허위 선생의 선비정신은 학문으로 익힌 의리를 국가와 민족을 위한 행동으로 옮긴 실천성에서 찾을 수 있다.
기념관을 나와 왼쪽의 ’임오체육공원‘ 위로 난 등산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마루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산불감시초소 앞에서 다시 왼쪽 아래로 내려갔다. 또 다른 산마루로 올라서면 평상이 놓인 정자와 여러 운동 기구를 가지런히 설치해 둔 ’임은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아래 이정표에는 직진하여 내리면 ’오태1동(지주중류비) 0.8km’이고, 왼쪽으로 내리면 ‘임은동수변공원 0.8km’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는 낙동강, 천생산, 남구미대교 등 남구미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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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주중류비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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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주중류비에서 본 천생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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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임도를 따라 내려서 도로를 건너면 ‘지주중류비’가 서 있다. 중국 황하강의 ‘지주’라는 바위는 천만년의 거친 물결 속에서도 그 위용이 변함없이 준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은 백이 숙제와 같다 하여 백이 숙제 무덤 앞에 ‘지주중류’ 네 글자를 세워왔다. 야은 길재 선생도 동방의 백이 숙제라 하여 후학들이 1587년 글자를 모사하여 비를 세워 선생의 높은 절의와 밝은 학덕을 기념하고 있다. 그 지주중류비에 호응하듯 인동의 주산(主山)인 천생산이 멀리서 우뚝이 지켜 서 있다.
지주중류비를 보고 나와 왼쪽 도로를 따라 내려서, 남구미 IC 가는 길에서 오태1동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만나 우회전하여 걸어 들어갔다. ‘오태당산어린이공원’을 지나 좌측 산기슭길로 오르면 집 한 채 옆으로 길재 선생의 묘소 입구에 닿는다. 입구에는 묘소 안내 표지판이 없다. 벌초 되어 있는 잔디 안으로 들어서니 ‘야은 길재 선생의 묘소’라고 쓴 작디작은 입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 천생산은 정면에서 묘소를 바라보건만, 선생은 끝까지 은둔을 유지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의(節義)와 지조의 선비인 길재 선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가?’라고.
길재 선생 묘소를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지주중류5길을 따라 가다가 ‘(주)서울전설’을 지나면 새로운 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작은 공장들을 거쳐 ‘남구미IC 1급정비공장’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여헌 장현광 선생 묘소’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헌 선생의 묘소는 경사진 곳에 축대를 쌓아 단아한 봉분을 모셨다. 학문 탐구와 수양의 선비인 여헌 선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배워 삶의 지혜와 인격을 쌓을 것인가?’라고.
그런데 오태동의 야은, 여헌 선생의 묘소는 그 위치로 보아 산등성을 사이에 두고, 학파는 다르지만 구미 성리학의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두 분이 함께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기자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산등성을 넘어 두 분 묘소 사이를 잇는 오솔길이라도 있다면 ‘구미 선비의 길’이라 명명해도 의미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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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은쉼터’ 아래의 이정표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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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주중류비로 돌아와서 산길로 되돌아 오른다. 이번에는 ‘임은쉼터’ 아래의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임은동수변공원’으로 내려섰다. 허위 선생 기념관으로 원점회귀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선비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든 정직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며, 꾸준히 배우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