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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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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책에 묘사된 장면과 작가들의 성향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것도 술과 관련한 작가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보면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아도 은근히 그들이 선호했던 술들을 홀짝 들이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절로 술을 부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도 그와 위스키는 한 몸이다. 술고래 헤밍웨이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했다고 한다. <노인과 바다>가 영화로 만들어질 때 기술 고문을 맡았던 헤밍웨이는 주연배우인 스펜서 트레이시와의 술 마시기 대결로 그를 굴복시키는 것을 좋아했다니 말 다했다.
생애 마지막 20여 년 동안 그는 매일 위스키를 1L씩 들이켰다. 그의 초기 단편소설 <우리 시대에>를 보면 위스키나 브랜디 등 독한 술이 무척 당긴다. 15편의 단편 중에 8편에 걸쳐 등장하는 닉 애덤즈는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에 모든 일에 무감각하다. 이미 어떤 일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황폐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계속해서 독한 건배를 이어나갈 뿐이다. 우울한 현실에게 건배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다녀와야 한다. 노골적으로 ‘나는 맥주가 좋다’고 말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거사를 앞둔 중요한 순간은 물론이요 참을 수 없이 무료한 저녁 시간이나 우아한 디너를 할 때조차 맥주를 들이킨다. 정말 이상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맥주를 들이키는 대목만 읽으면 나도 모르게 목이 칼칼해지는 것이다.
언젠가 하루키가 쓴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42km를 다 뒤고 난 뒤에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키는 맥주 맛이란 그야말로 최고!’라는 대목에서는 정말이지 냉장고로 급히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셀러리를 잘게 썰어 마요네즈를 뿌리거나 식빵에 포테이토 샐러드를 곁들이는 등 맥주 안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레서피를 전수해 주시니 그야말로 탱큐 하루키다!.
로알드 달의 <맛>은 와인에 대한 최고의 테이스트 팁 노트다. 특히 와인 이름 알아 맞추기 내기에서 생쥘리앵 포도주를 묘사한 대목은 마치 입 안에서 포도주를 음미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건 아주 상냥한 포도주야. 새침을 떨고 수줍어하는 첫 맛이야. 부끄럽게 등장하지. 두 번째 맛에서는 아주 교활함이 느껴져. 또 좀 짓궂지. 약간 아주 약간의 타닌으로 혀를 놀려. 그리고 뒷맛은 유쾌해. 위로해 주는 여성의 맛이야. 약간 경솔하다 할 정도로 너그러운 기분….’ 이 대목에선 거의 고문에 가깝다.
스티븐 킹도 술을 좋아했으나 술이 부르는 폐해에 이골이 나 술을 끊기로 했단다. 그가 쓴 <유혹하는 에디터>에는 유독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특히 술이 마치 작가의 기본 소양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물론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의 위험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는가?”라고.
알코올 중독자만 아니면 술이 크게 인간을 달라지게 할 것은 없다. ‘약간의 릴랙스’가 술이 가진 미덕 중의 하나라면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도 문학과 연결된 감동과 감흥의 충실한 메신저 역할이라면 감히 일배주(一杯酒)를 권한다. 그대 눈부신 가을날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