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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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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상촌 신흠선생은 하서 김인후선생과 인종대왕이 만남은 천재일우였다고 말하고, 인종대왕의 어필과 그에게 그려준 묵죽에 하서 김인후선생의 절구 한 수가 있음에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난 데 대해 감개함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종대왕 묵죽의 발문(仁宗大王墨竹跋)-
이는 인종대왕의 어필이다. 그 아래에 신(臣) 김인후(金麟厚)가 지은 절구 한 수가 있는데, 김인후(金麟厚) 공은 곧 세상에서 일컫는 하서(河西)선생이란 분이다. 인종대왕은 하늘이 낸 성인으로서 여가에 서예를 하여 묘경(妙境)에 이르렀으니, 성인은 구비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겠다. 하서 김인후의 어짊으로 인종대왕을 만난 것은 천재일우였는데, 한 해를 못 넘기고 인종대왕을 잃은 애통을 만났고, 또 마침내는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있었으니, ‘천명은 거짓이 없다.’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도 깊은 산골짜기에서는 여전히 부모를 잃은 듯이 슬픔을 안고 있는데, 하물며 하서 김인후 같은 이는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반남인(潘南人) 박동열(朴東說)씨가 간행하여 이를 널리 전하게 하니, 충성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뒤에 이것을 보는 자는 반드시 길이 탄식하면서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난 데 대해 감개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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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대왕의 목죽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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