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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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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70년대는 지게꾼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뉴스거리를 제공했던 시절이 이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농사꾼의 아들이 교수가 되고 의사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학비를 댄 부모들의 감동적인 일화가 수기 형식으로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한 청소년들이 낮에는 신문팔이나 구두를 닦으면서 독학을 하는 주경야독이 그다지 낯설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자식만큼은 어떻게 하든지 대학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당시를 살다간 모든 부모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취득한 소중한 대학 졸업장은 “인생 역전”이라는 보상으로 되돌아 왔다.
80년대 들면서 교육계에는 변화의 바람이 몰아쳐왔다. 1985년 도서벽지 중학교 1학년에 한해 시작한 의무교육은 2004년에는 중학교 전면 의무교육으로 확대됐다.
중학교 전면 의무교육이 시행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중졸자들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했는가 하면 대부분 고졸자를 대학에 진학케 하는 발판이 됐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기회가 없어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명거리가 되질 않는다. 우리는 지금, 기회와 제도가 무한히 열려 있는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40%정도 인데 비해 우리의 대학 진학률은 82%로써 세계 최상위권이다. 82% 이상이 대학을 나온 사회에서 더 나은 장래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또 한 번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의 현실이다.
스웨덴의 경우 대학 진학률은 고작 40%임에도 선진국 소리를 듣는다. 대졸 자 와 직업교육을 이수한 후 취업을 한 경우 연봉 격차는 물론 사회적으로 편견과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대학을 나오지 아니한 사람을 낙오자로 바라보는 사회풍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국부의 낭비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시급하게 정리되어야 할 국가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고도압축 성장의 영향으로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문화가 팽배하게 되면서 모두가 함께 가는 교육보다는 경쟁과 선발 그리고 서열화에 치중하는 산물을 낳았다. 이 결과 모두가 외고나 특목고 그리고 자율 형 사립고를 나온 후 명문대에 가는 것에 모든 것에 목숨을 걸 정도까지 돼 버렸다.
치열한 경쟁과 서열화로 얼룩진 한국교육이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에서 세계 최 상위권으로 평가를 받고, 교육선진국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산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최대 원인 제공자는 바로 사교육이다.
유아기부터 천재아 선호 증상과 조기 영어교육 그리고 입시 열풍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교육이란 “강제학습 노동”에 내 몰고 있다. 여기에 “남에게 질 수 없다.”는 한국인의 오기도 한 몫 한다.
이 무리한 과욕이 사교육비 부담으로 돌아와 고액의 사교육비를 부담을 할 수 없는 학부모는 2세 교육에서도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빈곤에 이어 교육까지 대물림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부모의 재산과 능력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도 비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정상적인 공교육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유치원부터 고교과정까지 대부분이 공립이다. 간혹 사립이 있긴 하나 극소수이다. 더군다나 대학의 경우는 모두 국립이다. 결국 모든 교육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공교육이 의지를 가지고 앞서가고 있으니 사교육의 위치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에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얘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교육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자리 잡고 만 것이다.
네팔에 있는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은 1953년 영국의 애드먼드 힐러리 경이 셀파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정상 등정을 성공한 이래 매년 극소수 산악인들만이 정상을 정복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상까지 가는 루트 정보와 등산장비 그리고 베이스 켐프 위치가 5.400M까지 상향 되면서 년 간 수백 명이 정상에 오른다.
1979년 고상돈 씨가 정상정복을 할 당시에는 이슈가 됐으나 최근에는 한국 사람의 정상 정복은 뉴스 거리도 되지 못할 지경이다.
그 어렵던 에베레스트 산의 등정도 등산 코스 정보와 첨단으로 무장된 현대적인 장비의 도움으로 쉽게 정복 하듯이 교육도 국가와 사회 인적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이 밀어주어야 건강하게 성장한다.
“밑천이 든든한 장사꾼이 돈을 더 잘 번다고 한다.”고 하지 않는가?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환경, 즉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성공 확 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발생한다.
공교육의 정상화 다시 말해 과도한 사교육을 줄이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다. 오랜 세월동안 교육 전문가와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쉽지 않다.
문제는 그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수도권의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일자리가 있고 취업에 차별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영어. 수학 등 한 곳으로만 쏠리는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
어려서부터 경쟁만 요구하는 교육에서 벋어나 함께 성취하고 나눔을 통해 동반 성장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무기는 물이 키워 주고 바람이 날려 보내주어야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 갈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