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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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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미수 허목선생이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진선(進善)으로 근무하는 조속 군의《금석청완》이란 금석첩 4책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글씨로 이름난 최치원, 김생, 탄연, 이암, 안평대군, 양사언, 황기로, 한호, 백광훈 등 87명의 글씨 첩을 만들었기에 서예사의 문헌으로 자랑할 만한 증거라고 표현하면서 조속 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또 학식이 넓고 성품이 고아하여 옛것을 사랑하였고, 특히 옛날 글씨를 좋아하여 일찍이 명산대택(名山大澤)을 구경하여 옛날 글씨를 본 것이 많은 사람으로 칭송하고 있다.
-조속(趙涑)의 금석첩(金石帖)에 씀-
지금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진선(進善)으로 근무하는 조속(趙涑) 군이 금석첩(金石帖) 4책을 보여 주었는데, 대단히 기이하여 내가 매우 재미있게 보아서 피로한 것도 잊었다. 옛날 절의 탑과 산의 비석과 바다의 빗돌과 큰 묘에 새긴 글들이 한 자도 빠짐없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다.
신라에서부터 1천 1백 년이 지나는 동안 글씨로 후세에 이름난 사람은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 해동서성(海東書聖) 김생(金生), 탄연(坦然) 승려, 시중(侍中) 이암(李嵒),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과 근세(近世)의 양사언(楊士彦), 황기로(黃耆老), 한호(韓濩), 백광훈(白光勳) 등과 같은 사람들인데, 그 글씨가 모두 이 도서첩에 들어 있다. 여기에 들어 있는 사람이 무릇 87인이니, 넉넉히 우리나라의 문헌을 자랑할 만한 증거가 된다.
나는 일찍이 하동 지리산(智異山) 쌍계사에 들어가서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의 쌍계사비(雙溪寺碑)를 보았고, 이끼 낀 사이에서 또 석문(石門)의 대자(大字)를 보았으며, 봉화 청량산(淸凉山)에 놀러 갔다가 김생(金生)의 굴을 보았고, 합천 해인사(海印寺)에서 또 김생(金生)의 글씨를 보았으며, 동해로 나가 두타산(頭陀山)의 무릉계곡에서 양사언(楊士彦)의 갈필(葛筆)로 쓴 글씨도 보았는데, 나는 이런 것을 대단히 좋아했었다.
지금 나는 이미 늙었고 여러 난리도 겪었으며 또 세월도 30년이나 지났으니, 고적(古跡)은 많이 매몰(埋沒)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도서첩을 조속(趙涑) 군에게서 얻어 보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니 마음에 깊은 감회가 생기는구나. 조속(趙涑) 군은 학식이 넓고 성품이 고아하며 옛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옛날 글씨를 좋아한다. 일찍이 명산대택(名山大澤)을 구경하여 옛날 글씨를 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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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청완(金石淸玩)의 서문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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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석청완(金石淸玩) 중 김생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