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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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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미수 허목선생이 집안사람인 허순의 서첩을 펼쳐보니 김생, 양사언, 이지정의 글씨가 있어서 감상하고 나서, 평생을 양사언의 글씨 보기를 좋아하였고, 또 친구 이지정의 글씨는 필법이 기이하고 이상스러우며, 더욱이 예스러운 운치가 있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고 기록하고, 이지정은 이미 죽고, 글씨만이 남아 있으니,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회가 무궁하며, 감상하느라 권태로움을 잊어버렸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허순(許珣)의 서첩에 대한 발문-
내가 40년 전에 경남의 합천 해인사(海印寺)에서 처음으로 신필 김생(金生)의 글씨를 보았고, 또 경주의 태로원(太櫓院)에서 편액 글씨를 보았다. 지금 한양에 와서 이 서첩을 우리 일가인 작은 상사(上舍) 허순(許珣)에게서 보게 되었으니, 서첩 가운데 또한 김생의 글씨가 있고, 그 다음이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요, 또 다음은 청선(聽蟬) 이지정(李志定)의 글씨로 되었다. 나는 평생에 양사언(楊士彦)의 글씨 보기를 좋아하였는데, 일찍이 들으니 그 글씨는 ‘산중에 들어가서 등나무와 칡덩굴을 보고 배웠다.’ 한다.
나는 일찍이 이지정(李志定)과 함께 총산(䓗山) 정언옹(鄭彦㝘)에게 공부했는데, 나는 이지정(李志定)의 필법이 기궤(奇詭)하고 더욱 고기(古氣)가 있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내가 영남으로 내려오매 서로 보지 못한 지가 30년이 지났는데 지금 그 사람은 벌써 죽었고 그의 글씨만이 남아 있으니, 지난 일을 생각하면 감회가 무궁하다. 감상하느라 권태로움을 잊어버리고 대략소감을 이와 같이 기록한다.
1678년(숙종 4) 6월 임자일에 태령 노인(台嶺老人) 허목(許穆)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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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정의 취영구절(醉詠九絶, 취하여 읊은 아홉수 절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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