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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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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미수 허목선생은 1664년(현종 5)에 심원사에서 보원상인을 만났더니 김현성의 친필 근체시를 보여주기에 보면서 조선 중기에 석봉 한호와 남창 김현성은 당대에 글씨를 가장 잘 쓴 사람이라 말하고 내가 젊었을 때에 석봉 한호와 남창 김현성을 보았는데, 세상에서 모두 ‘남창은 사람됨이 준수하고 고아하며, 특히 율시에 능하여 인품과 시가 글씨보다 더 훌륭하다고 하며, 내가 그 보원상인에게 소유자의 흐름을 물으니 혜봉선사 가지고, 그 다음은 인웅, 그리고 육묵이라고 말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의 친필에 대한 발문-
내가 심원사(深源寺)에서 보원상인(普願上人)을 만났더니,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이 친필로 쓴 근체시(近體詩) 한 편을 나에게 보이며 ‘일찍이 관서(關西)의 스님 인웅(印雄)에게서 고려 김부식(金富軾)의 시를 보았는데, 그가 친히 쓴 글씨가 완연히 그대로 있고, 후세에 유명한 사람들이 잇달아 화답한 시가 50편이 있었다. 이것이 그 가운데 하나인데, 그 글씨가 좋아서 얻어 온 것이다.’ 하였다.
1573∼1620년 사이에는 석봉(石峯) 한호(韓濩)와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은 당대에 글씨를 가장 잘 쓴 사람이다. 내가 젊었을 때에 석봉 한호와 남창 김현성을 보았는데, 세상에서 모두 ‘남창은 사람됨이 준수하고 고아하며 특히 율시(律詩)에 능하여 인품과 시가 글씨보다 더 훌륭하다.’ 하였다. 내가 그 보원상인에게 ‘그 원축(元軸)이 어디서 있느냐?’ 물으니 ‘지금은 육묵(六嘿)이 가지고 있는데, 육묵은 인웅(印雄)에게서 얻었고, 인웅은 혜봉선사(惠峯禪師)에게서 얻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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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창 김현성의 필첩’ |